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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Nov 12. 2019

쌍욕을 들으니 몸이 다 아프더라(2)

의외의 결말?


한 줄 한 줄 내가 공들여 쓴 내레이션을 지적했다. 단 한 줄도 그냥 넘어가지 못했다. 맞는 말도 있었고, 억지도 있었다. 맞는 말은 내가 부족해서 일 테고, 억지는 새로 온 메인작가에게 기선 제압을 하겠다는 의지로 느껴졌다. 나는 어깨가 움츠러들기 시작했고,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내 왼쪽에는 날 믿고 메인작가로 영입한 팀장님이 계셨고, 내 오른쪽에는 입사한 지 두 달 된 조연출이 있었다. 나는 벌거벗겨진 기분이었다.


그는 폭군이었다! 지적과 함께 ‘너는 욕을 먹어도 싸다’는 듯 온갖 쌍욕이 날아왔다. 물론 나에게 직접적으로 욕을 한 건 아닐 것이다. 그는 아마도 말끝에 욕을 하는 습관이 있는 듯했다. 지옥 속에서 한 시간 가까이 말로 얻어맞았고, 실제로 아팠다. 온몸이 욱신욱신거렸다. 제 할 말을 다한 부장은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선배가 혼나는 모습을 강제로 구경한 조연출도 눈치를 보더니 슬그머니 나갔다.          


온몸에서 열이 났고, 목구멍까지 눈물이 차올랐다. 회의실 안에 있는 그 누구도 먼저 입을 떼지 못했다. 1분 1초가 영원처럼 느껴지던 그 순간, 부장과 함께 왔던 부하 직원이 침묵을 깨고 민망한 목소리로 말했다.


“작가님,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나쁜 분은 아닌데 항상 말씀을 저렇게...”          


꾹 삼켰던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아니 당신이 왜 사과를 해요.’           


침묵은 더욱 깊어졌고, 모두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나는 그들의 뜻대로 혼자 남아 엉엉 울었다. 살면서 이런 치욕은 처음 겪었다. 더빙을 빵꾸 낸 성우도, 국어책 읽듯 더빙을 한 피디도 미웠고, 욕쟁이 부장도 미웠고, 대신 사과하는 직원도 미웠고, 옆에 앉아서 내 치욕을 구경했던 조연출도 미웠으며 글을 거지같이 쓴 나 자신이 가장 미웠다.           


빨개진 눈으로 회의실 밖을 나오자, 나의 심정을 가장 잘 아는 같은 팀 메인작가가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에휴, 너무 상처 받지 요. 나도 이 프로그램 처음 할 때 많이 울었어요. 나는 시사할 때 그냥 정신을 놓잖아. 월급날만 보고 살아요. 한 귀로 듣고 흘려야지 안 그러면 못 버텨요.”     


나는 그게 잘 안됐다. 구성이나 글을 지적당하면 그게 나인 양 무척 아팠다. 게다가 내가 왜 쌍욕까지 들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번 일은 나에게 무척 큰 사건이었다. 나는 나름 일을 잘한다고 스스로 믿어왔다. 나와 함께 일했던 선배 작가나 팀장님은 나를 다음번에 또 불렀고, 그것은 내가 괜찮은 작가임을 증명한다고 믿었다. 나는 남들보다 일손이 빨랐고, 결과물 평가도 좋았다. 10년 동안 아무리 힘들어도 스스로 일을 제법 잘하는 작가다’라는 굳건한 믿음으로 버텨왔는데 부장의 발차기 한방에 맥없이 허물어져버린 기분이었다.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추스르고 밤을 새워 원고를 수정했다. 팀장님은 다 고칠 필요는 없다며 꼭 고쳐야 하는 몇몇 부분을 알려주셨다. 나는 단어 하나하나 뜻이 어긋나지 않도록 사전을 찾아가며 고쳤고, 그날 밤도 꼬박 새웠다. 팀장님은 내 원고를 컨펌했고, 나는 쓰러지듯 잠들었다.          


며칠 후, 나는 방송시간에 맞춰 TV를 틀었다. 그런데 겨우 추슬렀던 마음이 다시 무너지고 말았다. 기가 찼다. 팀장님께 최종 컨펌까지 받은 나의 원고가 달라져 있었다. 피디가 또 손댄 것이다. 월권이었다. 꼭 고쳐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나한테 한 마디 상의라도 해야 했다. 나보다 연차도 한참 낮은 피디였다. 하지만 그는 그 프로그램을 오랫동안 했으므로 나보다 본인이 더 잘 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프로그램에서 늘 반복되는 멘트와 스타일로 고쳐진 내레이션에서 나의 개성은 사라졌다. 한 달 동안 나는 무얼 한 걸까. 이럴 거면 본인이 원고를 쓰는 편이 낫지 않을까. 부장이 날 깔아뭉개니 피디도 무시하는 건가? 피디에게 전화를 걸었다.          


잘못을 인정했다. 자신 역시 부장에게 심각한 압박을 느껴서 그의 취향에 맞게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하지만 이미 나의 무너진 자존심은 회복 불가였다. 심폐소생술을 하기엔 너무 늦었다. 한 번도 그랬던 적이 없던 짓을 실행하기로 했다. 팀장님께 나의 심정과 퇴사 의지를 담은 장문의 메일을 보내고 전화했다. 팀장님은 처음만 잘 버티면 된다고, 월권한 피디를 혼내주겠다고 날 붙잡았지만 난 두 번 다시 그 프로그램과 관계된 이들을 보고 싶지 않았다. 두 번째 방송을 털고 그곳을 탈출했다.           


나는 지금 막 연인과 결별한 사람처럼 슬픔을 끌어안고 방 안에서 콩벌레처럼 웅크려있었다. 더 이상 쥐어짤 눈물도 없었다. 그렇게 멍을 때리고 있는데, 책꽂이에 꽂혀있는 법정스님의 <무소유>가 눈에 띄었다. ‘내가 저책을 언제 샀더라.’ 누렇게 변한 책을 뽑아 펼쳤다. 평화롭고 고즈넉한 불국사의 풍경이 묘사돼있었다. 문득 경주에 가고 싶었다. 부드럽게 곡선으로 이어진 고분을 보면 마음이 좀 나아질 거 같았다.          


옷가지를 대충 싸서 고속터미널역으로 향했다. 버스 창밖으로 빗방울이 후드득하고 떨어졌다. 한여름 소나기다. 나는 졸았다가 창밖을 봤다가 하면서 어서 경주에 다다르길 바랐다. 문득 남자 친구가 생각났다. ‘쌍욕 사건’을 이미 들어 알고 있는 남자 친구가 내 걱정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피디와 다투고 그만둔 일까지는 아직 모른다. 그에게 말하기 부끄러웠다. 나는 카톡을 무음으로 바꿨다.          


경주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후끈한 바람이 피부를 감쌌다. 배가 고팠다. 하루를 굶었으니 그럴 만도. 마땅히 식당을 찾을 수 없어 김밥 한 줄을 산 뒤 버스에서 예약해둔 게스트하우스로 들어갔다. 이모님은 날 모르겠지만 그 게스트하우스를 찾은 건 두 번째다. 몇 년 전, 남자 친구와 헤어졌을 때 혼자 경주여행을 했었다. 정겨운 사투리 억양의 이모님이 날 반겼다.           


“평일인데 회사 안 가나?”     


“일 때려치우고 왔어요.”     


“잘했다마.”          


이모님은 더 이상 캐묻지 않고 따뜻한 차 한 잔을 내주셨다. 나는 김밥을 우걱우걱 씹으며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아무래도 남자 친구에게 나의 생사를 알려야 할 거 같다. 카톡을 보냈더니 바로 답이 왔다.         


-나 경주 왔어         

-어딘데? 주소 알려줘 내가 갈게          


남자 친구는 반차를 쓰고 경주까지 한달음에 달려왔다. 나의 진면목을 몰라보는 부장도 피디도 병신이라며 신나게 함께 욕을 했다. 말할 수 없이 고마웠다.      


그리고 1년 후, 우리는 부부가 됐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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