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 4일 차: 수도원에서 하룻밤

반가웠던 커뮤니티 디너

by 탱탱볼에세이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부터 비가 왔다. 비가 조금 왔다가 많이 왔다가를 반복하니 우비를 입었다 벗었다 하는 것도 힘들더라. 그냥 우비를 입지 않고 걷다가 길에서 쫄딱 맞았다.


아침은 무트리쿠에서 먹었다. 일어나자마자 걸어서 다음다음에 도착해서 먹는 아침은 더 뿌듯하다. 잔뜩 에너지를 소진하고 성취감이 가득한 상태에서 먹기 때문이다. 같이 간 일행 중 한 분이 기분이 좋으셨는지 아침을 사주셨다. 그래서 오늘 아침식사는 유난히 맛있었다.


중간에 또 버스를 한번 타고 마을을 건너뛰었다. 든든한 점심을 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남은 길에는 식당이 없다고 해서 긴 길을 걷기 전에 든든히 배를 채우고 싶었다. 슬프게도 모든 곳이 다 오후 2시부터나 식사메뉴를 먹을 수 있다고 하더라.


비가 와서 오후 2시까지 지체할 순 없었다. 결국 카페라테 한 잔에 바게트 사이에 하몽 끼운 간식으로 점심을 때웠다. 든든하면서도 합리적인 코스요리를 맛볼 수 있어서 스페인에 왔는데 아직 그 맛을 못 봐서 아쉽다.


점심 먹은 바에서 나오는 길에 현지인한테 성당을 물어봤다. 친절히 설명해 줬고 우린 잘 찾아갔다. 그랬는데 우릴 따라와서 더 큰 성당이 있다고 그 길목이 보이는 곳까지 데리고 가서 다시 찬찬히 알려주더라. 우리는 천천히 마을 구경하면서 알려준 길로 걸어가는데 그 길목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길을 잃지 않고 제대로 된 길을 갈 수 있도로 규말이다. 가볍게 물어봤는데 마지막까지 책임감을 다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우리의 최종목적지는 수도원. 수도원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 수도원 알베르게가 있는 줄 몰랐는데 같이 걷는 분들이 천주교신자이신 덕분에 이런 경험도 해본다. 수도사님이 우릴 맞아주셨다. 성당도 예쁘고 숙소도 따뜻해서 잠이 잘 올 거 같다.


비가 계속 와서 그런지 양발 곳곳에 물집이 들어찼더라. 씻자마자 물집을 터트리고 빨간약을 발랐다. 최근 알베르게 중에서 제일 따뜻한 물이 잘 나오는 곳으로 샤워를 들켰더. 물집은 길을 걸을 때마다 친구처럼 새로 생기기 때문에 더 이상 당황스럽지 않았다.


따뜻한 물 빵빵하게 씻고 미사를 드리러 갔다. 노래를 모르지만 할렐루야가 나올 때마다 열심히 따라 불렀다. 가장 연세 있으신 수도사님이 우릴 보고 페이지를 손가락을 펴서 자꾸 알려주시는 게 귀여웠다. 옆에 젊은 수도사님이 연세 있으신 수도사님을 챙겨주셨기 때문이다. 본인도 챙김 받는데, 말이 안 통하는 우리를 본인이 챙겨주시려는 노력이 감동적이랄까. 항상 웃으며 우리를 쳐다봐주셔서 귀여우시까지 했다.


산티아고 성당 말고는 미사를 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미사는 아니었다고 한다. 남은 길에는 에너지를 아껴서 미사를 드려봐야겠다. 하루종일 힘들게 걷고 미사까지 챙겨 보내는 순례자들이 대단하다.


미사가 끝나고 커뮤니티 디너라고 수도사님이 파스타와 바게트, 우유를 한 상 차려주셨다. 오늘은 총 7명이 숙소에 머무는데 다 같이 함께 차려주신 식사를 먹었다. 덕분에 자연스레 이야기도 나눴다.


나는 순례길에서만 먹을 수 있는 식사를 정말 좋아한다. 밥 한 끼를 같이하며 동료인 순례자들과 진정으로 친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인 것이다.


프랑스에서 온 할아버지는 순례가 벌써 10번째라고 하셨다. 손에 반지를 9개나 멋지게 끼고 계셔서 물어봤는데, 알고 보니 순례를 9번 하셨다고 한다. 프랑스길은 5번이나 걸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이젠 안 걷는다고 하셨다. 순례길 완주기념으로 나도 할아버지처럼 반지 같은 기념물을 생각해 봐야겠다.


지금은 밤 10시 반인데, 저녁식사를 오랜만에 배불리 했더니 너무 졸리다. 너무 맛있어서 파스타 2 접시를 싹 비웠다. 밥 다운 밥을 든든하게 먹게 해 준 수도사님께 감사하며 기부금으로 표현해야지. 순례길을 걷게 되면 수도원에서 꼭 하룻밤을 묵어보시라!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니 말이다. (단, 인터넷이 안 터지는 점은 감안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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