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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노트 Oct 18. 2022

위대한 선구자들

Dear 트렌드를 이끄는 F&B 기업 및 대표님

위대한 선구자들

자영업자의 삶을 산지 1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사계절을 모두 겪었다. 이렇게나 긴 시간 매장 하나를 운영하는데 공을 들이고 있을지는 몰랐다. 그 사이에 배달 매장을 풀 오토로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믿고 맡길 수 있는 직원들이 있고, 성과를 냈다고 말할 수 있는 한식 브랜드를 몇 개 만들어냈다. 안정적으로 하나의 매장을 안착시켰지만 이제는 새로운 사업적인 도약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자영업자의 삶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어떻게'에 대한 의견이 갈렸다.  


각자의 사업장에서 사업 확장을 하자
흩어진 매장을 합쳐 F&B 법인을 세우자


운영을 맡은 고스트키친형 배달 매장 외에도 다이닝 레스토랑, 한식 음식점, 아시안 음식점 등을 동료들이 운영 중이었다. 이를 한데 모으면 회사 규모가 커지고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관점이 F&B 법인을 세우자는 근거였다. 나의 의견은 그 반대였다. 법인을 세우는 게 각 사업장의 자유도를 뺏을 가능성이 컸고 사업 확장 속도가 늦어질 거라 예상했다. 무엇보다도 영업장을 모아 회사의 공통된 가치 체계를 만드는 게 불가능해 보였다. 너무도 다양한 영역의, 다른 정체성을 가진 영업장들이었다. 보통은 공통의 목표를 두고 사람들이 모인다. 우리는 그 반대로, 일단 사람과 영업장을 모아놓고 공통의 목표를 찾는 길을 택했다. 이런 방법으로 우리가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을까? 이때 들었던 걱정은 법인이 설립된 후 몇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풀기 위해 외식업의 생태계를 더 파고들었다. 우리보다 먼저 앞서 나간 선구자의 발자취를 좇고 싶었다. 팀 구매 플랫폼 ‘올웨이즈'를 운영하는 회사, ‘레브잇'의 강재윤 대표는 하루에 기업 4개씩 4년간 매일 기업들을 조사하며 ‘이 세상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사람들은 무엇에 반응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자신만의 기준으로 정리했다고 한다. 이를 IT 스타트업에만 적용할 필요는 없다. 강재윤 대표만큼 열정적으로 기업 조사를 하진 못했지만, 국내 외식업 생태계와 F&B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질 정도의 노력을 했다. 그러다 보니 몇몇 기업이 눈에 들어왔다.


GFFG
CICFNB
CNP컴퍼니
글로우서울


이들은 다소 특이했다. F&B 회사인데 음식점을 차린다는 느낌이 없었다. 공간을 창조하는 회사들이라고 보는 게 더 적절한 표현 같다. 그들을 좇아보면 프랜차이즈 박람회는 없고 ‘프리즈 서울’ 같은 아트 페어가 나온다. 외식업이라는 단어는 없고 ‘서비스업'이라는 단어를 강조한다. 푸드테크가 아닌 ‘프롭테크'를 말하기도 하고, ‘라이프스타일', ‘패션', ‘디자인' 같은 외식업계에서는 생소한 영역을 파고든다. 이들을 ‘트렌드를 이끄는 F&B 기업'이라고 부르게 됐고 독특한 특징 몇 가지를 추려냈다.  


1. 외식업계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탐구한다.

2. 외식업은 가치 창출을 위한 수단이다.

3. 외식업의 본질을 잊지 않는다.

    …

x. 대표의 이력이 독특하다.


이러한 특징들은 우리가 시장에서 어떤 포지션을 가져가야 하는지 인지할 수 있게 도와줬다. 한편, 대표의 이력이 독특하다는 점은 기업의 관점에서가 아닌, 개인의 관점에서 특히 눈에 들어왔다. 예를 들면 글로우서울의 유정수 대표는 15년 가까이 IT 개발자로 일하다 글로우키친이라는 매장을 오픈하며 외식업에 발을 들였다. GFFG의 이준범 대표는 패션 업계에서 일하다 2017년에 첫 매장을 열었다. 세계적인 레스토랑을 만들어보고 싶었던 CICFNB의 김왕일 대표는 스위스로 대학 진학을 해 호텔 경영, 레스토랑 경영, 서비스 경영 등을 배우고 미국으로 건너가 플로리다에서 레스토랑에 취업해 경험을 쌓아나갔다. 브랜딩에 관심이 많았던 CNP컴퍼니의 노승훈 대표는 자본 없이 시작하기에는 당일에 벌어 바로 쓸 수 있는 식당이 최적이라 판단했고, 공간에 대한 재해석이나 디자인 브랜딩을 통해 차별화를 줄 수 있다는 확신으로 외식업에 발을 들였다. 이들의 스토리는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더욱 흥미롭다. 기존 외식업의 성공 방정식과는 거리가 먼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이들은 각각 익선동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했고, 노티드와 아우어베이커리를 통해 팬덤 브랜딩에 성공했으며, 더티트렁크와 말똥도넛으로 교외의 대형 공간으로 고객을 끌어냈다. 앞으로 내가 가야 할 길이기도 했다.


“나는 제대로 나아가고 있나?”


앞서 나간 기업을 조사할 때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IT 개발자였던 건 단점이 아니라 장점일 수 있다며 다독이던 글로우서울의 유정수 대표, 외식업은 서비스업임을 강조하고 싶던 내게 ‘Hospitality’라는 단어를 안내해준 CICFNB의 김왕일 대표, 동생의 패션 사업에 참여하며 더 큰 미래를 그리고 있는 나에게 옳은 길이라며 자신의 성공 사례를 보여준 GFFG의 이준범 대표, 브랜딩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고군분투하던 내게 힘을 실어준 CNP컴퍼니의 노승훈 대표 등. 직접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은 없지만 대답은 선명하게 머릿속에 그려졌다. 언급하지 못한 많은 기업과 대표들에게 영감을 받았고 그들이 밝혀준 꿈길의 등불 덕분에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었다.


“제 롤모델이에요.”


이전 회사를 다닐 때 후임이 나에게 해주었던 말이다. 나이도 연차도 차이가 얼마 안 나는데 롤모델은 좀 그렇지 않냐고, 배울 점이 뭐가 있다는 건지 도통 이해를 못 하겠다는 얘기를 했다. 어쩌면 그녀에게는 내가 앞에서 먼저 걸어가는 선구자였을지 모르겠다. 나름 무모하면서도 도전적인 시도를 했다. 누굴 위한 행동은 아니었는데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겠구나. 지금은 그녀가 롤모델이라 했던 말의 무게를 느낀다.


나에게는 수많은 선구자가 있다. 위에 언급한 유명한 대표들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사람들의 성공 방정식을 훔쳐 나만의 길을 창조해간다. 최근에 론 프리드먼이 쓴 ‘역설계'라는 책을 소개받았다. 역설계란 기존 제품을 뜯어서 분석하여 같은 기능을 하도록 새롭게 만드는 방식을 뜻하는 산업 용어이다. 이를 심리학자인 론 프리드먼이 성공한 사람들의 행동 방식을 표현하기 위해 역설계라는 용어를 활용한다. 흩어진 성공사례를 수집 및 분석하여 모방해보고, 모방을 넘어 나만의 새로운 것으로 창조해내는 일을 하라는 게 이 책의 취지이다. 이 책을 소개받은 후 역설계 접근법으로 선구자들의 발자취를 따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배우고 싶은, 따라가고 싶었던 이들이 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종종 휘청이며 길을 걷고 있다. 그런 나를 잡아준 건 위에 언급한, 언급하지 않았지만 마음으로 기억하고 있는 선구자들이다. 이 글을 쓰며 하나의 주제를 빌려 위대한 선구자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야겠다 생각했다. 정말 많은 위로를 주었다. 명확한 이정표가 되었다.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 되었다. 그 모든 수고와 고난의 길을 먼저 걸어간 것에 경의를 표하며, 지탱해주어 감사하다고 마음으로나마 전하고 싶다.


당신들과 같은 위대한 선구자가 되기 위해 오늘도 꿈길을 걷는 중이다. 언젠가 이 길의 중간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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