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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의 힘

이제 서른과 이제 마흔의 교환일기(32)

by 조아라

넉넉하게 생각할 시간을 가지고 글을 보내주어. 나는 한 달 간격은 너무 늘어질 것 같으니 틈틈이 보낼게. 하고 싶은 숙제 같은 감각으로 꾸준히 조이에게 글로 말을 거는 게 좋더라고. 이 교환일기가 아니었다면 올해 우리가 전화, 메신저로 이만한 빈도로 연락을 주고받지는 않았을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ㅎㅎ


충분히 잘 살아냈다는 뿌듯한 감각 무사히 유지하고 있어? 나는 걱정, 고민을 조금 덜어내고 하고 싶거나 해볼 만한 일을 찾고 있어. 전혀 해보지 않는 일도 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체험하면서 어렴풋이 내 미래를 점쳐보는 중이지.


최근에 내가 작년 이사 온 동네에서 산책하다가 발견한 카페가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인스타그램을 통해 보고 조금 놀랐어. 문 연 지 1년 조금 넘은 카페라 그리 빨리 닫을 줄 몰랐는데 아쉽더라고. 종종 혼자 가서 고마운 환대도 받고, 마음 편안하게 내 시간을 보냈었거든. 이사 간 동네의 낯선 공간감을 싹 없애준 장소로 여겼지. 그래서 그 카페 사장님께 고마웠다고 DM을 보내기도 했어. 이런 표현을 잘 못하는 나인데 용기 내어 말을 걸었는데 떨리더라고 ㅎㅎ 다른 지역에서 카페를 또 할 수도 있다고 하니 그때도 꼭 찾아가 보려고 해. 주소는 바뀌겠지만 그 사람이 만든 장소는 비슷할 것 같은 기대감이 들어. 익숙한 친구를 만나는 기분이려나, 내적 친밀감 혹은 전문용어로 소셜 프리즌스한.. ;;


이렇게 없어지는 장소가 있다면 새로이 만들어지는 장소에도 가서 즐기다 오기도 했어. 조이한테도 시간 되면 오라고 했던 곳이었는데, 40년이 넘은 건물 지하를 공장, 찜질방, 단란 주점 등으로 쓰이다 빈 공간이 최근에 되었어. 이 공간을 동네 주민들과 같이 채우기 위한 첫걸음으로 건물주가 전시와 아트마켓을 열었는데 여기에 책 매대를 하나 맡아서 판매를 빙자하며 일도 돕고 놀았지. 지하지만 습도가 높아 에어컨 없는 그곳은 그야말로 열대 우림이었어. 큰 부채로 연신 바람을 만들었지만 더위가 딱 붙어서 떨어지지 않더라고. 그 온도가 강렬히 기억에 남을 것 같아 ^^; 그 공간을 상상하며 꾸민 작품들이 옛 주점 인테리어와 잘 어울려서 오는 사람들마다 그대로 써도 될 것 같다며 바로 개업해도 될 것 같다고 하더라고. 첫인상에 느껴지는 친숙함을 서로서로 공유하고 갔지. 텅 빈 공간을 어떻게 채우느냐에 따라 우리의 장소가 되기도 아니기도 하는 걸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어.


없어진 나만의 장소, 생겨나는 모두의 장소 둘 다 응원하며 이제 다가오는 가을의 장소도 물색해 봐야겠다.


뜨거운 햇살과 선선한 바람 사이 적당한 속도를 지키고 있길 바라며!


2025.08.28

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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