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신발 파워
오고 싶던 숙소에 왔다. 부엔까미노 앱에서 평점이 높길래 기대가 됐다. 빌바오에서 30km가 넘는 길이지만 새 신발 파워를 믿어봤다. 확실히 크록스 신을 때마다 발바닥과 닿는 바닥이 까끌까끌 아팠는데 새 신발은 푹신해서 걸음이 좀 더 빨라졌다. 어제까지 기어 다녔다면 오늘은 걸어 다녔다.
항구를 따라 쭉 걸어오면 다리가 보인다. 포르투갈레트가 예쁘다고 해서 일부러 다리를 건너는 경로로 골랐다. 이색적이게 포르투갈레트 입구에 위치한 비즈카야 다리 밑으로 곤돌라가 지나간다. 진귀한 풍경에 홀려서 계획에 없던 곤돌라를 탔다. 50 센트면 편도로 탈 수 있다.
배처럼 차도 싣고 다녀서 신기했다. 알고 보니 유네스코에 등재된 산업혁명의 상징과 같은 건축물이더라. 19세기에 지어진 최초로 사람과 배를 운반한 다리라고 한다. 생각지 못했던 다리 밑 곤돌라! 사실 계속 도로 따라와서 슬쩍 지루해졌는데 순례길이 재밌어졌다.
갈림길이 있어서 대안길을 택했다. 대안길로 오니 순례자가 나밖에 없더라. 순례길 걷는 나를 보면 다들 반갑게 인사해 준다. 숙소를 10km 담겨둔 순간, 해안길로 걸을 건지 20분 빠른 구글 맵 길을 따를 건지 선택해야 했다. 아무래도 숙소에 빨리 도착해서 1층침대에 자리 잡고 싶었다. 구글 맵 길을 택했다.
구글은 완전 도로로만 알려줬다. 인도가 따로 없어서 위험천만한 경로였다. 10km 걷는 내내 차가 슝슝 달리는 길이 펼쳐졌다. 안전하지 않은 길이라 초긴장상태로 걸었다. 오히려 순례길보다 안전하지 않아서 시간이 더 걸렸다. 좋은 경치의 해안길도 포기하고 걸었는데 무서웠다. 다시는 구글맵 길로 가지 않으리.
자전거도 엄청 많이 탄다. 다들 튼튼한 전문자전거에 쫄쫄이 자전거 전용 복장을 갖췄다. 이번에 뚜르 드 프랑스 루트에 빌바오가 추가 됐더라. 길거리를 지나다니다 보면 중간중간 자전거 정비기가 있다. 이렇게 자전거 인프라가 갖춰진 나라였다고? 단순히 바람주입기만 있는 게 아니라, 자전거 고장났을 때 장비들이 다 있어서 안심하고 장거리 자전거 주행을 할 수 있겠더라. 스페인도 자전거에 꽤 진심인 나라구나 생각이 들었다.
걸어오다 보니 순례길 아닌 마을을 몇 개 지나쳤다. 그래도 행색이 순례자라 마을 사람들이 반겨줬다. 여기 순례길 아니라고 알려주면서, 제대로 순례길 가는 법을 열심히 설명해 줬다. 산티아고까지 간다고 하니 나의 길을 응원해 줬다. 스페인 사람들은 유독 순례자에게 친절한 것 같다. 인사를 간단하게 주고받는데도 활짝 웃으면서 화답해 주기 때문에 큰 에너지를 사람들에게서 받는다. 걸으면서 힘들어서 엄청 죽상이다가도 만나는 사람들에게 인사할 때만큼은 세상 해맑게 웃게 된다. 지나가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환히 웃으며 인사하는 스페인 사람들의 여유를 닮아보련다.
숙소가 2시부터 여는데, 늦어서 자리가 없을까 봐 걱정했다. 오후 3시 반이 넘어서 도착했더니 한 7등 정도 했다. 1층 자리가 비어있어서 행복했다. 내일 생일이라고 숙소 주인아저씨가 먼저 알아봐 줘서 감사했다.
여긴 저녁이랑 아침도 주고 기부제 숙소다. 모두 한 테이블에서 먹을 수 있게 폴딩테이블을 길게 펴주셨다. 그렇지 않았으면 독일어파 비독일어파 테이블로 나뉠 뻔했다.
다 같이 앉아서 주인아주머니가 식사 전 이름과 나라 소개를 돌아가며 하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셨다. 오늘 숙소 인원 14명 중 10명이 독일어를 사용할 정도로 독일인이 많았다. 유럽에서 독일인에게 북쪽길이 인기가 최고로 좋은가 보다. 프랑스길에선 프랑스인이 많았는데, 새롭다. 순례자들끼리 같이 식사하면서 튼 안면 덕분에 내일 길에서 또 만나면 두 배 반가울 예정이다. 이렇게 조금씩 서로를 알아간다.
저녁은 샐러드와 볶음밥을 먹었다. 와인은 물론이고 디저트로 푸딩까지 주신다. 생일상인 줄 알았다. 힘들게 걷고 온 보람이 있다. 피곤한 심신이 든든한 식사에 녹아버렸다. 순례자끼리 같이 저녁 먹는 커뮤니티 디너가 너무 좋다. 왜냐면 순례길에서만 먹을 수 있는 소중한 음식과 시간이기 때문이다.
어쩌다 보니 생일에도 순례길을 걷게 됐다. 가고 싶은 숙소가 생겼다. 30km 이상으로 좀 멀긴 한데, 내일도 도전해 보련다. 도전하는 만큼, 이뤘을 때 더 뿌듯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