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와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을 시작하며.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인간관계는 연령, 교육, 사회 , 나이에 따라 형성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에 당연시하던 인간관계가 깨지고 있다. 관심사, 취향 등 비슷한 가치관이 '관계'를 구축하는 기준이 되었다. 나와 관심사가 맞는 이들이 있다면 얼마든지 페이스북 친구가 될 수 있다. 친구 신청이 부담스럽다면? 팔로우하면 된다. 인스타그램은 친구 추가도 없다. 팔로잉만 하면 된다. 또한 유튜브와 틱톡같이 영상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기도 한다. 이제 사람들은 누군가를 통해서 연결되지 않는다. 본인 스스로 관계를 찾아 나선다. 개개인마다 자신의 취향을 표현하는 SNS 계정을 손쉽게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다양한 페르소나를 구축하는 게 가능해졌다. 주류와 비주류를 나누는 일도 무의미하다. MCN과 방송사가 협력하는 전혀 모습은 낯설지 않다.
[현재 '브랜드와 사람이 만들어가는 공간'들 브런치 글은 제가 지속적으로 문장을 고치고 있습니다. 이 브런치 북 자체가 '30개'의 브런치 글이고, 분량이 짧게는 1500자 많게는 7000자가 넘는 글도 있는데요. 종종 문장을 고쳐 쓰는 과정에서 문장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단 제가 2021년 6월 14일까지 1차 작업을 마치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
이미 많은 구독자를 보유한 유투버들이 TV에 나온다. 라디오스타에는 유튜버 슈카가 나온다. '6시 내 고향'에 쯔양이 나오는 게 낯설지 않다. 뿐만 아니라 MBC는 유튜브를 제작하던 MCN에게 주말 황금시간 예능 제작을 의뢰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과거 교육방송이라고 잘 보지 않던 EBS는 펭수를 통해 2030 세대에 재미와 감동을 주고 있다. 과거 근대주의에 근거한 명확한 구분은 이제 쉽사리 통용되지 않는다. 또한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통했던 몇몇 기업들과 거대한 광고회사 내 유명 디렉터가 제시하는 메시지성 광고도 더 이상 손쉽게 통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은 공감을 얻는 콘텐츠와 패러디가 더 인기다. 다양한 연령에서 응용할 수 있는 자유로운 메시지가 다방면에서 환영받는다. 광고에서도 마찬가지다. 야인시대에 김두한 역을 맡았던 배우 김영철 씨의 ‘사 달러”는 버거킹 광고에서 재해석된다. 10년 전, 영화 타짜에서 나온 곽철용이라는 캐릭터.‘묻고 더블로가!’라 대사를 사람들이 패러디하면서 곽철용 역을 맡았던 배우 김응수는 강제 전성기를 맡기도 했다.
스니커즈 신에서 가장 핫한 신발은 언제나 '조던 1'이다. '조던 1'은 수량이 부족해 언제나 구하기 힘들다. 나이키 안에서도 '조던'은 단일 브랜드로 분리될 만큼 인기는 폭발적이다. 특히 '조던'시리즈의 인기를 이끄는 이들은 마이클 조던이 현역으로 활약하던 시대에 NBA를 본 이들이다. 이들에게 조던은 슈퍼히어로다. 루이비통 남성라인과 오프 화이트를 버질 아블로가 나이키와 '더 텐' 협업 중 '마이클 조던은 내 어린 시절의 슈퍼히어로'라고 한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90년대 중고등학생들은 농구를 하면서 한 번씩은 '조던의 슛'을 따라 했다. 뿐만 아니라, 마이클 조던이 신고 나온 조던 11을 구매하는 일은 단순한 '신발 구매'가 아닌, 영웅을 느끼는 황홀한 의식에 가까웠다. 그러나 중고등학교생들이 22만 원이나 되는 신발을 살 거금은 없었다. 이건 내가 잘 안다. 나 자신이 딱 이 세대니까.
중학생 때 종종 농구를 하고 난 뒤, 친구들과 나이키 매장에서 가서 '조던'을 보는 일은 가슴 뛰는 일이었다. 종종 누군가 조던 11을 사가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가격 대비 품질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조던이 잘 팔리는 이유는 ‘마이클 조던’을 통해 취향을 공유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길거리에서 조던 1을 신고 가면 나도 모르게 가던 길을 멈춘다. 마이클 조던을 좋아하는 이들은 만화 슬램덩크는 무조건 좋아한다. 또한 주말마다 농구, 축구 등 운동하는 걸 좋아할 거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슈프림, 스투시, 베이프 등 스트리트 브랜드를 좋아할 가능성도 크다.
브랜드 자체가 기업에서 만드는 '로고'가 아닌 각자의 취향을 담는 그릇으로 변했다. 브랜드는 기업과 별개이면서도 동시에 그렇지 않은 존재가 되었다. 스타벅스와 블루보틀을 소비하는 이들의 취향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혹은 같을 수도 있다. 신선한 커피를 정성담아 내리는 경험을 원한다면? 블루보틀로 가면 된다. 커피와 함께 편안한 공간을 소비하고 싶다면 스타벅스에 가면 된다. 뭔가 특별한 분위기를 찾는다면? 개인 카페도 좋다. 나 역시도 블루보틀, 개인 카페, 스타벅스를 모두 간다.
스타벅스와 블루보틀을 찾는 이들은 서로 다를까? '기능'같은 분명한 기준으로 선을 그으려는 근대주의 사고로는 '나눠서' 생각하고 분석하려고 한다. 오히려 나누면 나눌수록 답을 찾을 수 없다. 애초부터 답을 찾는 시도 자체가 잘못 일 수도 있다. 다시 질문해보자. 스타벅스와 블루보틀을 찾는 이들은 서로 다를까? 글쎄다. '커피에 대한 다른 경험'을 찾는다고 정도로만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제 무엇인가 명확하게 나누는 일은 의미가 없다. 근대주의가 만들어낸 '나'와 '타인'의 명백한 구분. 그에 따른 나눔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은 취향에 따라 자신을 나눈다. 그때그때 다르게 행동한다. 이제 기업, 브랜드, 개인, 공간을 나누고 각기 다른 분야로 생각하는 일은 무의미하다. 개인이 기업이 되고 개인 자체가 브랜드가 된다.
공간에 대한 인식도 다르다. 29CM를 생각해보자. 29CM는 법적으로는 통신판매업을 하는 업체다. 나는 그곳에 취향을 구경한다. 마치 잡지처럼 말이다. 누군가에 29CM는 쇼핑몰이지만 나에게는 온라인 공간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29CM, 미스터 포터 등 콘텐츠가 강력한 온라인 커머스도 하나의 멋진 공간으로 인식한다. 아차! 무신사도 있다! 이제 온라인 커머스는 '종이'같이 오프라인에서 통용되는 매체를 온라인으로 접근하는 도구다.
온라인 커머스와 플랫폼은 데이터, 데이터 분석기술, 인공지능을 통해 온라인을 더욱 강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속에서 잔재한 온라인적 요소들을 모두 빨아드렸다. 그 결과 온라인은 사람들의 '시간'을 더욱 줄이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새벽 배송이 가능해지자 요즘에는 30분 이내 신선 배송도 가능하리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점차 온라인과 오프라인상 경계는 명확해지고 있다. 온라인 '시간 효율성'을 향해 나아가고 오프라인은 '밀도'가 강한 경험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코로나 19로 인해 이러한 흐름은 더더욱 강화되고 있다.
온라인, 오프라인이 가진 장단점과 공간감이 선명해지면서, 브랜드들은 이를 통해 자신들을 차별화하는 요소들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쿠팡, 마켓 컬리, 이마트는 배송 서비스에 각각 로켓, 샛별, 쓱배송이라는 이름을 붙여 자신들을 정의한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쿠팡에서 시켜. 마켓 컬리에 주문해"같은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어느 순간 브랜드가 '배송'이라는 '명사'를 대신하기 시작하며 '삶'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이제 '알렉사 과일을 주문해줘'와 '쿠팡에서 시켜'는 이제 동일한 맥락을 가진 표현이다.
반면에 오프라인은 온라인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오프라인이 온라인에게 밀려 지금도 고전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코로나 19로 이 간극은 더 벌어지고 있다. 오프라인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온라인이 가진 무한한 공간력, 효율성을 따라갈 수가 없다.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상품만 제공하는 일은 애초부터 경쟁이 되지 않았다. '유통'을 상대로 하기 때문에 오프라인은 온라인에게 고전하고 있다. 그렇지만 온라인이 하기 힘든 '제안'을 경쟁력을 삼고 그 '제안'의 밀도를 높여 '공간 경험'으로 안착시키자, 오프라인은 조금씩 경쟁력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가 호텔이다.
공간 개념은 온 오프라인의 경계를 넘어갔다. 사람들은 각자마다 취향, 성향이 담긴 여러 가지 SNS 계정을 만들고 그곳에 자신의 페르소나를 담아낸다. 이 말은 멀티 페르소나는 플랫폼에 취향을 나누어 표현한다. 나 역시도 5개 정도의 다른 플랫폼 채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같은 정보를 전하는 채널은 없다. 모두 다른 관점으로 전하려고 한다. '경험'을 중점으로 다룬 글은 '경험'을 강조하는 계정에서, 디자인을 강조하는 글은 '디자인'을 강조하는 계정에서 취급한다. 나는 온라인상에서 5개의 공간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나는 온라인상에 소유한 공간은 5개 이상이다. 누군가는 온라인상 공간을 허상이라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정확하게 SNS 플랫폼 서버에 데이터로 저장된 물성을 가진 공간으로 존재한다. 누군가는 종이라고 불리는 '물성'을 가진 공간 속에서 존재한다. 서점에 있는 수많은 잡지들. 그 잡지들은 실체가 있을까? 그들은 오프라인에 있는 각기 요소들을 종이에 옮겼다. 그렇기에 그들은 종이에 분명하게 존재하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잡지 내용은 종이, sns, 유튜브 등 다양한 레퍼런스로도 존재한다.
우리는 강한 건축과 근대주의 지배하던 시대를 넘어서 약하고 부드럽게 연결되는 사회를 살아간다. 여기서 약하다는 말은 'weak'의 개념이 아닌 'border'. 경계와 경계가 허울 어지는 약한 경계를 의미한다. 매우 선명했던 공간, 브랜드, 사람 간의 경계는 지속적으로 약해지고 있다.
과거 근대건축처럼 강함을 내세우는 시대는 이미 종언을 고한 지가 오래다. 동시에 강한 메시지를 풍미하던 기업들의 메시지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지금은 유연함이 이끄는 시대다. 오히려 유연함을 통해 묶고 엮어내는 편집력이 더더욱 힘을 받는 시대다. 그렇기에 각자마다 취향이 존중받기 시작한다. 서브컬처와 메인 컬처는 서로 합쳐지고 혼종이 되기도 한다. 하이패션과 스트릿 패션이 협업을 한다. 유투버와 방송회사가 협업하기도 한다. 취향이 부상하면서 자연스럽게 브랜드는 삶 속으로 더더욱 파고 들어간다. 브랜드가 삶을 지배하는지, 삶이 브랜드를 지배하는지 그 경계는 매우 모호하다.
집이라는 최고 성취가 젊은 세대에게 더 이상 불가능해지면서, 젊은 세대는 집이라는 성취 대신, 취향 완성을 성취로 삼는다. 조던을 수집하는 게 성취다. 핫토이 피겨를 모으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브랜드 옷으로 스타일을 완성해나가는 게 성취다. 우리는 성취라는 말을 보다 어감이 좋은 '인싸'라는 단어로 사용한다. 어떻게 보면 외피만 챙긴다고 생각하지만 20년간 할부로 구입하는 주택이야말로 진정으로 외피를 추구하는 삶의 결정체다. 매달 매달 이자와 원금을 통해 완성시키는 집이라는 퍼즐. 오히려 취향은 내가 꾸준히 성찰하고 만들어온 단단한 내피에서 시작한다.
요즘은 무수히 많은 브랜드들은 하나같이 브랜딩을 강조한다. 브랜드의 이야기, 취향, 색깔 모든 걸 소개한다. 혹자는 외피가 강하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외피가 강하고 허세가 강한 빈약한 콘텐츠는 사람들이 알아서 걸러낸다. 오히려 강력한 내피를 가지며 여백과 틈을 가진 브랜드가 더욱 힘을 얻는다. JOH, 이솝, 블루보틀, 스타벅스, 츠타야는 이러한 부류에 속한다.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인 슈프림은 벽돌마저도 브랜드로 만들 정도다. 이제 도시, 공간, 나를 엮는 역할 중심에는 브랜드가 있다. 브랜드 범위는 정말로 끝이 없다.
도시도 브랜드가 되고 있다. 포틀랜드, 교토, 도쿄, 서울, 포르투, 파리, 베를린, 방콕 같은 도시 그 자체도 브랜드가 된다. 모노클에서 발행하는 트래블 매거진도 미국이 아닌 뉴욕을 소개한다. 시리얼도 뉴욕, 런던 이런 식으로 소개한다. 그래서 이 브런치 북에서는 브랜드가 만든 공간을 많이 다룬다.
브랜드는 기업이 만든 로고가 아닌 지금 우리 삶을 엮는 구심점이다. 당연히 브랜드를 홍보하는 마케터들은 어떤 면에서 과거 예술을 전하는 화가들 같이 변했다. 그렇기에 이 브런치 북에서는 브랜드 전략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도시, 브랜드, 공간에 대한 미감을 다룰 것이다. 이는 철저하게 내 경험에 근거해서 적어간다. 나는 경험하지 않은 건 쓰지 않는다. 오히려 쓸 자신이 없다.
경험을 통해 농축된 지식은 나라는 사람을 통해서 응축되어 나온다. 와인에서 말하는 떼루아와 빈티지는 자연이 만든 풍족함을 체득한 땅을 뜻한다. 개개인의 경험에서 기반한 것들은 어쩌면 떼루이와 동일할지 모른다.
브런치북 내용중에서 일본공간,일본편집에 대한 표현들이 종종 나옵니다. 이에 관한 보다 상세한 내용과
제 관점은 저의 다른 브런치북인 [교토공간. 일본정원에서 답을 찾다]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