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배려는 없다
러닝을 시작한 지 거의 한 달이 되었다. 첫날 달렸을 때의 기분이 너무 좋아서 ‘나 앞으로도 러닝 계속하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는데 그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꾸준히 러닝을 즐기고 있다. 달리다 보니 점점 거리도 늘고, 더 오래 뛸 수 있는 체력도 조금씩 좋아지는 걸 느낀다.
러닝이 재미있어서 계속 이어가고 있지만, 매일 하긴 어렵다. 직장을 다니며 육아까지 하다 보니, 시간을 마음대로 쓰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남편이 쉬는 날이거나 낮근무를 하고 일찍 퇴근하는 날에는, 무조건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러닝을 하러 간다. 다행히 남편은 내 러닝에 매우 협조적이다.
사실 남편이 먼저 러닝을 시작했고, 내가 남편 따라 러닝을 하게 돼서인지 남편은 내가 달리는 걸 진심으로 지지하고 응원해 준다.
어제는 마침 남편이 쉬는 날이었다. 그래서 아침부터 남편에게 '나 오늘 러닝 할 거야'라고 미리 말해 두었다.
원래는 퇴근 후 저녁에 러닝을 뛰러 갈 생각이었는데, 어제는 어쩌다 보니 저녁식사 시간이 평소보다 늦어졌고, 그러다 보니 일정이 전반적으로 조금씩 밀렸다.
그래서 나는 '오늘은 좀 늦게 뛰어야겠네.'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때 남편이 말했다.
"내가 수지 재울 테니까, 너는 그때 뛰고 와."
그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 알겠어! 나 그때 뛰고 올게!" 하고 바로 대답했다.
원래 수지를 재우는 일은 거의 늘 내가 맡아왔다. 아기 때부터 나와 자는 게 습관이 된 수지는 지금도 내가 옆에 있어야 편히 잠든다. 내가 없으면 계속 나를 찾기 때문에, 수지가 잘 때만큼은 내가 꼭 옆에 있어야 했다.
그런데 요즘엔 아빠가 재워도 나를 찾지 않고 잘 자기 시작했다. 그만큼 많이 성장을 한 것 같다.
그래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여전히 대부분은 내가 수지를 재웠다. 그런데 그날은 남편이 나에게 러닝 할 시간을 주려고 먼저 재운다고 말해줬다. 그 마음이 정말 고마웠다.
남편도 그날은 수지를 하원시키고, 직장 동료 가족상으로 장례식장까지 다녀온 데다, 수지랑 마트까지 다녀왔는데. 한참을 바깥에서 보내며 꽤 피곤했을 거다. 그런데도 자기가 수지를 재울 테니, 나에게는 러닝하고 오라며 시간을 내준 것이 정말 고마웠다.
난 남편에게 고맙다고 말한 뒤, 얼른 러닝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그날은 무척 추웠다. 러닝을 시작한 뒤로 가장 추웠던 날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뛰기 시작하니 금세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장갑도 벗고, 목 끝까지 올려 잠갔던 점퍼 지퍼도 내리고, 그대로 힘차게 달렸다. 달리다 보니 더 이상 춥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오늘도 달릴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밤바람을 가르며 달렸다. 달릴수록 몸에 열이 오르고, 나에게 이 시간을 내어준 남편에 대한 고마움도 함께 더 따뜻해졌다.
그날 나는 7.2km를 달렸다.
달리기를 마치고 가볍게 스트레칭을 한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늘 내가 뛸 수 있었던 건 남편 덕분이구나.' 하는 마음이 계속 머물렀다.
집에 도착하니, 내가 들어오는 소리에 남편이 방문을 열고 "잘 다녀왔어?" 함 맞아주었다. 밝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남편을 보니, 괜히 마음이 더 따뜻해졌다.
나는 "오늘 엄청 추웠는데 그래도 잘 뛰었어. 너무 좋았어." 하고 이야기했다.
육아를 하는 부모인 우리는 서로에게 개인시간을 주기 위해 배려가 필요하다. 한 사람이 아이를 봐줘야 다른 한 사람이 잠시라도 자기 시간을 갖거나 필요한 일을 할 수 있다. 이런 배려와 협력 없이, 혼자 모든 걸 감당하기에는 조금 버겁다.
부부 사이에서는 배려 없이는 원만한 관계를 오래 유지할 수 없다는 걸, 시간이 갈수록 더 깊이 느낀다.
나는 남편이 나를 위해 해주는 배려를 알고 있다.
그리고 나 역시 남편을 위해 말없이 배려한다.
서로 크게 티를 내지 않아도 안다.
상대가 나를 생각해주고 있다는 걸.
당연한 배려는 세상에 없다. 어떤 배려도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은 아니다.
상대가 해준 배려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고마움으로 받아들이고, 그 마음을 알아줄 때 배려하며 챙겨주는 마음은 더 오래, 더 따뜻하게 유지된다.
남편의 배려 덕분에 차가운 밤바람을 맞으며 시원하게 달렸던 그날 밤, 내 마음의 온기는 그 어느 때보다 따뜻했다. 밤바람은 차가웠지만, 마음에는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