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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치 생활비, 일본에서 얻은 경험

일본에서 배운 것들: 생존, 요리, 그리고 사람

by 한창훈

두달치 버틸 돈을 들고


IMF시절에 대학교 3학년, 그대로 졸업하면 취업이 어려울 것이고, 유학을 하자니 형편이 되지 않았습니다. 몇 달간 노가다를 비롯해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며 두 달 치 생존비를 마련하여 일본 어학연수를 떠났습니다. 돈이 부족하면 알아서 귀국할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부모님께 비장하게 말씀드리고 출국하였습니다. 학원비와 숙소 비용을 선불로 지불하고 나니 정말로 딱 두 달을 버틸 돈이 남아 있었습니다. 일본의 규정상 아르바이트는 6개월이 지나야 할 수 있다고 하였지만, 그런 규정을 따질 여유가 없었습니다. 현지에서 유학생을 돌봐주시는 고마운 선생님과 함께 일자리를 찾아다녔습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꾸준히 일본어를 공부해 온 덕분에 조건은 좋았습니다. 다행히 기차역에 있는 제법 큰 일식당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일본어를 꽤 잘한다고 생각한 매니저님은 저를 홀서빙으로 배치하셨습니다. 그러나 교과서 일본어만 아는 저는 여러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한국에서 '이모~'라고 부르듯이 '거기 형씨'에 해당하는 표현들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결국, 3일 만에 주방에서 설거지를 맡게 되었습니다. 식당은 기차역에 있는 데다 규모가 커서 장사가 잘되었고, 이는 곧 설거지할 양이 엄청나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일본에서 계속 지낼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나 있었습니다.


너 요리한번 해봐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주방에서 요리를 담당하던 아르바이트생이 아파서 출근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일손이 부족한 상황에서 성격이 거친 고참 주방장 한 분이 '거기 설거지하는 친구라도 보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손이 곰발바닥이라 뜨거운 것도 곧잘 잡는 편이었습니다. 우설 요리를 접시에 담을 때도 주저 없이 옮겨 담았고, 필요하면 뜨거운 고기도 바로 칼로 썰었습니다. 그렇게 하루를 마치자 고참 주방장님께서 '너 일 잘하는구나. 내일부터 여기로 출근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파서 하루 결근했던 일본인 아르바이트생은 저로 인해 영문도 모른 채 설거지 담당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착한 친구여서 이후로도 친하게 지냈습니다.

주방으로 출근하게 되면서 다양한 요리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여러 종류의 튀김, 면 삶기, 야채를 얇게 써는 기술(의외로 고난이도였습니다), 꽁치 구이, 야키토리 등 다양한 요리를 익혔으며, 계절별로 굴, 성게, 새우 등의 원재료를 손질하고 다듬는 방법도 배웠습니다. 이쯤 되면 아예 요리를 직업으로 삼아도 괜찮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빠르게 배웠습니다. 결국, 사시미를 제외한 대부분의 요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시미를 담당하시던 주방장님께서는 저를 가르쳐 주고 싶어 하셨지만, 왼손잡이용 칼을 따로 준비해야 했고, 귀국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배우지 못한 것이 아쉬웠습니다.

중요한 것은 요리뿐만 아니라 일본어 실력이 크게 향상되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밑간을 하고 재료를 준비하면서 다양한 주방장들과 잡담을 나누었고,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다양한 표현을 익혔습니다. 주방에는 여러 연령대의 선배 주방장들이 계셔서 폭넓은 어휘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학원에서 배운 내용을 일터에서 다시 적용하고, 일본인 동료들에게 질문하며 실력을 쌓아갔습니다. 말 그대로 이론과 실습을 병행한 경험이었습니다.


술집 점장 자리


귀국을 세 달 앞둔 시점에서 한 유학생 선배가 갑자기 귀국하게 되었고, 그 선배가 하던 고액 아르바이트를 해볼 생각이 없느냐고 제안하였습니다. 일본식 단란주점인 '스나쿠'의 점장 자리였습니다. 손님과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며 분위기를 맞춰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선배는 제 일본어 실력을 충분히 알고 있었기에 이러한 제안을 한 것이었습니다. 상당히 높은 급여를 받는 일이었고, 저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기에 마다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세 달 동안의 경험은 저의 세계관을 바꿨다고 할 정도로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손님들 중에는 자수성가한 사업가가 절반 이상이었고, 기업의 지점장이나 임원도 많았습니다. 가끔은 '조총련'계 손님이 와서 북한 관련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에게 저는 '말이 잘 통하면서도 비밀을 누설할 위험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저와 이야기하려고 찾아오는 손님도 생겼으며, 심지어 호스티스에게 줄 팁을 저에게 주고 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 시간 동안 많은 인생 경험을 선행 학습하였습니다.


약간의 돈을 손에 쥐고


그렇게 1년이 지났고, 귀국을 준비하면서 휴대폰을 해지하러 갔습니다. 직원은 왜 해지하는지 물었고, 제가 귀국한다고 답하자 깜짝 놀랐습니다. 얼굴도, 말투도, 행동도 일본인처럼 느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미 비슷한 경험을 몇 번 했던 저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2개월도 버티지 못하면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저는 1년 동안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며 약간의 여윳돈까지 마련한 채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비록 일본 여행을 거의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그보다 값진 배움과 성장을 얻은 시간이었습니다.

처음에 돈이 없어 어떡하나.. 걱정을 하며 비행기에 올랐던 때를 생각하면 너무나도 많은 운이 따라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동갑내기 일본인 친구를 만나 도움을 많이 얻었고, 같은 숙소에 살고 있는 다른 유학생들은 물론, 정말 셀 수 없이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경험들이었습니다.


운의 확률을 높이는 과정


위인전에는 두 가지 함정이 있습니다. 첫째, 좋은 결과를 바탕으로 과정을 미화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실제로는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실패를 거친 끝에, 운이 더해져서 좋은 결과가 나오죠. 둘째, 운이 작용한 요소를 본인의 능력으로 포장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운은 실제로 중요한 요소입니다. 태어난 환경에 따라 삶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환경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선택하느냐에 따라 운의 흐름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운의 확률'을 높이는 것이죠.

저는 타고난 능력도 운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노력은 운의 방향을 바꿉니다. 능력에 노력을 더하지 않는다면 운의 유효기간은 짧아진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운과 노력은 어느정도의 비중으로 작동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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