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감을 뽑다
자판기의 나라인 일본. 지진 같은 자연재해 상황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구조라고 한다. 요즘 일본엔 자판기만큼 많은 이것이 있다. 바로 가챠다.
가챠는 일본어인 가챠가챠에서 파생된 말이다. 드륵드륵 철끼리 부딪히는 소리의 의성어라고. 뽑기 기계에 동전을 넣고 철컹철컹 레버를 돌려본 경험이 있다면 단번에 이해할 소리다.
얄궂은 걸 돈 주고 뽑는다고 핀잔을 듣던 시절도 이젠 안녕이다. 비싼 거리에서 건물 하나가 가챠 기계로 가득할 만큼 가챠의 인기는 뜨겁다. 초창기처럼 단순하고 귀여운 캐릭터만 품지 않는다. 요즘엔 장바구니 같은 큰 크기 실용적인 물건도 뽑을 수 있다.
한국의 유명 브랜드도 가챠 속에 담겨있다. 르세라핌, 엔하이픈의 가챠를 보고 일본 내의 K아이돌 인기를 실감했다. 신라면 미니어처 뽑기 기계를 보니 하나의 광고판 역할을 톡톡히 하더라. 가챠가 기업의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되다니. 이쯤 되면 최소한 가챠에 입점해 있어야 팬층과 입지가 있다고 보일 지도?
나는 가구를 좋아해서 아르텍 의자와 가리모쿠 소파를 가챠에서 뽑았다. 뽑기 가격은 기계마다 다른데 보통 400엔, 500엔 선이다. 5,000원 내로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나 캐릭터의 일부를 소유할 수 있다는 기대감. 그것이 가챠에 가차 없이 동전을 털어 넣는 이유가 아닐까.
거기다 기계에 예시 사진이 정확히 나와있어 안심이다. 가장 원하는 모델과 원하지 않는 모델이 무엇인지 단번에 파악되기 때문에 실패가 적다. 최소한 내가 좋아하는 분야이니 완전한 실패는 없는 셈.
가챠의 종류가 워낙 많아서 나의 취향과 선호를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뽑아봤자 무게도 가볍고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크기라 나를 위한 기념품으로 최적이었다. 실제로 일본 8~90년대 레트로 물건들이 가챠에 담겨있어서 그것만 모으는 관광객들도 많더라. 마치 스타벅스 시티컵이나 도시별 예쁜 자석을 모으는 기분이려나.
한번 가챠를 뽑고 나니 이후부턴 가챠 기계를 볼 때마다 설렜다. 보았던 기계들을 또 본 적도 있지만 새로운 기계가 꼭 있을 만큼 가챠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니까. 가챠는 최소한 내가 투입한 만큼은 안정적으로 확실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수단이 아닐까.
가챠 덕분에 무거운 동전이 전혀 짐으로 생각되지 않았다. 되려 가챠를 위한 연료가 두둑하단 희망을 품었달까. 과연 작은 공 안에 어디까지 품을 수 있을 것인가. 앞으로의 가챠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