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물건을 반납하기 전에, 나의 시간을 먼저 챙기자
퇴사 준비는 사직서로 시작되지 않는다.
그보다 먼저, 내 손에 쥔 회사 자산을 하나씩 내려놓는 순간부터다.
책상 위 노트북, 서랍 속 외장하드, 메일함 깊숙이 잠들어 있는 파일들.
모두가 내 것이 아니지만, 그 안엔 내가 보낸 시간과 기록이 담겨 있다.
회사 노트북을 켜면,
폴더마다 이름만 봐도 언제쯤의 내가 그 파일을 만들었는지 기억난다.
밤샘 회의 끝에 올려둔 시안,
거절당하고 묻혔지만 나만 아까운 보고서,
혼자 보기 아쉬워서 ‘임시’ 폴더에 숨겨둔 자료까지.
그중 일부는 나의 경력이고, 또 일부는 회사의 자산이다.
퇴사 전 파일 정리는 이 둘을 구분하는 일부터 시작된다.
회사 로고, 거래처 명단, 내부 가격표처럼
외부 유출 시 문제가 될 수 있는 자료는 미련 없이 삭제한다.
반대로 내가 직접 만든 디자인 시안,
프로젝트 과정에서 내가 작성한 문서 중 공개 가능한 건
USB나 개인 클라우드에 따로 백업한다.
다만, 회사 네트워크에서 개인 메일로 자료를 보내는 건 흔적이 남을 수 있다.
가능하면 외장 저장장치를 이용하고, 회사 정책을 꼭 확인한다.
메일함은 더 복잡하다.
프로젝트 관련 대화, 거래처와 주고받은 자료,
그리고 나만 알고 싶은 노하우들이 뒤섞여 있다.
대부분의 회사 메일은 퇴사와 함께 계정이 닫히니,
필요한 메일은 PDF로 변환하거나,
첨부파일만 따로 내려받아 개인 보관함에 옮겨둔다.
특히 거래처 연락처나 협업 노트는 나중에 다시 찾기 힘드니,
개인 명함첩이나 연락처 앱에 미리 정리해두는 게 좋다.
노트북 정리는 마지막 날 아침에만 하면 늦다.
퇴사 통보 후 시간이 있을 때 조금씩 해두는 게 안전하다.
퇴사 당일은 장비 반납, 퇴직금 정산, 인수인계로 하루가 훌쩍 지나가기 때문이다.
마지막 날,
바탕화면이 깨끗해지고, 메일함이 비워진 노트북을 덮는 순간,
마치 이사한 집의 마지막 열쇠를 반납하는 기분이 든다.
텅 빈 기계 속에서,
내가 보낸 시간과 노력이 가볍게 흩어져 사라지는 듯하지만,
실은 그 모든 기록이 내 안에 남아 있다.
폼나게 퇴사한다는 건
뒤돌아 나올 때 흔적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필요한 것만 단정히 챙기고 나오는 일이다.
그렇게 비운 자리에서,
다음 무대를 위한 공간이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