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많은 사람을 찍어누르려고 하다가 자칫 내 이미지가 손상될 수 있다. 그 사람들을 더 자극할 우려도 있다. 그들을 공략하는 효과적 방법은
“적당히 하시죠.”
‘적당’은 ‘알맞다’는 뜻으로 누가봐도 좋은 말이다. 이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 말을 했는데도 질문을 계속한다면, 타인을 존중할 줄 모르고 자기 주장만 하는 인간이 되고 말 것이다. ‘적당’이라는 말로 그들의 태도도 꼬집을 수 있다. 말투가 거칠거나, 언성을 높이거나, 상대방 말이 끝나지 않았는데 치고 나오는 일은 노매너일진대, 그 사람들이 그런 태도를 종종 보이기 때문이다.
이제 21살이 된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 때는 2018년 - 기후위기를 걱정하던 16살의 귀여운 아이는 UN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의 초대로 각국 정치인들 앞에서 발언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 나이에 지구까지 다 생각하고...기특한 아이구만.
거기 있던 높은 사람들은 "자신의 분노조절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트럼프)”, "세상이 다양하고 복잡하다는 걸 설명해 주지 않고 아이를 이용한다(푸틴)"와 같이, 툰베리의 언사가 몹시 적당하지 않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또 환경단체들은 매우 적당한 발언이라고 호응했다.
무언가에 관심을 가지면 그만큼 열이 날 수 밖에 없다. '화'는 어떤 일에 뛰어드는 원동력이 된다. ‘적당’은 좋은 말이되, '어디까지가 적당인지'는 결국 적당을 말하는 사람의 기준이다. '적당히’ 라는 객관적인 알맞음 속에는 각자의 주관적 불편함이 숨겨져 있다. 나의 적당함은 어디쯤인가? 남의 얘기를 들을 일이 생길 때마다 가만히 느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