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의 대화 상대
부부싸움이란 게 꼭 별일 없어도 일어난다.
정말 이유 없는 이유로 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물컵을 왜 거기다 뒀냐든지.
아니면 그날따라 말투가 맘에 안 든다든지.
그날도 그랬다.
아무 일 없이 조용했던 하루였는데,
그 조용함이 사실은 ‘폭풍 전야’였던 거다.
집 안이 이상하게 고요하다 싶더니
와이프가 툭 쏘아붙인다.
"내가 말 안 했어? 그거 그대로 두지 말라고."
...아, 시작됐다.
나도 모르게 몸이 굳고,
옆에 있던 코짱이와 초코도 얼음이 된다.
녀석들도 안다.
이상한 기류를.
그날따라 초코는 소파 밑으로 숨었고,
코짱이는 슬그머니 내 무릎으로 올라와
나 대신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녀석들도 가족이니까.
싸움이 나면 제일 먼저 분위기를 읽는다.
그리고 싸움이 터진 뒤,
언제나처럼 찾아오는 긴 정적.
TV 소리는 켜져 있는데,
아무도 그것을 보고 있지 않다.
아내는 설거지를 하다 멈춰 서 있고,
나는 휴대폰만 멍하니 만지작거린다.
말이 사라진 집,
그리고 그 침묵 사이에서
고양이들 발자국 소리만 희미하게 들린다.
그때, 초코가 먼저 움직인다.
소파 밑에서 나와 아내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
조심스럽게 발등에 머리를 부빈다.
그 뒤를 코짱이가 따라가
아내 발치에 조용히 누워버린다.
그 순간, 아내의 어깨가 살짝 흔들린다.
긴 숨이 조용히 흘러나온다.
그리고 마침내,
아내가 코짱이를 안고 입을 연다.
“엄마가 미안해... 우리 애기들 놀랐지?”
코짱이를 토닥이며 말하더니,
초코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괜찮아~ 초코도 안 무서웠어?”
순식간에 냥이들과의 대화 모드.
그 말투엔
아직 다 풀리지 않은 감정과,
풀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섞여 있다.
그러다 어느새 화제는 나로 옮겨가고,
그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못 한 채
냥이들한테 혼나는 남편이 되어버린다.
“아빠는 말이야~ 또 자기가 맞다 그러지 뭐야~”
“그치? 그렇지 코짱아?”
“냐옹.”
...이쯤 되면, 웃음이 난다.
물론 억울하긴 하지만,
화가 누그러진 와이프 얼굴을 보면
‘이 정도면 됐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나도 안다.
결국 싸움의 대부분은
서로 말하지 못한 서운함이 쌓여서 터지는 거란 걸.
그걸 알면서도
우리는 또 말 대신 눈치를 보고,
표정 대신 냥이들 반응을 읽는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 고양이들은 조용히 그 틈을 메워준다.
혼낼 땐 와이프의 편을 들지만,
내가 조용히 한숨 쉬고 있으면
슬그머니 내 옆에 와서 발을 툭 건드린다.
“괜찮아, 아빠.”
고양이들은 우리 부부의 사이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다툼의 중심에서
때론 우리보다 더 어른처럼 굴기도 한다.
결국 오늘도 나는
코짱이와 초코 덕분에 무사히 하루를 넘겼다.
오늘의 싸움도, 내일이면
기억도 흐려질 거다.
다만, 우리 고양이들 마음속엔
‘아빠 또 혼났다’는 기록이 하나 더 늘었겠지만.
ps.
코짱아 초코아!
아빠편 들면 안돼~ 엄마 편만 들어~!
사람은 말로 다퉜고,
고양이는 말 없이 안아줬다.
사랑은 늘 그렇게, 의외의 곳에서 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