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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탱볼에세이 Apr 26. 2024

[치앙마이 47일 차] 시간이 필요한 일

수영 2시간

 다시 시작된 수영 수업. 그동안 2주나 쉬어서 걱정했다. 지난번 배운 수영을 다 까먹고 못 뜨는 건 아닐까.


 몸이 어느 정도 기억했다. 그동안 물에 가라앉을까 봐 두려움이 컸다. 스스로 불안함을 잔뜩 품고 있어서 내가 나를 의심했다. 때문에 물속에서 난 매번 조급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 칠 뿐.


  오늘에서야 몸이 뜬다라는 확신이 생겼다.  나의 몸을 내가 믿어준 첫 순간. 그제야 물의 결을 차분하게 휘저을 수 있는 여유를 얻었다. 항상 손이랑 발을 동시에 휘저어서 너무 급하다고 지적받았는데, 오늘은 발버둥이 너무 느리다고 얘길 들을 정도로 차분해졌다.


 그렇지만 선생님도 점점 좋아지고 있다며 칭찬했다. 사실 긍정적인 변화를 느끼고서야 털어놓을 수 있는 이야기다. 모쪼록 혼자 끙끙대던 시간들이 지나가서 다행이다.


 수영은 정말 인생을 배우는 것 같다. 발동작이 틀린 것 같아서 2번 발차기하고 숨쉬어야하는데 3번 발차고 숨 쉰다. 선생님이 동작이 틀려도 숨은 2번 차고 쉬라고 격려해주셨다. 틀려도 된다는 말이 얼마나 안심이 되던지.


 오늘은 레일의 절반을 평영으로 헤엄치는 데 익숙해졌다. 수업 10번을 채우는 다음 주는 레일을 완주할 수 있길 꿈꾼다. 조금씩 작은 목표를 이뤄가며, 다음 목표로 나아가는 성취의 맛이 제법 달콤하다.


 공백기동안 치앙마이를 여기저기 누빈 이야기를 했다. 도이캄 사원에 다녀왔다고 하니, 소원을 비는 유명한 절이란다. 선생님도 코로나시국에 소원을 이뤘단다.


 코로나 유행할 때 보험을 들어두었는데, 복권당첨이 되거나 보험을 탈 수 있게 코로나만 걸리고 죽지는 않게 해달라고 했다고. 실제로 그녀는 2주 뒤 코로나에 걸렸고, 보험료를 탈 수 있었다는 이야기. 다시 사원에 찾아가서 재스민 꽃을 한가득 바쳤다는 해피엔딩이었다.


 태국에선 받은 게 있으면 무조건 일부는 돌려줘야 하는 신념이 있다고 했다. 받기만 하면 신이 괴롭힌다고 꼭 감사인사를 해야 한단다. 너도 나도 재스민 꽃을 한 아름 바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건물마다 영혼의 집을 두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비롯되었다고. 실제로 태국에선 건물마다 토지신을 위해 입구에 집을 만들고 과일, 물건, 돈, 꽃을 바치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집을 제공함으로써, 사람이 사는 곳에 들어오지 않으면서 입구에서 보호하고 지켜준다는 것이다. 매번 볼 때마다 싱싱한 꽃과 맛있는 음식이 항상 놓여있는 걸 보면, 태국인들이 잘 보살펴달라고 매일 기도를 올리는 일에 얼마나 진심인지 느껴진다.


  그러면서 선생님은 내가 치앙마이 이야기 쓰는 건 잘 돼 가냐고 물었다. 매일 쓰고 있다고 오늘이 벌써 47일 차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혼의 집 이야기도 책에 쓰라고 귀띔해 주었다. 그녀는 언제든 궁금한 게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물어보라고 말하며, 하나를 물으면 둘을 답해주는 적극적인 도움을 준다.


 평소에 그녀가 오늘의 계획을 물어보는데, 난 그럴 때마다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실제로도 계획이 없는 편이라 그랬는데. 그럴 땐 go with the flow라며 흘러가는 대로 둔다고 말하면 된다고 알려줬다.


 결과적으로 이런저런 스몰토크를 가장 많이 한 날이 되었다. 수영하고 잠시 쉬는 타이밍이 있는데, 난 침묵하고 숨을 골랐다. 생각해 보니 그녀는 대화하길 좋아했다.


 그녀와 내가 수영을 함께한 지도 벌써 9회 차가 되었다. 선생님은 먼저 말도 잘 걸고, 질문을 많이 해준다. 수영만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사람에 관심을 가져준달까. 평소에 난 쓰는 영어만 쓰고, 간단하게만 의사전달만 해왔다.


 거기다 내가 수영을 잘하고 싶은데 안 풀리는 마음에 묵묵히 열심히 연습만 하기 바빴다. 선생님 입장에선 내가 자꾸 같은 실수를 하는데 어떻게 하면 극복가능할지 질문이 하나도 없어서 답답함을 토로한 적도 있었다.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의 속내를 전혀 알 수 없다면서 말이다.


 근데 그런 상황에서 난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더라. 틀릴까 겁내지 말고 영어처럼 그냥 하면 되는데. 그게 안 된다. 평소대로 막연하게 몸에 익숙해질 때까지 계속 휘저으면 되지 않을까란 생각에 맨땅에 헤딩을 오래 했다. 좋은 선생님을 두고도 제대로 써먹지 못하고 있는 아이러니. 나도 이런 내가 답답하지만, 성격이 잘 안 고쳐진다.


 수영실력도 그렇고, 선생님과의 사이도 그렇고 다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조급하게 서둘러 배우려고 해도 쉽게 늘지 않는 것.  계속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내가 조금씩 수영을 잘하게 될 때마다 선생님이 엄청 노력해 줬다고 생각이 드는 이유다.


 수영레슨 10회를 추가로 받겠다고 선생님께 말했다. 이젠 다짐한다. 수업마다 선생님에게도 수영을 위한 질문 하나씩 건네겠다고. 선생님이 열심히 가르쳐주는 만큼, 성장하는 수영실력으로 보답하고 싶다.


 수영 20회 강습이 끝나면, 수영실력도, 선생님과의 사이도, 책의 이야기도 두터워지길 바란다. 시간으로 쌓아 올릴 수 있는 나만의 보물들. 오늘도 이렇게 한층 쌓아간다.

*선생님이 추천해준 까오만까이 맛집: 님만해민 댄 까우만 까이. 오후 2시까지 영업인데, 점심 12시부터 오는 손님을 돌려보내더라. 당일 판매할 닭고기가 다 팔렸단다. 그날그날의 양에 최선을 다하되, 절대 무리하지 않는다.


오늘도 그녀에게 새로운 밥집을 추천받았고, 햄버거 좋아하냐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이스크림에 감자튀김 얹어먹는 먹교수인 사실을 새롭게 알게되었다. 아주 든든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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