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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미

이제 서른과 이제 마흔의 교환일기(24)

by 조아라

우리가 손을 나눈 모내기 경험이 척추 어딘가 남았을 거야. 춘천 갈 때 어쩌면 척추가 반응할지도 모르겠다. 하-하-하- (쥬토피아 나무늘보의 웃음을 상상해주어)


우리가 한 행위의 동사들이 하나의 동사로 수렴하는 건 아닐까 싶어. 나누고 나누고 또 나누는 것.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지. 그렇게 나와 타인 사이 행위와 물건과 대화와 시간을 나누면 헤어질 시간이 찾아오나 봐. 삶과 죽음이 그렇게 이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지만 이 엄청난 나를 만드는 건 내가 나눈 사람들이니까 결국 '나 혼자 산다'는 건 실은 동사가 아니라 형용사가 되려나...


나는 지지난주 금요일부터 지난 토요일까지 많은 장소를 지나쳐 다녔어. 울산에서 서울로 갔다가 춘천에서 조이와 모내기를 하고 다음날 친구네 가족과 제천에 나들이를 다녀오고 다음날 서울로 왔다가 동생과 한남동에서 시간을 보내고 다음날은 서울에서 여성농민을 응원하는 모임에 참여하고, 다음날 청도에서 냠냠과수원이라는 유기농 복숭아 농사를 짓는 지인 댁에 가서 봉지를 싸는 일을 돕고 그다음 날 안양 인덕원에서 '하루종일 책 읽게'라는 모임을 진행하고, 그다음 날 부여로 넘어가 도공디공 멤버들과 부여박물관, 규암면 일대를 돌아보고 대전을 거쳐 본가가 있는 울산으로 왔어.


이 여정에 내가 돌아다닌 지역이 많구나 자각한 건 누군가와 이야기할 때였던 것 같아. 근황 토크를 나누는데 '역마살 있으시죠?'라는 질문을 받았거든. '그런가' 싶다가도 생각해 보니 아닌 것 같더라고. 정착을 못하는 의미의 역마살이라는 운명론 보다 그저 그 지역에 내가 보고 할 것들이 있으니 가는 거라 이동은 내게 큰 거리낌 없는, 귀찮음을 주지 않는 수단적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이따금 돌아다니는 거면 떠돌이라는 표현이 맞겠지만 그 떠돌이가 일상이라면 다른 단어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내 생활 반경이 넓어질 뿐인 거지. 지역 간 관계인구가 늘어나니 돌아다니는 시간이 조금 늘어나는 것일 테고. 다만 이번 일정은 좀 연달아 진행되어 특별한 한 주를 보낸 것 같긴 하네 ㅎㅎ


한 주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본 공간들을 이번 주에는 곱씹어 보려고 해. 그리고 그 속에 나의 모습도 돌아본 다음이면 또 어딘가 가 있으려나.


이런 날도, 저런 날도 이렇게 편지로 나누니 그저 좋구나 싶어.


그럼 결국 좋은 날만 남는 거 아닐까?


조이의 안부를 기다리며


2025.6.23


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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