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링 아트 15
모국 독일을 떠나 영국으로 건너온 미스터리한 모터링 아티스트, 한스 요하임 모저(Hans Joachim Moser). 그의 기법은 수채화 스타일부터 그래픽 모노크롬 일러스트레이션까지 다양하다
비록 수명은 짧았지만 1930년대 말 <스피드>는 풍부한 예술작품을 실었다. 조지 레인(George Lane), 러셀 브록뱅크(Russell Brockbank) 같은 유능한 일러스트레이터가 이 잡지에서 데뷔했다. 한스 요하임 모저는 상대적으로 이름을 덜 날렸지만 많은 작품을 그렸다. 그는 종종 자신의 작품에 HJM이란 서명을 남겼다. 짧은 기간 동안 모저는 브룩클랜즈 프로그램과 캐스트롤 광고 등 많은 의뢰를 받았고, 그동안 <스피드> 표지는 극적으로 표현한 자동차와 비행기 등으로 장식됐다.
한스 요하임 모저는 1904년 베를린 외곽지역에서 부유한 주식 중개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수많은 독일인처럼 1930년 주식 시장 붕괴로 인해 큰 타격을 받았고, 고향을 떠나야만 했다. 4명의 자녀 중 맏이였던 모저는 은행에서 일자리를 구했지만 그림과 직원들 캐리커처를 그리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 고용주의 불만을 샀다.
결국 그는 자신의 재능을 살리겠다며 부모님을 설득했고 예술로 전공을 바꾼 다음 일러스트레이터가 됐다. 대담하면서도 유려한 그의 스타일은 많은 잡지의 예술 에디터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고, <콜리쉐 일루스트리어테 차이퉁>과 ‘전 독일 자동차 클럽’(ADAC) 위원회의 관심을 끌어냈다.
이벤트 주최자는 곧 모저의 작품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유명한 독일의 아부스(Avus) 서킷을 위한 예술작품 프로그램 이후 그의 삽화는 독일 그랑프리를 포함해 세계 주요 레이싱에 사용됐다. 에이전트 덕분에 그의 작품은 <더 일러스트레이트 런던 뉴스>를 비롯해 세계 곳곳으로 퍼졌다.
성공을 거둔 모저는 모터사이클 레이싱에 빠져들었지만, 나치의 반유대주의 정책으로 인해 예술 활동에 제약을 받았다. 그는 아버지가 죽은 다음 영국으로 이민 갈 결심을 했고 독일 영사관에서 근무하는 매형 도움을 얻어 런던에 자리 잡았다. 영국에서 일은 찾는 데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훗날 장인어른이 된 존 M 그래톤(John H Gretton)이 브룩클랜즈와 '영국 레이싱 드라이버 클럽'(BRDC)에 소개해줬다. 그래톤 또한 열렬한 자동차 마니아였다. 1936년 <스피드>가 창간되자 소속 예술가로 활동했다. 그리고 영국의 전자 엔지니어 회사인 메트로폴리탄 비커스(Metropolitan Vickers) 사를 비롯해 여러 광고를 의뢰받아 유명세를 탔다.
전쟁이 발발하자 모저에게 수용소에 갇히거나 군에 입대하라는 선택권이 주어졌다. 그는 면책특권을 받았으나 공병대에 자원입대해 대위까지 진급했다. 나중에 독일 정보를 잘 안다는 이유로 헌병대로 전출됐다.
전쟁이 끝나고 그의 이름이 직업을 구하는데 문제가 되자 존 그레톤으로 바꿨다. 예술계에서 힘겨운 생활을 하던 그는 모델 제작으로 방향을 틀었다. 모저가 만든 샤른호르스트(Scharnhorst)와 그나이제나우(Gneisenau) 순양함은 국립해양박물관에 전시됐다.
골초였던 모저는 46세가 되던 1951년 심장마비로 급사했다. 오늘날 그의 작품은 일부만 남아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인상적인 그의 재능은 <스피드>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다.
2017년 7월호 @autocarkorea I classic & sports c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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