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배우기 싫어요.

저를 반주자로 만들지 마세요.

by 텐웰즈 원쓰

(예전 주일학교 학생 이야기다)

서울에 있는 학교에 오게 되어 가끔 고등부에 오는 친구가 있었다. 할머니댁이 같은 동내라 할머니 댁에 올 때마다 우리 교회에 나왔다. 정이 붙었는지 자주 우리 교회에 오게 되었고, 동생과 아주 서울로 올라오게 되어 정기적으로 교회에 나오게 되어 친구들과도 친해졌다. 그때쯤 알게 된 사실이었는데 이 친구의 부모님이 시골에서 목회를 하신다는 사실이었다. 가끔 이 친구가 교회에 나오지 못하는 날이 있었는데 들어보니 시골 교회로 반주를 하러 간다고 했다. 종종 토요일에 친교를 갖거나 주일에 행사가 있을 때 시골교회에 가야 되는 상황이 되면 불평과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발을 떼는 모습을 보곤 했다. 때로는 격려해 주기도 하고, 때론 땡땡이치라고 종용하기도 했다. 물론, 정말 땡땡이 치라는 건 아니었다. 위로랍시고 한 말이 그랬다는 것이다. 민망한 이야기지만 그래서 난 피아노를 배우다가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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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 때 엄마는 나에게 피아노를 배우라고 했다. 언젠가 필요할 것이라 생각하셨던 것 같다. 남들은 어려서 배우던 피아노였지만 나는 코밑에 수염이 검어질 때쯤에 배우기 시작했다. 쫌 논다고 하는 내가 샌님처럼 피아노를 배운다니 친구들이 알게 될까 창피하기도 했다. 피아노를 처음 배울 때 당시에 바이엘부터 배웠는데 상, 하로 나뉘어 있었다. 나보다 어린아이들이 체르니 100번, 30번… 이런 거 칠 때 ‘나비야’, ‘학교종이 땡땡땡’ 같은 곡을 버벅거리며 치고 있으니 재미가 쉽게 붙질 않았다. 그나마 재미를 찾은 건 학원에 오는 친구들과 노는 것 정도였다.


엄마의 제안으로 시작하긴 했지만 한편으론 피아노를 잘 치고 싶었다. 피아노 잘 치는 남자가 꽤나 멋져 보였었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인기 있는 형 중에 피아노를 잘 치는 형이 있었다. 부러웠다. 종종 교회에서 반주자가 없을 때 흑기사처럼 등장해 멋지게 반주를 하는 모습이 어찌나 부럽던지, 그럴 때면 왜 엄마는 좀 더 어렸을 때 날 때리면서라도 피아노를 가르치지 않은 걸까 원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두 달 남짓 학원을 다니고 나는 학원에 가지 않았다. 재미가 없었고, 끈기가 없었다. 배워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설득하기 어려웠다. 더군다나 내가 피아노를 치게 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엄마는 나를 예배 반주자로 써먹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난 피아노 포기했다. 내가 반주를 할 수 있게 되면 난 여러 가지 회유와 협박으로 교회 반주를 할 것이 눈에 보였고, 차라리 기술을 갖지 않는 것이 편할 것이라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 얼마나 유치한 발상이란 말인가?!?


대신 그때쯤 형이 튕기며 노는 기타에 관심이 생겼다. 형과 나는 5년 정도의 터울이 있던 터라 형의 세계의 것들이 좋아 보이고 멋져 보였다. 교회에서 불리는 찬양 중 쉬운 곡들을 연습했고, 수련회 때 멋지게 피아노를 치는 형처럼 숨은 장기로 기타를 연주했다. 피아노는 기동성이 떨어지다 보니 수련회 같은 경우에는 기타가 참 유용했던 것이다. 재미가 들고 멋이 들어서 계속 기타 연습을 했다. 중고등부 예배 때 반주를 하게 되고, 고등부 때는 어른예배 찬양팀에도 들어가게 되었다.

우습게도 엄마가 시킬까 봐 안 배운 피아노였지만, 기타로 예배를 섬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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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를 연주할 수 있게 된 것이 후회된 적도 있다. 찬양인도자가 펑크 났을 때나, 선배들이 자기가 해야 할 역할을 떠 넘길 때 그러했다. 남들 재밌게 놀 때 난 반주를 해야 할 때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뒤에 있는 것이 편해지고, 다른 사람들이 즐겁게 예배하고 노는 것을 보는 것이 즐거움이 되어 갔다.

그 무렵인가 ‘예수전도단’의 화요모임을 비롯한 다양한 찬양집 회의 부흥이 일어나고, 기타를 연주하며 찬양인도하는 예배팀들이 많아지게 되었다. 우리 교회에도 찬양에 대한 열정이 넘치고, 다양한 악기로 예배를 섬기기 원하는 사람들이 모여 팀을 만들었다. 악기도 보완하고 싱어도 많아졌다. 어설프게나마 베이스 기타를 연습해서 팀에 합류하였고, 15년 정도 지난 지금 난 팀의 리더로 찬양인도를 하고 있다. 함께 찬양하는 이 팀이 나에게는 놀이이고 취미가 되었다. 기타를 처음 배울 때의 마음가짐이나 작은 열정으로 보아선 지금 회중 앞에서 찬양을 인도하고 예배를 섬기는 내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 아마도 당시의 얕은 신앙으로 지금 상황을 예상했다면 엄마가 제안 한 피아노처럼 난 기타도 배우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피아노든 기타든 연주할 수 있는 악기가 생긴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나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생기게 되는 것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순종, 헌신, 섬김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그것이 은혜인 줄 모르지만 사용받는 기쁨이 얼마나 좋은지 알게 된다면 분명 왜 악기 하나쯤 다루지 못할까 하는 후회하게 될 것이다.

역으로 말하자면, 내가 할 수 있는 별것 아닌 것 같은 그것, 노래나 춤, 운동이나 요리 등이 다 그러하다. 기술, 가정 수업시간에 스치듯 배우는 것들이나 미술이나 공예, 손글씨나, 컴퓨터 활용, 언어 등도 그렇다. 심지어 청소를 잘하거나 정리를 잘하는 나의 습관이 그것이 될 수 있다. 지금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없어 보이는 그것(it)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만나고 나의 섬김과 희생으로 사용되면 놀라울 만큼 즐거운 놀이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예배가 된다. 이것은 먼 훗날 사용될 것이라는 말이 아니다. 내가 유치원 때, 초등학교 때 혹은 어제라도 배워 몸에 남아 있는 것이 오늘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준비된 좋은 도구이고 기술이 될 것이다.


필요한 것은 그것을 알게 해 달라고, 사용할 수 있는 곳을 보여달라고, 그리고 더 다양하게 사용되기 원한다고 기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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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거리

1) (서로) 숨은 재능은 무엇인가? 닮은 점이 있는가?

2) 개인기가 있는가? 서로에게 가르쳐 주라.

3) 키 작은 삭개오는 나무 위에 올라가 예수님을 뵙기 원했고 예수님은 그의 집에 묵으셨다. 의외의 것으로 위기를 모면하거나 빛을 본 경험이 있는가? 무엇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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