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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노트 Oct 19. 2022

스스로를 믿는 법

Dear Netflix co-founder, Marc Randolph

스스로를 믿는 법

글의 제목을 정할 때 문득 부랑자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부랑자라는 단어만큼 적절한 표현은 찾을 수가 없을 정도로 만족한 나는, 글의 제목을 ‘꿈길을 걷는 부랑자들'이라고 곧장 못 박았다. 꿈길이란 희미한 목표, 막연한 희망을 품은 길이다. 부랑자는 정처 없이 길을 걷는 사람이다. 이를 개인의 인생으로 표현하면 희미한 목표를 향해 흔들리며 걸어가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 모습은 나의 자화상이다. 뚜렷한 목표를 지닌 사람들과는 다르게 스스로를 종종 의심하는 나의 자화상.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 뚜렷한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스토리를 접하고 나면 마음이 공허해진다. 정말 많은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보통은 그런 이야기는 생략되고 어떻게 성공을 위해 전진했는지에 초점이 간다. 필요에 의해 다양한 책을 읽고 여러 분야의 사람을 만나 대화해보면 배우는 만큼 스스로의 위치가 더 뚜렷해진다. 지도에 마커를 표시하듯, ‘정신 차리자 아직도 시작을 못 벗어났어'하며 다시 한번 채찍질을 하는 계기가 되고 만다.


학생 때 전공 수업 중 영문학을 원서로 읽는 수업이 있었다. 당시 읽었던 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원서의 제목은 ‘The Catcher in the Rye’이다. 워낙 유명한 책이기 때문에 별다른 요약은 필요 없겠지만 나만의 한 줄 요약을 하자면 ‘부랑자 홀든 콜필드’의 이야기이다. 당시에 이 책에 많이 매료되었다. 콜필드 신드롬이 왜 생겼는지 이해할 만큼 홀든이 겪는 사고의 흐름에 동화되었고, J.D. 샐린저의 삶을 그린 영화 ‘호밀밭의 반항아'가 개봉하고 영화관에 가서 찾아볼 만큼 시간이 지나서도 영향을 끼쳤다. 이와 비슷한 경험을 케이시 애플렉 주연의 ‘맨체스터 바이 더 씨'라는 영화를 통해서도 겪었다. 주인공 리의 불행과 방황에 영화가 끝날 때쯤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보통 영상매체를 통해 눈물을 흘리는 편이 아닌데, 명장면 중 하나인 리의 대사와 함께 끝내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I can’t beat it.”
“못 버티겠어.”


돌이켜 보면 부랑자의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의 이야기에 공감을 했던 것 같다. 부랑자라는 단어가 좋았던 이유도 내 삶에 투영하기 가장 적합한 단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뚜렷한 목표가 생겨 성공하는 결말이 아닌, 어느 날 감정이 요동치며 여동생 피비 콜필드에게, 조카 패트릭에게 잔잔히 고백하고 의지하는 장면이 좋다. 이런 주인공에 감정적인 의지를 하고 위로를 받게 된다. 흔들리는 근본적인 이유를 상기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 같은 부랑자니까. 흔들리며 나아가는 게 당연한 거다.


스스로를 종종 의심하지만 결국 한 발짝 더 나아가 걸어보는 건 그간의 경험 덕분이다. 선택지가 놓이고, 스스로 선택하고, 결과에 순응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경험이 된다. 만약 결과에 순응하지 못하고 탓을 돌리거나 결과를 부정하면 똑같은 상황이 왔을 때 주저하게 된다. 행동이 합리화를 이기는 이유이다. 행동은 동력을 준다. 합리화는 동력을 멈춘다. 방황하고 불안하고 불행한 길이더라도 선택의 순간은 오고 ‘행동할래, 합리화할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행동하는 태도는 환경과는 전혀 무관하게 개인의 의지로 심을 수 있다.


어느 날 책임지겠다는 말을 종종 하는 나에게 자신감과 결단력이 부럽다는 얘기를 누군가 해주었다. 그 자리에서 얘기했는지 속으로 생각했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다. 오히려 우유부단하고 결정을 못 내리는 축에 속한다. 단지 결정하고 책임지는 게 내 역할이고 그런 경험을 미리 해봤기 때문에 할 수 있을 뿐이다. 역할에서 벗어나 있거나, 내 일이 아닌 경우에 대개는 거의 간섭조차 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역할이 있고 그 안에서 권한과 책임을 갖는다. 그만큼의 행동이면 된다. 그게 쌓이다 보면 더 큰 역할을 맡는, 세상에 많은 영향력을 끼치는 순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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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의 초대 창업자 마크 랜돌프가 쓴 ‘절대 성공하지 못할 거야'는 넷플릭스가 DVD 판매/대여 플랫폼으로 시작해 기업공개에 이르고서 본인이 퇴사하기까지의 회고록이다. 넷플릭스 하면 떠오르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마크 랜돌프는 퇴사를 결정한다. 넷플릭스라는 커져버린 회사에서는 더 이상 본인의 역할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편, 공동 창업자였던 리드 헤이스팅스는 현재까지도 CEO로서 넷플릭스를 이끌며 전 세계 최대 OTT 플랫폼으로 발돋움하고 콘텐츠 제작에서도 대박을 내는 등, 넷플릭스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워내는 데 성공했다. 마크 랜돌프는 그런 리드 헤이스팅스를 보며 “그게 그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자신을 ‘스타트업 인간형'이라고 표현한 모습과는 대비된다. 그는 보통의 사람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을 넷플릭스를 키워내며 많이 겪었다. 그럼에도 메타인지를 통해 꾸준히 상황을 객관화하려 노력한다. 이런 마크 랜돌프의 모습에서 ‘스스로를 믿는 현명한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스스로의 역할과 결과물에 대해 객관적으로 판단할 줄 알며, 더도 덜도 아닌 합당한 만족감을 성취하여 또 다른 길을 걷는 마크 랜돌프. 열심히 연습하지만 잘 안 되는 부분이다. 성과를 과하게 측정하거나, 다소 겸손하거나. 어쩌면 꿈길 속에서 흔들리는 원인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나에겐 두 가지 모습이 존재한다. 스스로를 의심하는 불안 상태와 스스로를 믿는 확신 상태이다. 이 두 모습은 다양한 상황에서 혼재한다. 스스로를 의심하는 건 더 나은 방향을 찾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준다. 나의 부족함을 인지하고 더 나아질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스스로를 믿는 확신 상태라는 건 불안함에도 행동할 거란 믿음이다. 행동을 통해 결과를 얻어낸 성취이다. 이는 성공의 여부와는 별개다. 성공은 내가 만든다기보다 계속 해내다 보면 따라오는 보상일 뿐이다. 대개 실패하지 않으려 발버둥 치지만, 성공하지 못할 가능성이 더 큰 우리의 삶에선 실패를 통해 무엇을 얻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스스로를 믿는다. 주어진 역할 안에서 책임을 피하지 않고 행동할 사람이라는 걸,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통해 알 수 있다.


개발자로 돌아와 서비스를 만들어내고 있는 미래가 있다. 외식업의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F&B 기업의 한 축이 되어 있는 모습도 있다. 동생과 패션 사업을 잘 키워내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업가의 모습도 그려진다. 꿈이었던 책방과 독립출판사를 운영하며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리더가 될 수도 있다. 1년 전의 모습은 늘 지금과 달랐다. 미래의 내 모습도 오늘의 나와 다를 거란 건 너무도 자명한 사실이다.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문득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스스로를 믿을까 궁금해졌다. 선구자들은 이 혹독한 길을 어떻게 걸었을까. 나의 동료들, 꿈길을 걷는 부랑자들은 수많은 고초를 어떻게 이겨내고 있을까. 심지어 나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했던 생각을 이 글을 통해 조금이나마 정리하며 그들에게 안부를 전해주고 싶었다.


흔들려도 꿋꿋하게 걸어 나갈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믿으며.

희미한 꿈길에서, 흔들리는 부랑자로서 다들 안녕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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