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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서출판 야자수 Aug 04. 2024

질문의 멍석

과정과 이유를 공개하라

이제 우리는 현실을 알았다. ‘질문’이 좋다는 말에 그만, 질문을 하면 사람들이 귀를 기울여주고 박수라도 받는 걸로 착각을 했던 것이다.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구체적으로 뭐 때문에 힘든지 말해보자.





“정신적, 육체적으로 피로해요.”

>>> 피곤하면 쉬면 돼죠. 놀아도 피곤한 건데 어쩌라고요.



“돈이 안돼요.”

>>> 본인이 궁금한 거잖아, 누가 돈을 줘요? 돈을 벌려면 돈이 있는 쪽을 위해서 일을 하세요. 그쪽에다가 질문을 할 게 아니라.



“불이익을 받게 됐어요.”

>>> 이런이런. 속상하시겠네요. 그 정도 각오는 했어야죠.










맞다!

사회적으로 질문을 위해 준비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긴 하다. 질문해봤자 결론이 안바뀌거나, 보상이 없거나, 욕을 먹거나…이런 것은 그 개인들이 감수하고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문을 해야겠다면. 그러나, 애초에 질문을 할 통로 자체가 없다면? 질문을 할 수 있으며, 오다가다 관심있는 사람들이 들을 수도 있는 ‘질문의 멍석’을 깔아두는 것은 사회가 할 수 있다.



법륜스님은 “사실을 있는 대로 인식하는 것이 정의의 출발”이라고 하시며, 문명의 발전을 예로 드셨다.


원시부족 사회에서는 “효율성”이 있는 것 중에서도 “공익성”이 있는 것만 전파되었다. 수렵·채취, 농사 보다 효율적인 “도둑질”이 유용한 기술로 인정받지 못하고 “도둑놈” 취급을 받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남에게 손해가 된다", "모두가 훔치기 시작하면 내 것 도둑맞을 수 있고, 공동체가 유지되지 않는다" 이것들은 도둑질이 나쁜 이유이다. 나쁜 일의 전파를 실질적으로 억제한 힘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는 환경이었다. 부족사회에서는 서로의 사정을 훤히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도둑질이 바로 티가 났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금기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영토가 확장되면서, 남의 공동체에서 훔쳐 오는 일은 우리 공동체 시각에서 좋은 일로 보여지게 되었다. 그렇게 계급도, 차별도 생겨났다.



오늘날의 사회는 어떤가? 훨씬 다양하고 복잡하다. ‘정의’의 전제로서 ‘사실’의 공유가 더욱 중요해진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복잡함을 핑계로 공개해야 하는 일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사람들은 그것에 익숙해지고 있다. 정책에 대해서 각 선택지의 장단점, 결정 과정, 무엇보다! 결정의 이유가 설명되고 있는가? 정책에 관한 보도자료를 보면 상업광고와 다름이 없다. 이상한 일 아닌가? 중요한 정책일 수록 당면 문제가 간단치 않아서 좋은 점만 있는 결정은 불가능할진대. 현재 이런 결정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앞으로 어떤 부분을 지켜보면서 대응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 일이 당연한 공식이 된 것이다.


인터넷으로 아무나 정부부처에 질문을 제출할 수 있어서 민주적인 것 같지만, “관심 감사합니다.” 답장 받고 끝이다. 당사자 말고는 그런 질문이 있다는 걸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정부는 진지하게 답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공청회는 초청된 사람들이 자기 얘기하는 자리, 언론에 많이 싣는 쪽이 전문가 의견이고 여론이 된다. 정책에 대해 질문이 공개되고, 결정에 이유를 설명하도록 멍석을 깔아야 한다. 그 멍석의 존재 만으로도 질문을 살리고, 소수를 위한 불합리한 결정을 막는 기능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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