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하는 이유는 애초에 무엇일까?
긴급하고 중요한 일, 긴급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일, 당신에게는 어떤 일이 더 중요한가? 최근 몇년간 워크샵에서 물어보면 거의 대부분이 ‘긴급하고 중요한 일’이라고 답한다. 그런데 이 개념을 생각한 사람의 주장은 두번째, 긴급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일이다. (하이럼 스미스, 스티븐 코비, 아이젠하워를 통해 유명해졌다.) 프랭클린 플래너가 유행했던 때에는 상식처럼 통용된 적도 있었다.
나는 유럽의 판매법인과 함께 물류법인을 담당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 다루는 제품은 계속 신모델이 출시되었고, 판매 가격도 주간단위로 떨어질 정도로 회전이 빠른 제품이었다. 조금만 잘못 관리하면 원가 이하로 판매법인에 보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문제는 제품도 많고, 원가도 다양하고, 판매가는 매번 바뀌었기 때문에 월말 재고 및 손익 보고서를 만드는 것만 며칠이 걸린다는 것이었다. 시스템에서 나오는 자료는 통합도, 자동화된 계산도 없었다.
나는 월말마다 3일씩 머리를 싸매고 야근하고 싶지가 않았다. 내 정신건강을 지키기 위해 엑셀 책을 사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근무시간 중 30분을 내서 눈치보지 않고 공부하면서 엑셀 함수를 활용한 템플릿을 만들었다. 한달 후, 나는 원본 데이터를 넣기만 하면 자동으로 재고와 손익이 나오게 해주는 표를 만들었다. 3일 야근하던 일이 반나절에 끝났다. 여기서 포인트. 내가 이 기쁜 소식을 당시 상사에게 보고 했을까? 예상했겠지만 보고 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만의 여유시간을 확보했다. 월말이면 나에게 다른 일은 시키지 않았으니까. 추가로 확보된 시간 덕분에 쉬기도 했지만, 평소 바빠서 손대지 못했던 자료 정리를 했다. 거래선 연락처를 통합하고, 메일을 카테고리 별로 필터 설정하고, 종이 문서를 정리하고 불필요한 것을 버리며 공간을 만들었다. 당연히 업무 효율은 더 올라가게 되었다.
엑셀을 공부하고 템플릿을 만드는 등의 일은 긴급하지 않다. 하지만 가장 중요하다. 전체적으로 일을 효율화 해주기 때문이다. 어쩔수 없이 긴급한 일이 생겨도 여유롭게 대응할 수 있다. 눈앞의 긴급한 일만을 쳐내다 하루를 마감한 적이 있을 것이다. 종일 열심히 일했는데 대체 뭘한건지 모르겠다 싶은 허무함도 느껴보았을 것이다. 긴급하지 않지만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을때 겪는 현상이다.
심지어 긴급하지만 (알고 보면) 중요하지 않은 일을 하는 경우도 있다. 보통은 거절을 못할 때 그렇다. 중요한 것을 할 시간을 확보하려면 덜 중요한 요청을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 쉽게 빠지는 함정이다. 또한 그런 성격을 이용하는 이들도 있다. 주로 동정심, 죄책감을 일으킨다. 이들의 말은 주로 이렇다.
“이 정도는 해줄수 있지?”
“자기밖에 부탁할 사람이 없더라”
가끔이면 괜찮지만 이것이 패턴이 되는 경우가 많다.
회사 다닐때 나는 공통 업무를 많이 맡아서 했다. 특히 팀원들의 PC를 점검하며 포맷하거나 업그레이드 하는 일을 맡았다. 윈도우를 포맷하고 새로 설치하는 일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리고 사용자가 쓰던 프로그램을 추가로 설치할 때의 자잘한 문제도 해결해줘야 한다. 그러다보니 나는 내 일을 하다가도 여기저기 불려가는 일이 많았다. 자잘한 요청에도 열심히 알아보고 답해주고, 심지어 사용자 본인은 퇴근했는데 나는 PC봐주느라 야근한 적도 있다. 그 과정에서 PC에 대해 좀 더 공부했으니 꼭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중에 두가지를 알게 되었다. 하나는, 어느새인가부터 내가 해주는 일이 당연하게 된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줄 알게 된다고..) 사람 심리를 생각하면 당연한 것이라 원망은 없다. 다만 내가 내 시간과의 조율을 하며 거절이나 지연 등은 했어야 했다. 또 하나는, 나만 할 수 있다는 환상이었다. 장기출장으로 내가 그 일을 넘기게 되었다. 후임자는 처음에 당황해 했고 문제가 터졌다고 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 알아서 굴러간다. 조직은 그런 것이다. 나만이 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리더라면 2분면의 시간을 쓸 수 있는 조직문화와 시스템을 만들어 가야 한다. 조직에서의 2분면은 팀원들과 함께 이야기, 피드백을 나누는 시간이다. 일이 바빠서 팀원들간의 업무 방식, 소통 방식 등을 방치하는 경우가 있다. 한번 갈등과 오해가 생기면 걷잡을 수 없이 커져서 서로를 손가락질 하는 경우까지 생긴다.
한 외국계 회사에서 ‘이해 관계자 관리’라는 제목으로 워크샵을 했다. 놀랍게도 공식 회의 석상에서 유관부서 리더와 담당자가 공개적으로 자신을 비난한다는 사례까지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비난한 쪽은 너무 강해서 문제지만 비난받은 쪽은 너무 약해서 문제였다. 약한 쪽은 주로 방향성이 모호하고 명확한 의사 전달을 하지 못하며 거절을 효과적으로 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일은 많이 하고 상대의 기대에는 못 미치는 패턴을 반복하게 된다. 착하고 성실하지만 어리석은 방식이다. 그래서 의견을 드렸다. 비난하는 쪽이 문제인건 맞지만 우리가 원인 제공한 것도 있지 않은지 봐주시라고. 방향을 명확히 하고, 방향에 맞는 원칙을 세우고, 원칙에 어긋나는 것은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예외는 유연하게 받아들이되 반복되면 다시 미팅을 해서 원칙 자체를 수정할 필요가 있는지 논의해야 한다. 이런 교통정리를 리더가 해줘야 한다. 실무를 잘해서 승진한 리더들이 힘들어 하는 영역이다.
눈앞의 급한 불을 끄는 데만 매몰되면, 정작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할 중요한 기회들을 놓치게 됩니다. 진정한 성장은 ‘긴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에 시간을 투자할 때 시작됩니다.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십시오. 오늘, 그리고 내일, 그리고 한주간, 진정 중요한 일을 위한 시간을 확보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