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기부제 다른 시스템
기부제 숙소에서 아침을 든든히 먹고 길을 나섰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기부제 숙소에 왔다. 작심하고 온 것은 아닌데, 프리미티보 길은 내가 머무는 마을마다 기부제 숙소가 있더라. 순례길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숙소의 운영형태라, 기부제 숙소를 보면 반갑다. 순례길 23일 차, 꽤 많은 기부제 숙소를 마주했지만 어제와 오늘 숙소는 새로운 방식이었다. 같은 기부제여도 사소한 시스템의 차이가 꽤나 크게 다가왔달까.
일단 어제 숙소는 내가 방문한 기부제 숙소 중 처음으로 기부통이 따로 비치되어 있지 않았다. 봉사자 할아버지가 일단 즐기라며 내일 아침까지 다 누리고 그때 기부하면 된다고 마음을 편하게 해 주셨다. 오늘 아침 식사자리 한 켠에 기부통이 올라왔다. 잼통을 재활용한 것 같은 작은 유리병이었다.
그 유리병엔 10유로가 들어있었다. 투명한 기부통이라니. 신선한 충격이었다. 마치 10유로 이상을 기부해야 할 것 같은 심리적 압박감이 느껴졌다. 원래도 그 이상을 기부하는 편인데도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마음의 삼각형이 찔리도록 잘 설계해 둔 구조라고 해야 하나. 투명한 유리병에 하나둘씩 돈이 쌓여가는 걸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오늘 숙소도 기부통이 따로 없었다. 내일 아침엔 봉사자가 없으니 지금 자기한테 돈을 주면 된다고 한다. 면대면 기부제라니. 두 번째 신선한 충격이었다. 뻘쭘했지만 봉사자 손에 돈을 건넸다. 마치 비밀선거인데 저 누구 뽑았어요라고 속삭이는 느낌이랄까. 항상 비치된 기부통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알아서 각자 잘 기부해 주겠지라는 사람들의 신의를 바탕으로 형성된 단단한 그 기부통이.
그동안 너무 당연하게 기부제 숙소는 기부통이 비치되어있어 와서 그랬던 걸까. 익명성에 숨어 이 정도만 내도 나 하나쯤은 괜찮겠지라는 마음의 치부를 들켜버려서 그랬던 걸까. 어제오늘 마주한 기부제 숙소는 내게 기부제 숙소에 대한 인상을 바꿔놓았다. 과연 내가 얼마를 냈는지 운영자가 아는 구조여도 여전히 나는 기부를 했다고 당당할 수 있을까. 어제오늘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다.
사실은 기부제 숙소라고 그간 누리는 것만 생각했던 지난날을 반성한다. 내가 누린 것에 비해 그에 상응하는 대가는 염가로 쳐서 대충 지불하고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과연 얼마 정도를 내야 내 마음이 편할까. 프라이싱을 내가 해야 하는 기부제 숙소에 묵는 순례자의 고민이다. 하지만 결국 하루뿐이기 때문에 다소 적은 돈을 내더라도 하루 마음이 조금 무겁고 말아 버리는 게 또 순례길숙소의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이 기부제 시스템이 언제까지 유효할지 의문이다.
어쩌면 솔직하게 숙소를 운영하는 최소유지비를 공개하고, 그것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정보를 공개하면 순례자 스스로 가격을 책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기업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고. 그래서 어떤 곳은 정부, 지자체, 성당의 지원 일체를 받지 않는 곳도 존재한다.
누구에게나 부담 없이 올 수 있게 열려있으면서도 계속 이 구조가 유지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보다 나이스한 방법을 찾으면 좋겠다. 기부통이 있건 없건 말이다. 굳이 현금으로 안 내고 QR결제나 카드결제 방식 도입하는 것도 방법일테다. 어제 오늘 묵는 오픈형 기부제 숙소도 다소 파격적이지만, 그를 위한 과정 중의 하나일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