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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맛도리주인장 Jan 16. 2024

코가 맵도록 시린 청명한 겨울에 맛있어지는 굴

청명한 겨울엔 굴찜을 대접하고 싶어요.



겨울바람이 하도 불어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겨울 어느 날,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이런 날에는 총총걸음으로 가게에 들어가서 굴을 먹고 싶다. 그것도 뜨거운 굴 판에 가득 담긴 굴찜을 먹고 싶다. 

이번 겨울은 날이 춥지 않아서 12월 초까지는 굴이 폐사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굴은 잘못 먹으면 비린 터라 날이 추워져 맛이 올라올 때까지 그리고 굴의 씨알이 오동통해질 때까지 진득이 기다리느라 힘들었다. 생각보다 수도권에서 굴찜을 먹을 수 있는 곳이 흔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굴은 먹고 나서 폐기해야 할 굴 패각들이 많아서 일 것이다. 서울에 살기 시작하면서 굴 구이나 굴찜을 하는 곳을 찾기 힘들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여수 본가에 내려가 먹기로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나는 굴은 크게 나누어보면 서해에서 자라는 굴과 남해에서 자라는 굴로 나눌 수 있다. 서해 굴은 작고 녹진한 맛이 있다. 서해는 조석 간만의 차가 커서 굴이 물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그래서 남해 굴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작은 것이다. 향이 강한 만큼 그걸로 젓갈을 해 먹는 어리굴젓이 유명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진한 굴의 향을 선호하지는 않아 자주 찾아 먹지는 않았다. 


반면에 남해의 굴을 오동통하니 수분을 가득 머금고 있다. 수하식 굴이라 하는데 이름 그대로 물속에 내내 잠겨서 플랑크톤을 먹고 자라 성장 속도가 빠르고 알이 굵다. 그래서 이 굴이 가진 수분만으로 굴을 쪘을 때 촉촉함이 살아있다. 


굴찜과 더불어 굴 구이도 있다. 할머니 집에서 김장을 할 때, 항상 한편에서 장작불에 철망을 대고 굴을 올려놨는데, 굴의 패각 안에 갇힌 수분과 불향이 만나 약간의 오징어 구운 냄새같이 꼬릿한 향도 나는 것이, 입안에 쏙 넣어 씹으면 톡 하고 굴의 수분이 터져서 불향과 육즙의 향긋함이 배가 된다. 굴찜은 그래도 하는 곳을 간간이 찾을 수 있는데, 굴 구이는 더욱 찾기 어려우니 혹시 굴 구이 하는 집을 찾으셨다면 꼭 한번 드셔보시기를 바란다. 



여수에 가기 전에 이야기를 하다가, 남편은 굴찜을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럼 또 새로운 문을 내가 열어주는 거네? 오호? 아직 맛보지 않은 세계를 맛 보여 주는 것은 항상 즐겁다. 이 기쁨에 추위가 오기를 기다렸다. 


여수에는 굴찜이나 굴 구이 하는 곳이 많아 흔하게 식당을 많이 볼 수 있다. 소호동에서 화양면 들어가는 길목에 줄 지어져 있다. 들어가자마자 인원수대로 굴이 가득 든 판이 불판에 올려진다. 아래에서 가스불에 열기가 오르면 이내 굴에서 나오는 수분에 보글보글 끓는다. 굴이 익으면 패각이 입을 여는 데 이때가 기회다. 지금 먹어야 한다. 안 그러면 굴 껍데기에 붙은 관자가 질겨질 수 있다. 참고로 조개류는 조개 자체가 가지고 있는 수분으로 익고 나서 계속해서 열이 가해지면 안에 수분이 빠져서 맛이 떨어져 버린다. 그래서 굴 찜판 속의 굴이 하나씩 입을 벌리기 시작했다면 모든 굴들이 입을 벌릴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벌어진 굴부터 먹기 시작해야 한다. 


나중에 입 벌리지 않는 굴을 벌려서 먹으라고 작은 칼을 주는데 그걸 사용해서 우선 굴의 패각에 붙은 관자를 떼주고 초장을 살짝 찍어 입에 넣는다. (뜨거울 수 있으니 조심!) 이때, 한 입에 쏙 넣는 것이 좋다. 안에 육즙을 온전히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팡!


입안에서 베어 무는 순간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다. 굴 안에 갇혀 있던 수분이 달달하게 터진다. 이 달달함을 위해서 11월부터 코가 맵도록 시린 겨울까지 기다려 왔다. 몇 번 씹고 나서 이제는 소주 차례다. 이번만큼은 소주여야 한다. 사실 가져온 전통주도 같이 먹어봤는데 남편과 나 둘 다 "이건 소주다!"라고 외쳤다. 굴의 달달함과 소주의 쌉싸름함이 만났을 때의 그 페어링이 절로 웃음 짓게 했다. 소주의 장점은 어떤 한식에도 무난하게 그 음식이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돋보이게 해 준다는 점이다. 음식이 술술 들어갈 수 있게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다. 그렇게 굴과 소주, 소주와 굴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옆 양동이에 굴 껍데기가 한가득 쌓인다.



올겨울은 작년보다 덜 추울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코가 시린 굴의 계절도 짧을 것 같다. 이 글을 보시는 구독자께서 혹시라도 주말에 남부 지방에 내려갈 일이 있으시다면 한 판의 굴찜과 소주로 매섭지만 청명한 하늘의 겨울을 즐기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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