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복판의 정겨운 동네이야기
좋은데 사시네요? 옛날 같으면 아무나 못 사는 동네예요~
밤 늦게 택시로 귀가하던 어느 날, 차에서 내리려는데 나이 지긋하신 기사님이 부러움 섞인 농을 건넨다. 틀린 말은 아니다. 100여 년 전만 해도 북궐(경복궁)과 동궐(창덕궁) 사이에 위치해 왕족이나 관직에 있던 사대부 양반이 거주하며 출입했던 동네니까. 그래서인지 북촌에 산다고 하면 종종 비슷한 말을 듣곤 한다.
북촌토박이는 아니다. 6개월 넘게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북촌 주민이 되었다. 워낙 작은 동네이고 토박들이 많다 보니 매물이 가뭄에 콩 나듯 나오는 마을이다. 아내의 고등학교 학창시절 추억이 깃든 동네이고 덕분에 결혼 전 데이트를 즐기며 이 곳에 살아봤으면 어렴풋이 고대했던 곳이다.
그 바람이 이뤄지는데 딸아이의 교육문제가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서울에서 가장 작은 학교, 신입생 입학식을 전교생이 나와 환영해주고 올해도 신입생이 있다며 언론에 나오는 그런 학교에 다니면 행복할 것 같아 이사를 결심했다. 고종 황제의 명으로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초등학교이기도 하다.
학생, 괜찮아! 어서 타~
북촌은 서울 한 복판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정겨운 동네이다. 토박이 주민들이 많아서인지 시골 마을에서나 봄 직한 광경이 종종 연출된다. 마을버스에 타면 이웃 주민들 간의 대화하는 모습, 이웃집 어르신들에게 인사하는 학생들 모습. 한번은 캄캄한 밤 하굣길로 보이는 교복입은 여학생이 버스에 올랐는데 교통카드에 잔액이 없다는 소리에 부끄러웠는지 부리나케 내리자 괜찮다며 어서 타라는 기사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늦은 밤 어디서 충전을 할 거냐며 제 식구인양 후한 인정을 아끼지 않으셨다.
딸 아이의 손을 잡고 어린이집으로 가는 날에는 함께 등원하는 어머니들의 인사로 어리둥절 하기도 했다. 초면인데도 아이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는 여유가 삭막한 도시 생활에 길들여진 내게는 생경하게 느껴졌던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