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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Jun 14. 2024

책이 술술 읽히는 '독서 명당'

당신의 독서 명당은 어디인가요?


세상에서 시간이 가장 느리게 흐르는 공간을 꼽으라면 비행기 안이 아닐까. 비좁은 자리에서 장시간 스마트폰도 못 보고 꼼짝없이 앉아 있다 보면 좀이 쑤시다 못해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퉁퉁 부은 다리를 주물러 가며 이리저리 자세를 바꿔보지만 여전히 편치 않다. 별 수 없이 좌석 뒤에 달린 모니터로 옛날 영화를 관람하며 지루함을 달래 본다. 해외여행을 무작정 반기지 못하는 유일한 까닭은 비행 때문이었다.     


그런데 한 번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놀랍게도 착륙한다는 기내 방송이 나온 적이 있다. 시간을 확인하니 어느새 7시간이 흘러 있었다. 비행기 타기를 그렇게 싫어하는 내가 ‘벌써 다 왔단 말이야?’하고 아쉬워할 정도였다. 시간을 편집도구는 바로, 추리 소설이었다.     


소설은 좋아해도 추리 소설을 즐겨 읽는 타입은 아니었다. 물론 내용은 흥미진진하겠지만, 작가가 구현한 아름다운 묘사와 독창적인 표현, 메시지 면에서는 아무래도 아쉬운 부분이 많을 테니까.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만 챙겨 읽어도 시간이 부족하니 부러 추리 소설을 찾아 읽는 일은 거의 없었다.


비행기에 타기 직전, 밀리의 서재에서 <홍학의 자리>라는 책을 발견했다. 함께 글 모임을 했던 분이 최근 재미있게 읽었다며 추천했었는데, 마침 눈에 띄어 별생각 없이 내려받았던 것이다.     


소설류는 보통 50페이지 정도는 읽어야 등장인물들의 관계와 상황이 대략 파악이 된다. 소설이 어렵다거나 잘 못 읽겠다는 이들은 이 초반 진입을 힘들어하곤 한다. 그런데 추리 소설은 이러한 진입 장벽이 없다. 아니, 답답증을 느끼기 전에 계속해서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그다음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음 페이지를 읽게 만든다. 궁금해서 애가 타고 전전긍긍하게 하다가 반전이라는 망치로 뒤통수를 세게 내려쳐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든다. 그러고 나면 다시 처음부터 읽고 싶어 진다. 내가 놓친 힌트가 무엇일까 안달하며.     


이야기에 몰입하자, 좁고 컴컴하고 불편한 비행기라는 공간이 내 감각에서 사라졌다. 인터넷이 안 되니 스마트폰으로 딴짓도 못 한다. 몇 시간 동안 오로지 흥미로운 이야기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전에도 비행기 안에서 독서를 시도한 적이 있었지만 대부분 실패했다. 불편한 자세와 MRI 기계 속에라도 들어간 듯 웅웅거리는 소음에 신경이 쓰여 몇 자를 읽다가 포기하곤 했다. 그런데 잘 짜인 스토리와 플롯으로 승부하는 추리 소설은 그 방해 요소를 무시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니까, 스토리가 악조건을 이겼다.     


단 하나의 아쉬움은 전자책 리더기가 아니었다는 점. 여러 가지 물건을 들고 다니기를 귀찮아해 전자책은 스마트폰으로 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장시간 어두운 환경에서 책을 읽다 보니 눈이 피곤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거울을 보니 실제로 눈이 뻘겋게 충혈되어 있었다(그렇지만 당연히 읽기를 멈출 수 없었다).   

  

그 후로 비행기는 나의 ‘독서 명당’ 리스트에 들어왔다. 독서에 집중이 잘 되는 나만의 공간, 독서 명당을 많이 만들어두면 그만큼 책을 읽을 기회가 늘어난다. 대표적인 독서 명당으로는 ‘카페’가 있다. 여행 갈 때는 일부러 일정을 빡빡하게 잡지 않는다. 하루쯤은 현지의 괜찮은 카페를 찾아 책 읽는 여유를 갖고 싶기 때문이다. 밖이 시원하게 보이는 자리를 선호한다. 책을 읽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눈앞에 보이는 풍경은 독서의 소화제가 되어주니까. 핸드 드립 커피를 팔면 좋겠다. 산미가 풍부한 원두를 바로 갈아 바리스타가 정성스러운 손길로 내려준 커피는 대접받는 기분이 든다. 커피를 홀짝이며 한두 시간 정도는 폰을 가방 속에 넣어두고 독서를 온전히 즐긴다. 어디에 가도 카페가 있는 우리나라는 도처가 독서 명당이다.     


[내가 찾은 독서 명당]

*비행기
순식간에 몰입되는 추리 소설을 추천한다. 불편함과 지루함을 느낄 겨를이 없다.     

*카페
가벼운 재즈가 흐르고 통창 밖으로 평화로운 풍경이 보이는 곳. 소음이 심하고 카페 주인의 눈치가 보이는 1층보다는 2층이 편하다. 의자가 딱딱하거나 테이블이 낮은 자리는 피한다.  


비행기와 카페가 장시간 독서를 할 때 명당이 된다면, 틈새 시간에 유용한 명당도 있다. 운전을 두려워하기도 하지만 조금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이동할 때 버스나 지하철을 타는 이유다. 멀뚱멀뚱 앞사람을 바라보느니 책을 꺼내 읽는다. 물론 스마트폰의 강렬한 유혹을 뿌리쳐야 가능하다만. 이렇게 생각해 본다. ‘어차피 평소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으니, 이동할 때만큼은 책을 읽어보자’. 특히 일상이 너무 바빠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볼멘소리를 한다면 버스나 지하철, 기차와 같은 이동형 독서 명당을 꼭 활용해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하루 네다섯 장이라도 하루하루가 모이면 어느새 책 한 권 뚝딱이다. 만약 이동 시간이 짧거나 자주 갈아타야 하는 여건이라면 ‘단편 소설’이 적합하다. 짧은 시간 내 끊김 없이 완결을 볼 수 있다. 그만큼 성취감도 있다.     


어떤 이에게는 공원 벤치가, 또 어떤 이에게는 수영장의 선베드가 독서 명당이 될 것이다. 나에게 맞는 독서 명당을 찾으려면 전제조건이 있다. 항상 책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꼭 책이 필요할 때는 없다. 방법이 있다. 코로나 팬데믹 때 마스크 챙기기를 깜박하는 바람에 집에 쌓여있는 마스크를 두고도 새로 사는 일을 반복했다. 내가 들고 다니는 모든 가방에 마스크를 하나씩 넣어두었더니 가방을 바꾸어도 잊어버리는 일이 없었다. 내가 지닌 모든 가방 속에 책을 한 권씩 넣어두면 어떨까. 언제든 독서 명당 테스트를 해볼 수 있다. 책 입장에서도 어차피 책꽂이에서 내내 잠들어 있느니 주인의 가방 속에서 펼쳐지기를 기대하며 대기하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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