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할아버지댁이 있어서 참 좋다
이번 일요일엔 아이 친할아버지댁에 나들이 다녀왔다. 수지 할아버지댁이자 나의 시댁은 경남 합천의 황매산 밑 작은 시골마을이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정말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한 시댁 동네는 조용하고 한적하다. 동네의 분위기에 평안이 스며들어 있다.
그리고 늘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시는 시댁 식구들이 있어 더 좋은데, 우리 시어른들 뿐만 아니라 동네에 계신 다른 어르신들도 우리를 보고 반겨주시며 인사해 주신다. 그래서 갈 때마다 마음이 더 푸근한 나의 시댁 동네다.
그 동네엔 어르신들만 계셔서 아이 보는 일이 정말 귀한데, 우리 수지가 가면 동네 어르신들이 다 아이에게 집중하고 이뻐해 주신다. 그 관심을 수지도 알아서 어르신들이 수지에게 말 걸고 인사해 주면 수지가 쑥스러워하면서도 즐거워한다.
이렇게 정겹고 푸근한 동네다.
수지는 할아버지댁 앞에 대왕거미가 거미줄을 쳐 놓은 것도 구경하고, 우리 아파트에서는 본 적 없는 아주 큰 검정 나비를 보기도 했다. 내가 봐도 신기했는데, 아이는 얼마나 신기했을까.
그리고 동네에 밤나무가 있는데 밤송이가 바닥에 가득 떨어져 있었다. 가시 돋친 밤송이를 처음 본 아이는 “벌레다!”라고 했다.
그래서 수지 아빠가 밤송이 안에 벌레가 있어서 벌레라고 하는 줄 알고, 밤송이를 건드려서 안을 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수지는 밤송이 자체를 보고 벌레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이건 벌레가 아니고 밤송이라고 알려주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밤송이가 신기한 수지는 오늘 이렇게 밤송이의 존재를 알았다.
나도 밤송이는 정말 오랜만에 보는 거라, 괜히 반가웠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밤송이를 보는 건 흔하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시댁 동네에 오니 재밌는 것들을 많이 구경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길가 사과나무에 초록색 사과가 주렁주렁 달려있었는데, 남편이 말하길 어릴 때 이 사과를 따먹었다고 한다. 사과가 보기엔 작지만 맛있다고 했다.
내 남편이 어린 시절 이 시골을 뛰어다니며, 놀다가 간식으로 사과를 따 먹었을 모습을 상상하니 너무 귀여웠다. 그리고 남편의 어릴 적 동무였던 사과나무가 아직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시간이 흘러도 그 자리 그대로인 나무를 보고 뭔가 뭉클하기도 했다.
어릴 적 그 사과를 따먹던 소년이 어느새 커서 자기 딸을 데리고 이곳에 와서 사과나무를 딸에게 소개시켜주다니. 뭔가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수지는 할아버지댁에만 오면 소를 보러 간다. 아버님은 큰 축사를 가지고 계셔서, 시골에 가면 언제든 소를 볼 수 있다. 수지는 오늘도 어김없이 소를 보러 간다고 했고, 축사 앞에 있는 멍멍이 친구에게 먼저 인사해 주고, 소를 보러 축사로 들어갔다.
축사엔 아무래도 비료와 거름, 소의 배설물 등으로 냄새가 지독했는데 평소 냄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수지가 아무렇지 않게 아빠 손을 잡고 소를 보러 들어가는 게 너무 신기했다.
평소엔 조금만 무슨 냄새가 나도, “아 냄새! 이거 무슨 냄새야?” 하고 물어보고 이상한 냄새가 나면 그걸 피하는데, 희한하게 축사에서 나는 냄새는 괜찮은가 보다. 이게 소 친구의 냄새라고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오히려 내가 “아이고 나는 못 들어가겠다” 하고 밖에 있었는데, 수지는 아빠 손을 잡고 들어가서 소를 보고 웃고, 인사하고, 구경하고 장난치며 즐겁게 놀았다.
즐거워하는 아이를 보니, 문득 수지의 할아버지댁이 시골에 있어서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도시보다 시골에 아이의 놀거리가 더 많은 것 같다.
겉으로 보면 도시는 어딜 가든 뭔가로 가득 차 있고, 화려하고, 재밌는 것들이 많아 보이는데, 아이랑 놀러 가면 늘 가는데만 가게 되기도 하고, 막상 아이가 오감으로 즐길 거리가 도시에 그리 많지 않다는 걸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시골에 오면 장난감이나 놀이터 하나 없어도, 시골이란 이 공간 자체가 아이에게 놀이터가 되고 장난감이 된다. 시골의 자연은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매번 다양한 동물들과 곤충들, 그리고 나무의 열매들을 보기도 한다. 가까이서 소를 볼 수 있는 축사가 즐거운 놀이공원이 되기도 한다.
오늘 우리 세 식구 같이 보내는 시간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저 길을 걷기만 해도 즐겁고, 길가에 꽃을 봐도 즐겁고, 곤충을 보는 것으로도 즐거웠다.
아이와 같이 있다 보면
내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재밌고 특별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이의 눈으로 보는 아름다운 세상을
나도 같은 시선으로 보게 된다.
수지는 할아버지댁에서도 제기를 꺼내서 생일 축하 놀이를 하고, 종이컵 하나로 이건 커피라며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종이컵을 건네준다. 그리고 “이건 바닐라 라테 커피야 먹어봐”라고 말해서 모두 함박웃음 짓게 했다.
도대체 바닐라라테는 어떻게 알게 된 건지,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말하며 계속 커피를 주는 아이가 너무 귀여웠다.
어머님은 오늘 수지가 하도 커피를 많이 줘서 잠을 못 자겠다고 웃으며 아이의 놀이를 재밌게 받아주셨다.
천사 같은 아이는 오늘도 이렇게 온 식구들에게 웃음을 선물해 주었다. 아이가 있으니 집안에 웃을 일이 끊이지 않는다.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오려고 차를 타는데, 수지가 “오늘 재밌었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모두 기뻐하며 감동받았다. 어머님이 수지가 재밌어해서 정말 다행이라며 좋아하셨다.
아이의 재밌었다는 말 한마디는 큰 힘이 있다. 아이와 같이 시간을 보내다 보면 몸이 고단하기도 한데, 아이의 그 말 한마디가 모든 피로를 다 씻어준다. 그리고 세포 하나하나에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오늘 힘을 다 썼구나 싶다가도, 아이의 그 말이 새로운 힘을 주고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기쁨을 느낀다.
우리 온 식구가 이렇게 웃고 즐거워하며 사랑이 넘치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사랑이 있는 곳은 어디든 행복하다. 이렇게 아름답고 따뜻한 시골에서 행복한 추억을 선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