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질문이 많은 사람들은 ‘그 질문이 무엇인지’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단지 질문이 많다는 이유로 싸잡아서 같이 취급받는 것을 싫어할 수도 있다.
그렇다. 질문이 많은 사람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다. 여기서 개인주의란 - '어떤 그룹으로 묶였으면 이후의 행동을 통일하는 미덕'에 거스르는 것을 말한다.
이들은 특정 파벌, 세력, 집단에 진득하니 붙어있지를 못한다. 평소에는 본인들도 잘 느끼지 못한다. 질문이 많은 사람들은 남들과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자기가 알게 된 것도 잘 말해주는 편이다. 사람은 관심사와 의견이 같으면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같은 편인 줄 알고 잘 어울리고 있는데! 이 자들은 거기다 대고도 질문을 하는 것이다. 박쥐 같다, 충성심 낮다는 말을 듣을 수 밖에. 혼자가 좋아서가 아니라, 그런 것보다 질문이 더 중요한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칭찬을 해줘도 그것도 따진다. 비판적 사고가 습관이기 때문이다. 미국 교수인데 한국 칭찬을 많이 하는 ‘샘 리처드’라는 분이 있다. 한국에 강의 초대도 많이 받는다고 한다. 이 분의 수업에서 한 흑인 여학생이 한국 방문 경험담을 얘기했는데, '흑인' '여성'으로서 차별받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고 했다.
좋은 일이다. 확실히 우리나라가 미국 보다 ‘인종’에 대한 차별 개념이 없긴 하겠지만…이유에 대한 분석이 빠진 것만 같다.
차별은 같이 부대낄 때 민감하게 느낀다. 미국은 여러 인종이 섞여 사니까 ‘인종’이 차별 문제를 불러오는 중요 카테고리가 되었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인종이 다른 자는 십중팔구 ‘외국인’이다. 그러니 우리나라에서는 다르게 생긴 사람을 분류할 때 ‘국적’을 우선적으로 따지게 될 것이다. 저 여학생은 영어를 쓰는 나라, 그 중에서도 미국인이라서 차별 대우를 안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에 ‘국적’에 따른 차별 정서가 없지는 않다는 점을 샘 리처드씨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굳이?
그렇다. 굳이!
“왜 그렇게 생각해요?”
“그냥 안하면 안돼요?”
“이거 왜 필요한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이예요?”
굳이 따지려고 한 것이 아닌데 오해를 받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상대가 싫어할 수 있다는 걸 아예 모를까? 아니면 상관이 없는 건가? 어떤 경우이든, 이들은'눈치 없는 사람'이 맞다. 눈치가 있다, 없다는 결국 '눈치없는 행동'을 참을 수 있느냐, 없느냐로 남에게 판단받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