인생의 봄은 기한이 있을까?
청춘이란 무엇일까?
청춘은 젊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단어이지만 꼭 젊음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신체의 젊음은 유한하다. 우리는 성장기가 끝나는 순간부터 조금씩 늙어가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알고 있는 젊고 생생한 얼굴과 활력 있는 신체를 자연스럽게 유지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모습이 진짜 나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그렇게 살 수 있는 시간은 인생 전체를 기준으로 굉장히 짧고, 조금씩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모습은 달라져가게 된다. 신체의 시간을 늦추기 위해서는 자연스러움을 역행하면서 별도의 노력을 해야 함을 느끼게 된다.
모든 자연의 요소들이 생명을 얻고 탄생한 후에 얼마의 기간을 지나 다시 생의 끝을 만나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우리의 존재 또한 그러한 흐름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유한한 신체의 젊음과 마음의 젊음은 다르게 다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얼굴은 늙어가도, 거울을 통해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나라는 존재, 즉 영혼은 늙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청춘이란 신체의 젊음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마음의 생생함을 기준으로 정의되는 것 같다. 우리가 몸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삶을 살고 있지만 그 주체 자체는 나라는 존재, 마음이기 때문이다. 신체를 통해 우리는 인생을 만들어가고 세상에 발자국을 남기지만, 그렇게 하기를 원하고 결정하는 주체는 나의 마음이다.
마음이 이제 막 새로운 세상을 향해 수줍은 듯 설레며 움트려는 새싹과 같은 상태라면, 수십 년을 살았더라도 여전히 세상으로부터 배울 준비가 되어있다면 신체의 나이가 몇 살이든 상관없이 청춘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나이를 먹을수록 청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겉으로 보이는 신체가 주름지고, 활기가 저물어가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인생 경험이 쌓이는 만큼 상처받을까 봐 두려워서, 이미 다 알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더 이상 마음을 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나라는 존재로 지구별에 온 지 오래될수록 매일의 일상이 익숙하고 뻔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젠 어떻게 해야 상처받지 않을 수 있을지, 약하고 여린 나를 그럴듯하게 숨길 수 있을지 너무나 잘 알지만, 그럼에도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마음을 열고 뛰어들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는 유명한 시의 구절처럼 때론 두려움을 모르는 것처럼 겁 없이 도전하고 창피함을 모르는 것처럼 자신을 표현해 보고, 수치심을 모르는 것처럼 마음을 열며 살 수 있다면, 아직 말랑말랑한 영혼으로서 살 수 있다면, 언제나, 죽을 때까지 청춘일 것이다.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열린 마음으로 깨어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