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 남은 애호박이 말을 걸었다
퇴근하고 들어와
냉장고를 열었다.
채소칸을 정리하다
반쪽 남은 애호박을 발견했다.
며칠 전
된장국 끓이다가 남긴 거다.
라면이나 끓여 먹을까 하다가
문득
아내가 자주 끓이던 된장국이 생각났다.
별다른 재료 없어도
늘 국물이 깊었다.
애호박, 양파, 두부, 대파.
지금 내 냉장고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물을 올리고
멸치 다시팩 하나 넣고
애호박을 반달 모양으로 썰었다.
그런데
도마위에서 손이 잠깐 멈췄다.
아내는
애호박을 좀 도톰하게 썰었다.
그게 식감이 좋다고
그랬던 것 같다.
된장 풀고
채소 넣고
국이 끊는 걸 가만히 지켜봤다.
아내는 이런 시간에
‘오늘 별일 없었어?’ 하고 묻곤 했다.
나는 늘
‘똑같지 뭐’ 하고 넘겼지만
지금은 그 평범한 질문이
괜히 그립다.
국이 완성됐다.
간은 맞는데
뭔가 빠진 맛이다.
짠 것도, 싱거운 것도 아닌데
텅 빈 느낌이랄까.
그게 뭔지는
굳이 말 안 해도 알 것 같았다.
같은 재료,
같은 순서,
같은 불 세기.
그런데
누가 끓이느냐에 따라
이렇게 다르다.
음식도 그렇고
사람도,
추억도 그렇다.
냉장고에 남아 있던
반쪽 애호박.
혼자 살다 보면
뭘 다 쓰고 버리는 게
괜히 귀찮아서 그렇게 된다.
하지만 어쩌면
그 반쪽은 계속 남아 있으라고,
그리움을 붙잡아두는 역할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오늘 그걸 써버렸으니
이제 진짜 다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