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커피 순례자들
“이 맛이 아니야.”
“역시 한국 커피는 에디오피아 커피를 따라갈 수가 없어.”
“이건 마치 루이비통 짝퉁과 같은 맛이랄까.”
사람들은 그 강렬한 산미를 그리워했다. 어딜가야 에디오피아 커피를 구할 수 있을까.
아프리카의 그 강렬함을 담은 커피를.
어느새 아프리카산 스페셜티 커피의 가격은 만 이천원으로 올랐다. 이 난리가 있기 전에 육, 칠천원이면 했던 가격이 두배로 뛴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상관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에디오피아 커피를 파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건 성지 순례였다.
에디오피아 커피를 파는 곳은 북새통을 이루었다.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천장부지로 커피값이 오르기 시작했다.
만이천원에서 만 칠천원으로 그리고 이만원으로.
상관없어.
에디오피아 커피를 위해서라면.
동호회도 생겨났다. 아프리카산 커피찾기 동호회였다. 가입자가 하루 천 명씩 늘어났다.
커피매니아인 영선씨도 그 중 하나였다.
처음에는 별다방 아메리카노 삼천원 올라간 것은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하지만 커피 질이 점점 떨어져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고유의 산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별다방의 아메리카노는 특유의 블렌드 커피를 쓰는데 그 블렌딩을 할 때 아프리카 산 커피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커피매니아인 영선씨는 별다방 커피만을 마시는 건 아니었다. 커피의 꽃은 드립커피지, 영선씨는 늘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영선씨는 드립커피를 무척 좋아해 늘, 원두를 구비해놓고 드립커피를 만들어 먹곤 했다.
드립커피를 만들기 위해서는 몇 가지 추출 기구가 필요하다. 첫번째는 핸드밀.
커피콩을 곱게 갈기 위한 기구이다.
오른손은 핸드밀 레버를 잡고 왼손으론 핸드밀 몸통을 잡아 움직이지 않도록 한다.
홈을 열고 그 안에 원두를 넣는다.
그 후에 레버를 돌린다.
홈통안에서 커피알이 으깨어져 간다.
우아~~~~
커피향이 피어오른다.
커피향이 분쇄되면서 피어오르는 이 커피향.
사실 영선씨는 이 커피향을 들이 마시는 걸 드립커피의 백미로 치는 사람이다.
다음 과정으로는 분쇄된 원두가루를 종이 필터에 담는다.
서버 위에 깔때기를 놓고 커피가 담긴 종이 필터를 얹는다.
이제는 커피포트 안에 미리 끓여 놓은 물을 필터 위에 부어야 할 때이다.
천천히, 느긋하게 커피가루 위에 주전자를 기울인다. 봉긋, 거품이 올라온다.
간질이듯이 곳곳에 물을 주면 물과 닿는 부분이 거품을 낸다.
이제는 전면적으로 물과 커피가 만날 때이다. 시원하게 고루 물을 주면 확, 확 거품이 올라오면서 커피가 꽃 모양으로 부푼다.
그리고 서서히 가라앉는다. 물이 적셔진 커피 봉우리가 갈라지며 틈이 생긴다.
서버에는 검은 액체가 차오른다
이 과정이 영선씨에게는 천국이었다!
바쁜 아침, 시간을 내어서 드립커피를 마실 때면 마치 삶을 잘 살아내는 증거처럼 느껴진다고 할까!
영선씨는 그 중에서도 에티오피아 G1커피를 가장 좋아했다.
그 강렬한 산미! 해를 가득 담은 그 산미!
하지만.
백그램에 팔천원 남짓하던 에티오피아 커피를 이제는 구할 수가 없게 되었다.
더 이상 시중에 유통이 되지 않게 된 것이다.
오 마이 갓!
드립커피를 마시기 위해 소영씨는 인터넷을 뒤지고 또 뒤졌다.
늘 에티오피아 원두를 사던 사이트에서 에티오피아 커피는 이미 솔드 아웃이 된지 오래였다.
도무지 몇 시간을 웹서핑에 보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깨달았다.
모든 사이트에서 솔드 아웃이라는 것을.
그 어떤 사이트도 에디오피아 G1을 파는 곳은 없다는 것을.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어.
소영씨는 인터넷을 뒤져 인터넷 커뮤니티에 가입했다.
‘아프리카산 커피를 찾는 사람들’ 인터넷 카페였다.
그 사람들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찾는 이유는 모두 같았다.
-그 강렬한 산미를 다시 느끼고 싶어요.
-어디 가면 아프리카산 커피를 구할 수 있나요?
사람들은 모두 인터넷 카페에서 아프리카산 커피를 찾고 또 찾았다. 그들의 부르짖음이 컴퓨터 모니터를 뚫고 튀어나올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건 영선씨도 사정이 같았다.
그리고.
마치 하늘에서 광명의 빛이 내려오듯!
귀중한 정보를 접하게 되었다.
'커피없인현생불가' 아이디를 쓰는 사람이 올린 글이었다.
-이번 주 산청 쪽 커피여행에 같이 가실 분 구합니다. 거기서 아직 에티오피아 산 커피를 맛볼 수 있다고 하네요. 선착순 다섯분 받습니다.
오마이갓!
커피를 맛볼 수가 있다고?
그것도 에티오피아 산 커피를!
가야지! 그럼 가야지!
머리보다도 빨리 영선씨 손가락이 움직였다.
'저요! 갑니다!'
하늘이 영선씨를 도운 것일까. 영선씨는 세번째로 답을 단 것이었다.
영선 씨 뒤로 순식간에 열 명의 댓글이 달렸다. ‘어디인가요?’ ‘저요, 신청합니다!’
'다섯분까지만 받겠습니다. 비공개 채팅방으로 모실게요.'
처음 글을 올린 '커피없인현생불가' 님이 답문을 달았다.
그렇게 영선씨는 운좋게 다섯 명 안에 들 수 있었다.
앗싸 가오리!
산청으로 가기 전날,
영선씨는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였다. 가슴이 두근거렸기 때문이다. 이건 마치 수학여행을 앞둔 여중생의 마음이랄까.
콩닥콩닥.
옆에서는 기범씨가 신나게 코를 골고 있었다.
그래서 더 잠을 이루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장소는 서초동 고속버스터미널.
다섯명은 산청에 가는 버스에 올랐다.
“여기는 저만 아는 특급 장소입니다. 제 친구 녀석이 하는 곳이거든요. 서울이 싫다고 워낙 외지에서 카페를 하는 터라 아직 남아있다고 하네요.”
모임의 주동자인 인철씨가 호기롭게 말했다.
버스 안에서도 저마다 모두 부푼 기대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드디어 에티오피아 스페셜티 커피를 접할 수 있다니!
꿈만 같은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스페셜티 커피를 접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무려 한달만이었다.
한달 만에 별다방이고 어디고 아프리카산 커피는 자취를 감추었던 것이다. 그만큼 한국인의 커피 사랑이 대단하다는 뜻이겠지.
산청에 내려 또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그들은 커피숍에 도착했다. 산좋고 물 좋은 동네였다. 과연 여행객들 아니고서야 방문할 일이 없어 보일 정도의 외진 곳이었다.
‘지구별 여행자’
카페 간판이 보이자 그제서야 소영씨 마음이 놓였다.
휴, 왔구나!
카페에 들어서자 커피 볶는 향이 온 공간을 향기롭게 감싸고 있었다. 와, 여기가 천국이구나.
“오셨어요?”
주인장은 반갑게 그들을 맞이했다. 그리고 정성껏 그들 앞에서 커피를 내려주었다. 곧, 그들 앞에 커피가 놓여졌다.
그들은 곧 한 모금을 마셨다.
오, 예!
으~
저마다 신음 소리를 냈다. 너무 좋아서였다. 어떤 이는 몸을 떨기까지 했다. 저마다 소중히 컵을 감싸 쥐고 천국을 맛보았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천국을 맛본 후,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때였다.
“자, 십만원입니다. 계좌이체도 가능하십니다.”
“십만원? 카페에는 오만원이라고 나와있었는데.”
“그새 또 가격이 올라서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십만원을 냈다. 그래도 맛본 게 어디야. 이제 살 거 같다.
커피투어.
주말 커피투어로 고속도로는 북새통을 이루었다. 스페셜티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이라면 사람들은 어디든지 갔다.
그런가 하면
“뭐 아프리카 산 커피가 대수인가”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프리카 산 커피 뿐 아니라, 브라질, 콜롬비아, 과테말라 커피도 있으니까.
브라질 커피는 아주 약한 신맛과 단맛, 견과류의 고소한 맛과 향을 지니고 있어서 에스프레소 블렌딩 커피로 많이 사용되고 있지만 그래도 그 나름의 풍미가 있으니까.
아프리카산 커피 동호회에 이어 브라질 커피 동호회도 인기몰이였다. 커피 가격이 전체적으로 올라 브라질 커피 역시도 비싸졌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브라질 커피의 수요가 빠르게 치솟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브라질에서는 커피가 영원히 생산될 거라고 믿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이 세상의 모든 커피 애호가들을 위해.
브라질이 전 세계 커피 원두 생산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
“속보입니다. 최근의 이상기온으로 인해 브라질이 극심한 가뭄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브라질에 산불이 전역에 걸쳐 발생하고 있습니다.”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브라질 커피농장에 산불이라니. 아프리카 서리에 이어서 브라질 커피농장의 산불은 커피가격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다. 이제, 점점 전세계의 커피가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커피 가격은 둘째치고 커피를 구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 점차 벌어지고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