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륙은 예정되어 있지 않았다
2017년 6월 18일, 18시 43분
국가안보전략실 비인가 회의실, 청사 지하 2층
문은 닫혀 있었고, 기록 장치는 없었다.
출입기록도 남지 않는 이 공간은,
국가라는 허울 뒤에서 현실을 쥐고 흔드는 이들의 회의장이었다.
"정보 누출 가능성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물었다.
다른 한 명이, 서류를 한 장 넘기며 대답했다.
"그가 육지로 도달하기 전에 막아야 합니다.
정치권 거래 내용, 민간경로 통신 복제본 모두 보유 중입니다.
확산 시 치명적입니다."
"동승자?"
"부인과 아들입니다.
문제될 인물은 아닙니다."
침묵이 잠시 흐르고,
최종 지시가 내려졌다.
"사고로 정리해.
실행은 아래에서 끝내고, 위엔 결과만 올라오게 해."
그날 밤, 명령이 내려졌다.
2017년 6월 18일, 19시 12분
화이트팀 SC-0 작전국
코드명: 4-C
임무명: 불완전 귀환
작전 목적: 사고로 위장된 탑승자 전원 제거 및 기록 조작
지시 요약:
현장 진입: 충돌 5분 이내
생존자 여부 확인 후 ‘완전 사망’ 정리
블랙박스 기록 삭제 및 위조
기체 손상 형태 조작
지상기록·관제기록 일치 작업
무단 탑승자 존재 증거 제거
최종 보고서 키워드 삽입: ‘기장 과실 추정’
화이트팀 투입 인원 4명
C1: 현장 통제
C2: 생존자 확인 및 제거
C3: 항공기 기술 담당
C4: 기록 위조 담당
22시 07분 – 제주 민간 격리 활주로
RJ-88A 비즈니스 전세기, 조용히 이륙.
승객 5명, 조종사 1명.
기내는 정숙했다.
3C 좌석, 정치적 제거 대상.
동승한 부인과 여섯 살 아들은 창가에 앉아 있었다.
아이는 인형을 안고 있었다.
비행기를 처음 타보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 기체는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는다.
그는 착륙이 아닌 추락을 예정받은 상태로 이륙한 사람이었다.
22시 34분 – 고도 6,000ft
기체의 통신은 끊겼다.
화이트팀이 산악기지에서 가동한 통신 간섭기가 주파수를 마비시켰다.
기장은 관제탑 호출을 시도했지만 반응은 없었고,
이후 조종간이 미세하게 무뎌졌다.
엔진 반응 지연.
자이로센서 오작동.
기체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고도를 잃기 시작했다.
아이의 인형이 바닥에 떨어졌고,
부인은 불안한 눈으로 기체 안을 둘러봤다.
3C 남성은 고개를 숙였다.
아들의 손을 잡고,
다시 창밖을 보았다.
그는 모든 걸 알고 있었다.
이 비행이 이륙은 있어도 도착은 없다는 걸.
22시 42분 – 추락
비행기는 강원도 산악지대 비지정 구역에 충돌.
좌측 날개 분리, 동체 부분 파괴.
불꽃은 없었고, 잔해만이 남았다.
화이트팀은 3분 전에 이미 지정 지점에서 대기 중이었다.
22시 45분 – 화이트팀 현장 진입
C1: 충돌 반경 통제
C2: 외부반응 탐지
C3: 기체 상태 확인
C4: 블랙박스 분리 및 삽입용 디바이스 준비
모든 투입원은 무전 사용 금지.
모든 교신은 2차 암호파일로 나중에 자동 전송됨.
22시 46분 – 생존자 발견
기체 후방.
작은 손이 연기를 뚫고 나타났다.
그 아이는 살아 있었다.
다리에 유리 파편이 박혀 있었고,
입술이 타들어가 있었지만
눈은 떴다.
“...아빠...?”
그가 눈을 들었을 때,
검은 복장의 인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총성이 들리지 않게 발사됐다.
피는 튀지 않았다.
아이는 조용히 쓰러졌다.
보고는 없었다.
처리는 종료되었다.
22시 48분 – 블랙박스 조작
C4는 기체 앞쪽에서 블랙박스를 분리한 뒤,
내장 메모리 중 고도 센서 로그를 추출하고,
삽입용 시뮬레이션 파일로 덮어씌웠다.
파일 이름은 유지되었지만,
타임스탬프가 몇 초씩 끊기게 조작되었다.
동시에 교신 누락 로그가 자동 삽입되며
기장 과실 시나리오로 전환되었다.
22시 54분 – 기체 손상 재구성
C3는 산화제와 흙을 섞어
날개 근처에 불완전 연소 흔적을 조작했다.
GPS 칩은 가속 오류를 기록하도록 재설정되었다.
23시 12분 – 현장 철수 완료
화이트팀은 모든 흔적을 지웠다.
탄피 없음.
부러진 나뭇가지 복구.
발자국 제거.
열 감지기 비활성화.
23시 23분 – SC-0 보고 상신
보고서 최종문구:
"2017년 6월 18일, RJ-88A는 기장의 판단 실수로 인해
강원도 산악지대에 추락.
탑승자 전원 사망.
기체는 불완전 충돌 후 연료 분산.
외부 간섭은 발견되지 않음.
현장 대응 결과, 회수 가능한 기록은 없으며
사고 원인은 비행 중 기계적 오류로 추정됨."
2017년 6월 18일, 23시 41분
루카는 차량에서 내리고 있었다.
그는 ‘사후 정리조’였다.
보고서엔 이미 ‘완료’ 도장이 찍혀 있었고,
자신은 그저 주변 확인과 사진 정리만 남은 줄 알았다.
하지만 그가 밟은 땅엔
작고 뚜렷한 핏자국이 있었다.
한 발자국 아래,
말라붙은 피와 함께
아이의 인형 팔 한 쪽이 남아 있었다.
2017년 6월 18일, 23시 43분
강원도 S구역, 추락 현장 외곽
루카는 조용히 차량에서 내렸다.
문을 닫는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이미 현장은 정리된 상태였다.
연기가 거의 가셨고, 공기는 매캐했다.
잔해 주변엔 번호가 매겨진 깃발 몇 개와,
사진 촬영 후 제거된 흔적들이 보였다.
루카는 현장을 천천히 둘러보며 무릎을 굽혔다.
그는 감식용 장갑을 끼고,
금속 파편 하나를 들어올렸다.
불에 탄 흔적은 자연스럽지 않았다.
산화 흔적은 오히려 연소 지점을 숨기려는 듯 분산돼 있었고,
무언가 지나치게 '정돈된 혼란'이었다.
그는 몸을 돌려 동체 후방으로 걸어갔다.
뒤쪽 잔해 틈 사이,
풀숲 가장자리에 말라붙은 피 한 줄기.
그 곁엔
어린아이가 들고 있었을 법한 작은 인형의 팔이
잿더미에 파묻힌 채
나오고 있었다.
누군가 일부러 모른 척하고 지나간 흔적이었다.
루카는 그걸 조심스레 집어들었다.
손끝에 감촉이 남았다.
잔열도 없었다.
완전히 식은 현장,
그런데 그 안엔
아직도 차가운 감정이 깔려 있었다.
그는 천천히 일어섰다.
무전기는 손에 있었지만,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입술이 먼저 움직였다.
마치 누군가 듣고 있다는 듯, 아주 작게.
"...전원 사망이라 했지.
그런데 이건,
정말 그렇게 끝난 건가?"
그의 눈이
흙바닥 한 지점을 멈추며
미세하게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