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이 정확히 어디인가요? 북촌을 말하다
북촌에 살고 있다고 하면 누군가는 한옥마을에 사냐고 묻고 누군가는 거기가 어디냐고 한다. 주말이 되면 사람들의 발길로 북적이는 동네이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모르고 여전히 잘못 알고 있는 동네가 바로 북촌이다. 그럼, 북촌은 정확히 어디일까?
서울의 대표적인 한옥마을을 꼽을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남산골 한옥마을과 북촌 한옥마을이다. 가본 이들은 알겠지만 두 마을을 구분짓는 가장 큰 차이점이 사람이 거주하는가 여부이다. 그렇다. 북촌 한옥마을은 여전히 주민들이 삶을 영위하며 살아가는 동네이다. 하지만 명확히 말해 북촌 한옥마을이 북촌은 아니다. 북촌 한옥마을은 가회동에 속해 있고 가회동은 북촌에 속해 있다.
북촌은 정확히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의 동네를 일컫는 말이다. 북으로는 북악산에 둘러싸여 있고 남으로는 광화문과 돈화문을 잇는 도로가 경계이다. 면적은 약 35만 평에 이르며 가회동, 계동, 삼청동, 원서동, 재동, 팔판동, 화동, 재동, 소격동, 송현동, 안국동 모두 종로구에 속하는 지역이다.
청계천과 종로의 윗동네라는 이름에서 비롯된 북촌은 서울이 조선의 도성이 되면서부터 유서깊은 지역으로 자리잡았다. 경복궁은 조선의 창건과 함께 지어졌고, 조선후기 정궁으로 사용된 창덕궁 역시 조선 2대 임금인 태종에 의해 지어졌으니 600년을 고스란히 조선왕조와 역사를 함께한 것과 같다.
조선시대 북촌에는 주로 사왕실의 고위관직에 있거나 왕족이 거주하는 권문세가들의 주거지구였으며 개화기와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개화파들과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거주지였다고 한다. 계동에는 한용운 선생이 머물렀던 만해당이나 3·1 운동을 도모했던 중앙고 숙직실 등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공간이 여전히 자리해 있다.
가회동을 비롯한 북촌의 동네들의 이름은 오랜 과거부터 유래된 지명이 많다. 가회동은 조선시대의 기쁘고 즐거운 모임을 뜻하는 가회방의 북쪽에 위치한다 하여 이름 지어졌고, 원서동은 고종시절 원동이라 부른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특히, 경복궁 동북쪽에 위치한 팔판동은 판서 8명이 살았다는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판서라면 조선시대 벼슬 중 으뜸이었던 육조를 이르는 말로 궁궐에 인접했던 북촌이 당시 양반골이었던 사실을 뒷받침 해준다. 또한 화동은 실제 꽃을 키웠던 동네로 궁중과 관아에 꽃과 과일을 공급하던 관청 장원서가 있었던 동네이다.
북촌가꾸기사업은 1990년대 한옥이 철거되고 다세대 주택건설이 확산되면서 훼손된 북촌을 보존하고 복원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서울시는 2011년까지 총 342동의 한옥을 개보수 지원완료했으며, 총 1,233동의 한옥이 북촌에 조성되어 있다고 한다. 그 노력은 10년만에 인정을 받아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문화유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계동길 끝에 위치한 북촌문화센터에 들리면 북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상시전시를 볼 수 있다. 북촌문화센터는 북촌의 역사와 가치를 홍보하는 전시관으로 서울시가 한옥 매입의 첫 사업으로 사들여 안채, 바깥채, 앞 행랑채, 뒤 행랑채, 사당 등으로 구성된 집의 원형을 살려 수리해 2002년 10월에 개관했다. 북촌 골목 여행자의 안식처이자 안내소이다.
본래 계동마님댁으로 불리던 이 집은 조선말기 탁지부 재무관을 지낸 세도가 민형기의 며느리 이규숙이 서울로 시집와 1935년까지 살았던 곳이라 한다. 대궐을 지은 목수가 창덕궁의 연경당을 본떠 지어 제대로 된 한옥 배치와 담의 구성원리를 확인할 수 있단다. 또 하나 이 집에 살면 아들을 낳는다 해서 한 부자가 이사왔다가 딸 일곱을 낳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