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넓고 읽고 싶은 책은 많다. 소용이 없다는 걸 알면서 종종 지름길의 유혹에 빠질 때가 있다.
부족한 교양을 메꾸고자 하루에 한 장씩 읽는 교양서를 산 적이 있다. 가장 자신 없는 분야인 역사며 늘 관심만 있던 미술, 음악, 철학까지 두루 다루는 책이었다. 당연히 ‘맛보기’ 식이다. 주요 개념이나 사건, 인물을 짤막하게 소개하며 흥미를 돋우고 더 궁금한 내용은 알아서 찾아 공부하게끔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책의 기획 의도일 것이다. 1년이면 365개의 지식 마중물을 공수하니 고여서 썩기 직전인 나의 교양에 물꼬를 터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결과는? 한 달도 채 읽지 못하고 덮어버렸다. 맥락이 없으니 전혀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지름길은 환상이었다는 사실만 재확인했다.
요약본을 원하는 이는 나뿐만이 아닌 모양이다. 인터넷 기사를 읽다가 신기한 기능을 발견했다. 기사 우측에 ‘요약봇’이라는 조그만 버튼을 클릭하자 긴 기사 내용을 3줄로 요약해 주는 것이 아닌가. 이해하기 어려운 정책이나 경제 지식을 인공지능이 알기 쉽게 요약해 주니 기특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하면 오싹하다. 기자는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며 취재해서 기사를 썼는데 컴퓨터는 다 필요 없다며 잘라내 버렸다. 예전에는 오히려 반대로, 컴퓨터가 조사하고 인간이 취사선택하지 않았나. 권력관계가 역전된 것처럼 보였다. 정보와 지식은 컴퓨터가 학습하고 인간은 그들이 추려준 것만 제한적으로 알게 된다. 얼마 전, 챗GPT 개발사인 오픈 AI와 구글 직원들이 ‘100년 안에 AI가 인류 멸망을 초래할 수 있다’고 한경고가 떠올랐다.
인간이 요약하든 AI가 요약하든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으니 ‘요약본’이 존재한다. 세상의 모든 정보를 서사와 맥락을 통해 알 필요는 없고 그럴 수도 없다. 하지만 기사 한 편, 내가 관심 있는 분야의 교양조차 얄팍한 줄거리로 소비하려는 시도는 그만큼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부족하다는 뜻 같아 씁쓸했다.
요약본을 찾는 또 다른 이유는 문해력 부족이다. 긴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스마트폰에 길든 나 역시 까맣고 빼곡한 긴 글을 보면 우선 크게 숨을 들이마신다. 앞으로 긴 글이 펼쳐질 테니 정신 단단히 차리라는 셀프 경고다. 그럼에도, 깊은 한숨을 여러 번 내쉬어야 하더라도, 되도록 책은 요약본이 아닌 원문으로 읽라고 권하고 싶다. 위에서 언급한 이유 외에도 더 있다.
요약본을 읽는 행위에는 ‘내용’만 중시하는 심리가 깔려있다. 글뿐만이 아니다. 영화나 드라마도 빨리 감기로 본다. 흔히 무용한 겉치레를 ‘형식적’이라고 표현하는 바람에 단어에 부정적인 인식이 있는데, 모든 매체는 형식이 중요하다. 형식은 내용을 담는 그릇이다. 그릇이 무의미하다면 맥주를 사발에 부어 마시면 그만이지 전용 잔이 왜 있겠는가. 와인잔도 깊이와 지름이 다르듯 주종에 따라 잔의 모양이 다르다. 책을 원문으로 읽었을 때 비로소 전용 잔에 따라 마시는 완벽에 가까운 맛(저자의 기획의도)을 음미할 수 있다.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의 저자 정희진 작가는 글쓰기 강의를 하다가 수강생에게 ‘토지를 만화로 읽는 것은 어떠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길고 어려워 보이는 대하소설의 지름길로 만화를 택하려는 그 마음도 알 것 같다. 그녀는 ‘만화나 드라마는 소설 읽기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보조 장르나 중간 다리가 아니다’라며 형식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기 때문에 세 가지는 모두 다르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요약본은 아예 읽지 말아야 할까? 그럴 순 없다. 원문을 집밥, 요약본을 배달 음식에 비유하면 어떨까. 집밥을 만드는 과정을 떠올려 보자(생각만 해도 귀찮은가? 나도 마찬가지다). 직접 눈으로 보고 신선한 재료를 고른다. 깨끗이 씻어서 알맞은 크기로 손질한다. 지지고 볶고 삶아 요리한다. 예쁘고 적당한 접시에 담아낸다. 하나하나 음미하며 맛보고 소화하는 일, 전 과정이 원문을 읽는 느린 독서다. 반면, 배달 음식은 빠르고 간편하다. 허나 재료들의 출처를 모른다. 개성 없는 일회용 용기에 담겨있다. 먹을 때는 신나지만 짧은 쾌락 뒤에 찝찝함이 남는다. 그래도 뭐, 오늘 한 끼 잘 때웠다. 빠르고 편리한 배달 음식은 분명 이점이 있지만 주식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무엇보다요약본은 실제로 지름길이 아니다. 전혀 ‘효율적’이지 않다. 읽을 때는 다 안 것 같지만 맥락과 형식이 상실된 내용은 사막의 신기루처럼 금방 사라진다. 머릿속에서 한 달, 아니 일주일이나 살아남으면 다행이다. 결국 시간만 낭비한 꼴이다.
맥락을 더듬는 일은 주체적인 인간의 사고 과정이기도 하다. 그것이 생략된 책에 매달리면 독자의 주체성을 잃는다. 요약을 읽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읽고 내 머리로 요약하는 것이 가장 남는 독서고 인간적인 독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