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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남추녀 Jul 11. 2015

데이비드

류예지


유월처럼 타오르던 푸른 눈을 기억한다. 


스치듯 우연히 만난 평범한 수많은 동양인 사람들 중의 하나였을 뿐인 나를, 나보다 더 먼저 알아봐 준 남자. 알 수 없었다. 그가 왜 내게 그런 호의를 베풀었는지는. 


아무리 뜯어봐도 수려한 외모의 외국인이 호감을 가질 만한 매력적인 동양 여자가 아니었다, 나란 사람은. 그렇다고 그의 눈길을 끌만한 특별한 행동을 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 때의 나는 위저의 ‘버터플라이’를 반복해서 듣고 서있었을 뿐이다.

   

방문을 노크하듯 내 등을 조심스럽게 두드려 온 사람은 푸른 눈의 외국인이었다. 때마침 ‘버터플라이’의 마지막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임 쏘리…아임 쏘리… 아임 쏘리….’ 


선량한 푸른 눈에는 호기심이 매달려 있었다. 그 눈을 보는 순간, 당황하기보다는 한국에 우호적인 감정으로 관광 왔을 그에게 최대한의 호의를 베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능력껏 귀를 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하는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다면? 그럴 땐 무조건 ‘쏘리, 아임 스트레인지 히어’ 라고 정중하게 말한 후 도망가야지. 


그러나 다가선 그는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걸친 레이어드 룩이 묘하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순간, 


“Are you ok?" 


둔중한 저음이 공기를 가르고 들려왔다. 놀랍게도 그가 생애 처음으로 본 낯선 동양 여자에게 건넨 말은 ‘익스큐즈미’로 시작되는 질문이 아니었다. 거두절미하고, 괜찮아요?였다. 쏴아 쏴아- 가까스로 다잡아 놓은 나의 지구가 흔들리고 있었다. 


돌아서야 했다. 참고 있던 뜨거운 무언가가 목구멍을 비집고 터져 나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여행자의 오랜 습관처럼, 길을 물어봐요. 젠장, 내가 어떤 대답을 해주길 바라요? 


그러나 나는 돌아서야 한다는 생각도 잊고, 유월처럼 타오르는 그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Are you ok?"  

“나는, 나는….” 


이상한 노릇이었다. 두 번째 그 말을 듣는 순간, 울림처럼 ‘Are you ok?' 세음절의 문장이 가슴에 각인되는 순간, 나는 생애 처음으로 본 낯선 외국인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사진 @ 손구용


 그랬다. 

 이별이 있었다.  

  

 ‘먼저 갈게.’

 ‘그렇게 해, 난 담배 한 대 피고 나갈 테니….’  

  

여유 있게 불을 붙이는 그의 손에는 내가 선물한 지포 라이터가 쥐어져 있지 않았다. 그 때-그의 기척을 느끼기 전까지- 나는 다시는 추억하지 않을 거라던 그와의 마지막이 잠자고 있는 블루문을 여전히 서성이고 있었다.  

  

“I’m sorry but… you look so…sad."  

  

그랬다. 그 때, 누군가 이렇게 폐허처럼 허물어져가고 있는 나의 내면을 조심스럽게 들여다 보아줬으면 싶었다. 


그러나 제 그림자를 끌고 다니기에도 버거워하는 이 거리의 사람들, 힘들 땐 언제라도 에스오에스해!라고 했던 지인들조차, ‘미안- 바빠서, 나중에 전화할래?’ 지금 이 순간, 저마다의 사연을 껴안고 입 맞추느라 정신없다.  

  

알고 있다. 제 몫의 슬픔 정도는 제 힘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것쯤은. 하지만 가끔은 거두절미하고, ‘살만하니?’ 하고 누군가 안부를 물어봐줬으면 할 때가 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 한마디만으로도 가슴은 견딜 수 없이 벅차오를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지구 반대편에서 온 푸른 눈망울의 외국인이 다 알고 있다는 그런 얼굴을 하고, 흔들리고 있는 것이 정말은 지구인지 나인지, 그런 사실조차 모르고 서 있는 어리석은 나를 알아보고, 

  

“하, 그런가 봐요.”  

 

그는 알아듣지도 못할 언어의 속삭거림에 귀엽게 귀를 들이밀었다. 특유의 이국적인 제스처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서 용기를 낸 건지도 몰랐다. 그 푸른 눈의 남자가 그 순간에는 사랑해마지 않았던 그이기를 간절히 바라며.

  

“하지만, 세상 속에는 내 힘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잖아요?”  


어쩌면 나는 푸른 눈의 그를 그 순간만큼은 사랑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를 위해 어눌하게나마 혀를 굴렸다.   


“what’s your name?"  

“David."

“David… thank you."  

 

‘땡큐’라는 내 말에 가슴 깊이 안심했다는 듯, 활짝 웃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스치듯 우연히 만난 평범한 수많은 동양인 사람들 중의 하나였을 뿐인 나를, 나보다 더 먼저 알아봐 준 남자, 데이비드. 


그의 유월처럼 타오르던 푸른 눈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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