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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Apr 07. 2024

연쇄 실연 17범의 고백 6-2

만약에 우리

(그림출처 : Co-pilot, Dall.E3)


6-2 만약에 우리


사랑을 가득히 담은 해맑은 미소를 지닌 아이가 40대가 된 "LOSER17"을 집인 듯한 곳에서 쳐다보고 있다. 누가 봐도 닮은 생김새를 갖고 있어서 아빠와 아들이란 것이 뻔히 드러난다.


그 옆에서 주로 "채소와 과일" 위주로 차려진 음식 위에 저열량의 "드레싱"이 올려져 있고, 최적의 양인 것처럼 보이는 탄수화물과 단백질 음식도 같이 차려놓고 웃고 있는 여자는 분명히 엄마일 것이다.


"아빠, "트랙 큐브"를 제가 얼마나 빨리 맞출 수 있다고 했는지 기억해요?"


"응. 알지. 5초라고 했잖니. 그 정도면 동네 대표 정도는 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었나?"


"아뇨. 아직 대회 나갈 수준도 못되요. 3초 정도는 나와야 지역 예선이라도 나가볼 수 있어요"


아이는 "LOSER17"의 느린 손놀림 같은 것은 다행히 물려받지 않았다. 뛰어난 운동 신경은 외탁을 한 것이다. 원래 게임이나 승부에서 이기는 것을 잘 못하는 아빠와는 다른 아이다.


태생적으로 높은 승부욕을 갖고 운동 신경이 발달한 그와 결혼해서 낳았기 때문에 자신과는 다른 특성과 강점을 지닌 아이가 태어났던 것이다.


사랑에 빠져 연애를 하면서도 "LOSER17"은 아이가 사회에서 낙오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보다 강한 이가 되기만을 바랬다. 기특하게도 그렇게 자라는 것 같다. 한없이 귀여운 볼을 쓰다듬는다.


손에 쫀득쫀득하면서도 부드러운 아이의 얼굴 피부가 느껴진다. 자신의 마음속에서 부성애가 샘솟는 느낌이 올라온다. 이런 것이 삶 속에 있는 행복감이란 감정일 것이다. 이것을 잃고 싶지 않았다.


"여보, 식사 마치면 시아버지가 초대하셨으니 뵈어야죠"


"아. 그래. 오랜만에 같이 차나 마시면서 손주도 보고 이야길 하고 싶다고 하셨지"


"LOSER17"은 자신의 내부의 칩에 의식으로 명령어를 전달해서 거실의 창문을 쳐다보며 아무 말 없이 블라인드를 치고, 거실 가운데의 홀로그램 영사기를 가동해 순식간에 거실을 자신의 아버지의 집의 거실 공간과 겹쳐놓는다.

(참고: Co-plot, Dall.E3)

두 거실의 모양이 다르지만 적절한 왜곡을 통한 동기화가 이뤄져서 얼핏 같은 거실 공간에 그의 아버지와 "LOSER17"이 앉아서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 선명한 홀로그래픽이 만들어졌다.


"그래. 오랜만이다. 그동안 가족엔 별고 없고?"


"네, 아버지, 별일 없으시죠? 보시다시피 애가 요즘 "트랙 큐브"에 빠져서요. 얼마 전엔 5초 만에 했다고 자랑하고 그런 게 좀 특별한 일이네요"


"할아버지, 이것 좀 보세요. 미국에서도 이렇게 빨리 맞추는 애는 많지 않을 거라고요!"


아이는 손 위에서 지구 모양으로 둥근 구형의 큐브이지만, 불균일한 도형 패턴의 수많은 조각으로 이뤄진 정육면체의 조각별 색상이 각기 불규칙하게 흩어진 상태를 순식간에 마술처럼 원상복귀 시켰다.

(출처 : Co-pilot, Dall.E3)


"오오, 과연 내 손자야! 정말 빨리 배우고, 손놀림도 엄청나게 빨라! LA에서 너처럼 큐브를 빠르게 맞추는 녀석은 본 적이 없다. 정말이야"


"아버님이랑 자기랑 자꾸 칭찬만 해주니까 애가 공부보다 이런 걸로 칭찬받는데 너무 신경을 쓰잖아요. 좀 칭찬도 적당히 해주세요"


"아휴. 그래 며늘 아가. 요즘 한국에서 결혼도 안 하고 그래서 우리 손자가 공부 못하고 취직도 못해서 나중에 장가도 못 가게 될까 겁나는구먼. 앞으론 공부 잘하나 못하나부터 좀 보자"


"아버지, 제가 뭐 공부 열심히 관심 가지고 들여다보아서 잘했나요? 자기야. 난 우리 애가 최소한 금년까진 좀 놀았으면 좋겠어. 내 아들이라면 언젠가는 자발적으로 공부할 날이 오게 된다니까. 이런 작은 취미에서부터 승리하고 잘하는 기회를 잡아야 공부 자신도 생기는 거고"


"여보, 육아에 대한 자기 의견은 잘 알겠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했다간 기본도 못하는 아이가 될 수도 있는 시대예요. 뭐, 원래부터 시대 불문하고 이 나라는 무한 경쟁 사회기도 하고요"


"뭐야. 이거!!! 너 지금 집안에 사이키 조명이라도 틀어놨냐? 문 열어 이 자식아!"


순간 이 모든 게임 영상의 바깥으로 알코올이 들어가 혀가 꼬인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LOSER17"은 어쩔 수 없이 PD의 버튼을 눌러 영상송출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피색 머리"와 헤어진 뒤에 "LOSER17"는 자신이 시뮬레이션 게임 시나리오를 제공하고 이를 변형해서 채택한 "프로메테우스사"의 "일루미네이션 공원"의 "연쇄 연애 성공자" 무료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 게임 시나리오는 자신에게도 꽤 유용했다. 실제의 아버지와는 다른 설정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생성할 뿐만 아니라, 특권의식에 찌들은 사디스트 같은 "커피색 머리"도 보다 부드러운 설정으로 게임 내에서 캐릭터로 만들어 게임화 할 수 있었다.


(출처: Co-pilot, Dall.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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