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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노트 Oct 13. 2022

위험한 동행

Dear 'Fit to Fat to Fit' JJ and Ray

위험한 동행

“우리랑 같이 해보지 않을래? 진지하게 제안하는 거야.”


이직을 고민하던 중 대학교 때 상가 점포 플랫폼 개발을 같이 진행했던 고등학교 선배들에게 사업 제안이 들어왔다. 선배들은 상가 점포 플랫폼 론칭 실패 후 전자담배 액상 사업으로 자리를 정말 잘 잡았다가, 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액상 사업 운영이 힘들어지면서 신사업 구상을 하던 중이었다. 이미 외식업에는 1~2년 전부터 발을 담그고 있던 터라 진행 방향은 명확했다.


“우리는 액상을 제조/판매하는 회사니까 향과 맛에 투자를 해. 넓게 보면 외식 사업과 결이 비슷하다고 판단해서 테스트 매장을 몇 군데 운영해보고 있어.”


처음 외식 매장 두 군데를 오픈했을 때 들었던 이야기이다. 이 말을 듣고 사업하는 사람들의 관점은 재밌다고 생각했다. 시장을 연결해주는 틈새 구멍을 찾아가는, 콜럼버스처럼 새로운 기회를 찾아 미대륙을 개척하는 사람들이라고 느꼈다.


“고민해보겠습니다. 재밌겠네요.”


고민 후 제안을 받아들였고 퇴사를 결정했다. 합류하기로 한 시기가 몇 달 남았지만, 작은 회사에서의 경험을 미리 해보고 싶어 정부 지원 공공사업의 프리랜서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정부 지원 사업을 따낸, 먼저 퇴사한 동기가 있던 작은 회사에서 당분간 일을 하게 됐다. 이곳에서의 경험은 재밌었다. 본격적으로 내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중간 가교의 위치라고 생각해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일적으로는 최선을 다했으나 책임감이나 부담감은 느끼지 못했다. 반면, 회사의 주인 격인 동기는 애가 타고 피가 마르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나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반년이 지나고 많은 짐을 정리하고서 지금의 동료들 곁에 합류하게 됐다. 친한 동료 몇몇과 안면만 있는 동료, 아예 처음 보는 동료가 있었다. 친하지 않은 동료들은 나처럼 이 프로젝트에 합류한 사람들로 성공에 대한 갈증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그만큼 자아도 강했다.


처음 시작한 일은 고스트 키친 형태의 배달 매장 운영이었다. 합류하기 전, 인테리어 공사와 메뉴 개발이 거의 다 끝나 있어서 배달 매장 운영에 대한 바통만을 이어받았다. 동시에 프로젝트에 합류한 동료 3명과 이 배달 매장의 지분을 나누는 일을 진행했는데, 최종적으로 25퍼센트씩 똑같이 나눠 갖기로 결정했다. 드라마 ‘스타트업'에서 김선호가 역할을 맡은 한지평이 삼산텍이 처음에 가져온 주주명부에 극대노하던 바로 그 평등주의가 여기에도 있었다. 다른 점이라고 하면 F&B 업계의 회사는 스타트업이라고 불리지 않으며, 회사의 지분이 아닌 매장의 지분이었다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갈등은 생겨났다.


내가 참가한 트레바리의 모임을 이끄는 모임장님은 우리가 의견이 갈릴 때, 단어를 정의하고 넘어가는 걸 선호한다. 예를 들면 ‘아이디어'라는 단어를 바라보는 관점이 서로 다른 것 같다며 이 단어를 정의해보자고 말한다.


“아이디어는 PMF(Product Market Fit)다.”


이런 과정이 필요한 이유는 같은 단어를 가지고도 각자의 해석이 달라 생각을 일치시키기 어렵다는 점이다. 동행이 위험한 이유이다. 꿈길 한번 걸어보자며 어깨동무를 하지만 바라보고 있는 방향이 다르다. 누구는 회사를 성공시키고 싶다면, 누구는 개인의 부를 증식하고 싶다. 일을 하며 깨닫게 된 건, 개인의 목표가 절대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 점을 인지하고 서로 대화하며 맞춰가지 않으면 크게 화를 입는 일이 벌어진다.


배달 매장 성공의 관점이 동료마다 달랐다. 리딩을 맡은 동료는 성공을 ‘매출의 수치’로 정했다. 빠르게 매출을 올리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모두 찾고 그걸 적용시키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나에게 성공은 ‘식품 R&D 센터화'였다. 음식 및 식품 연구개발 능력 없이는 매장에 미래가 없고, 당장의 매출보다 기반 기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매출 상승을 위해 다른 회사의 브랜드를 샵인샵 형태로 들이는 일이 자체 브랜드 개발로 이루어지지 않아 답답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외식업에 문외한이라고 스스로 느꼈기에 동료들의 생각과 사고를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그들을 도왔다. 이 과정은 꽤나 힘들고 외로운 시간이었다.


라이프타임 채널에서 방영한 ‘나의 Fit 파트너'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피트니스 트레이너가 20kg이 넘는 살을 직접 찌워 초고도 비만인 도전자와 함께 다이어트를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여러 피트니스 트레이너가 나오는데 이들 모두 건강하고 활기찬 삶을 살아간다. 반면에 초고도비만의 도전자들은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비관하며 무기력한 삶을 산다. 그들은 살을 빼지 못하는 이유가 운동하기 힘든 몸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들의 마음을 이해하며 같이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 피트니스 트레이너들은 살을 찌운다. 살을 찌우는 과정에서 그 건강하고 활기차던 트레이너들이 삶을 비관하기 시작하고, 우울증을 토로하는 등 몸뿐만이 아니라 마음이 무너진다. 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이다. 타인의 삶을 타인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그 삶은 쉬워진다. 타인의 삶이 나의 삶이 되면, 그 삶은 너무도 어려워진다.


동료들을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며 자영업자로 살아갔다. 덕분에 나의 삶은 무너졌다. 더 이상 개발자가 아니었고 경영 수업을 받고 있는 건 맞는지 계속해서 의문이 들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이 과정을 나만 거친다는 점이었다. 어느 날 회식 자리에서 현재 느끼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얘기했다.


“외식업자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자영업자로 짧지 않은 기간을 살아가고 있어요. 그런데 개발자인 저의 삶을 존중해주시는 분이 이곳에 있나요?”


이 이야기를 했을 때 나는 욕을 들었다. 나의 삶이 더 이상 개발자가 아니라는 대답과 함께. 이 날의 기억으로 넓고 다양한 시야를 가질 수 있는 능력은 소수의 사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라는 걸 알았다.


이런 저런 상황을 인내하며 자영업자의 삶에 녹아들었고 점점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의견을 내거나 관철하는 시도가 잦아졌고 때로는 동료들이 나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요구했다. 그들에게 나만의 꿈길을 하나씩 설명하기 시작했다. 경영자도, 개발자도 아닌 중간의 삶을 살고 있었지만 적어도 한 걸음씩 전진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20kg 넘게 살을 다 찌우고서 이제 막 다이어트를 시작하는 피트니스 트레이너들처럼.


우리의 꿈이 아닌 나의 꿈을 위한다는 생각으로 동행을 한다. 절대 그 길이 같을 수 없기에 동료를 무작정 의지하지 않고 나의 길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아슬아슬한 줄타기처럼 위험한 동행이지만, 때로는 위험한 만큼 시너지를 만든다. ‘나의 Fit 파트너'의 원작 이름은 ‘Fit to Fat to Fit’이다. Fit에서 Fat은 피트니스 트레이너 혼자, Fat에서 Fit은 도전자와 함께. 피트니스 트레이너들은 이 과정을 ‘새로운 삶을 얻은 기분'이라고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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