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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Nov 12. 2019

쌍욕을 들으니 몸이 다 아프더라(3)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


나는 멍이 잘 드는 스타일이다. 샤워를 하다가 몸 이곳저곳에서 멍을 발견하고, ‘이건 도대체 언제 생겼지?’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나는 방송 일을 하기에 마음도 너무 물렀다. 한 귀로 듣고 흘리는 일이 안 됐고 매번 쓰라렸다. 그럼에도 10년 넘게 방송 작가 일을 탈 없이 잘 해온 건 아마도 인복이 많아서 아니었을까. 늘 합리적이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였으니 말이다.     


'욕 부장' 사건 이후로 다른 프로그램에서 메인작가 자리에 몇 번 앉았지만 마음이 잘 다쳤다. 똑같은 패턴으로 방송언어에 내 글을 짜 맞추는 것도, 말도 안 되는 일을 되게 만드는 것도, 잠을 못 자서 피부가 뒤집어지는 일도 이쯤에서 끝내고 싶었다. 방송작가라는 직업만큼, 아니 그 이상 나 자신은 소중했기에. 나는 다치는 대신 스스로를 지키기로 결심했다.     


그렇다면 나의 지난 방송작가 생활은 그저 악몽이었을까. 그렇진 않다. 겁 많고 소심했던 나는 그동안 방송계라는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했다. 덕분에 꽤 용감해졌다. 쉽게 알기 힘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세계를 속속들이 들여다봤다. 카메라 속에 담긴 피디의 땀을, 출연자의 눈물을 깊이 공감했다.      


내가 쓴 글을, 내가 만든 방송을 TV를 통해 다수가 보고 들었다. 누군가는 꼭 필요한 정보를 얻고, 누군가는 위로받았을 것이다. 그동안 나는 무언가를 주는 사람이었다!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대체 불가한 방송의 매력이다.         


나는 여전히 쓰는 사람이다. 


TV 밖으로 나오고 보니 글 쓸 곳이 더 다양해졌다. 이렇게 나의 방송작가 이야기를 한 권의 책에 담아내듯 말이다. 방송작가를 하면서 나는 더욱 단단해졌다. 넓은 시야를 갖게 됐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이제는 망설임 없이 뛰어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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