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_ 괴짜 목사의 스승의 날 사건

by 텐웰즈 원쓰

초등학교 때 에피소드이다.

스승의 날이면 으레 부모님 중에서 훌륭하신 분을 모셔다 선생님 대신 수업을 진행했었다. 6학년 스승의 날에는 원목사님이 학교에 오시게 되었다. 나는 두 가지 감정이 들었다. 자랑스럽다가도 걱정이 되다가도…

아빠가 시무하시는 교회가 작은 개척교회인 것이 부끄러웠다. 내가 목사 아들인 것이 아이들에게 알려지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무서웠던 건 우리 아빠가 워낙 괴짜인지라 무슨 말을 해서 나에게 치명적인 흠집을 낼지가 두려웠다.

걱정이 되어 전날 아빠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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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내일 와서 무슨 얘기할 거야?”

“응, 고스톱 치는 법을 가르쳐 줄 거야”

“…”

난 믿었다. 아빠가 그럴 것 같았다. 아빠는 그러고도 남았다.

불경해 보일는지 모르지만 우리 가족(아빠, 엄마, 형, 나)은 명절에 고스톱을 치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하면서 고성이 오가기도 하고, 때로는 멋쩍은 웃음과 우스운 상황에 박장대소를 하기도 한다. 세뱃돈이나 용돈을 판돈으로 걸고 내기를 하기도 한다. 목사가 무슨 짓이냐 싶겠지만 난 우리 가족이 고스톱을 칠 때 참 좋다. 형이 결혼하고 형수와 함께 지낸 첫 명절에 우리 네 명이 고스톱을 치는 것을 보고 형수가 시험에 들었다. 우리 네 식구는 재밌었는데 형수에게는 좀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장면이었나 보다. 건전한 윷놀이를 제안하여 잘 넘어갔지만 형수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나 보다.

여하튼 이럴 정도로 우리 가족의 즐거운 놀이였기에 난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만 했다. 아마 스승의 날 이후에 친구들은 나를 고스톱 목사 아들이라 놀릴 것이고, 선생님은 나를 사이비 목사 정도로 볼 것이라 생각했다. 역시나 한편으로는 재미있겠다 싶었다. 나도 아빠 아들인지라 괴짜끼가 있어서 어차피 캐릭터 애매할 거 같으면 괴짜가 낫다 싶었다. 와서 설교를 한다면 그것도 참 답답할 노릇이니 말이다. 무섭고 따분한 목사님보다는 재미있는 괴짜 목사님이 어린 나로서는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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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이 되어 아빠가 교실 앞문으로 들어왔다. 복장은 우선 무난했다.

우리 교실에 아빠가 일일교사로 와 있는 장면이 신기했다. 다른 것 다 떠나서 자랑스러웠다. 간단한 소개인사를 하고 아빠가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기대반 걱정반으로 앉아 있는 나를 보며 아빠는 차분히 오늘 하려던 이야기를 하겠다고 했다.


“오늘 아들의 학급 교실에 와서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민하다 원래는 다른 이야기 하려고 했는데…”

“…”

황당하게도 나의 기억에서는 여기까지 밖에 안 남아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빠가 그다음에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분명한 건 고스톱 이야기는 하지 않았고, 조금 따분했는지 모르지만 나름 아빠로서는 아들의 입장과 학교생활, 선생님에 대한 예의를 갖추어 이야기를 하신 것 같다.

싱거울지 모르지만 나는 그날 아빠가 참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나랑만 알고 있는 비밀 프로젝트가 있다는 사실이 참 좋았다.


때로는 부모로서 자녀에게 권위 있는 모습이 있어야 함이 분명하다. 때때로 어긋나는 자녀들에게 설교하고 바른길로 인도해야 할 책임이 그 부모에게 있다. 문제는 자녀에게 내가 어떤 아빠 혹은 엄마로 비추어지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이미 우리 아빠는 목사님이라 강대상에서 하는 말마다 정죄감 충만히 주시는 분이시다. 게다가 아빠는 다혈질이라 호되게 꾸짖으시고 화도 잘 내셨다. 자연스럽게 목사아빠는 나에게 무서운 분이었다. 그럼에도 이것을 많이 상쇄시켜 준 것이 아빠의 유머였다. 장난을 좋아하고 괴짜적인 성격의 아빠가 권위적이고 무서운 분이 아니라 인격적이고 편한 친구 같은 때도 있었다.


경건의 모양이 무엇일까? 안과 밖에서 자기 관리가 잘 되는 것이 참 중요하다 말했었다. 하지만 그것이 너무나도 어렵다는 것을 인정한다. 우리 가족 안에서 아빠의 가장 좋은 달란트는 유머였다. 단점도 많았겠지만 그래도 아빠는 유머를 즐기셨다.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많이 흐르면 많은 것들이 기억에서 잊힌다. 몇 남아 있지 않는 기억들 중에 다행인 건 아빠의 재미난 유머, 그 상황들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힘들고 어려운 때였지만 우리 가족 안에 그런 재미난 일들이 소소하게 있었다는 것이 참 큰 은혜라는 생각이 든다.

목사와 목사자녀 말고 아빠와 자식 간의 관계로 둘만이 간직하고 있는 비밀이 있는가? 비밀을 공유한다는 것은 서로를 매우 친밀하고 동질감 있게 만들어 준다. 부디 많은 비밀을 추억으로 간직하며 살아가는 아빠와 자녀들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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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거리

1) 아빠가 알고 있는 최근의 유머는 어떤 것인가?

2) 아빠는 모를 청소년들 용어를 10가지만 가르쳐주라.

3) 다윗의 어린 시절 아버지와 어떤 관계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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