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한국산 커피 등장하다
사실 한국만큼 커피 재배가 용이한 지역이 없지요.
TV 홈쇼핑에 등판한 김재팔 박사.
식물학자인 그는 이십년 전부터 한국에서 커피 나무를 수확하기로 다짐하고 외길 인생을 걷기 시작했다.
“커피는 건기와 우기가 뚜렷하고 건조한 지역에서 자랍니다. 한국의 기후에 적합하도록 제가 특수 제작한 하우스에서 자라는 커피를 보십시오.”
화면에는 거대 하우스와 커피나무들이 보였다. 그리고 체리를 수확하는 사람들.
“자, 오직 한국 커피로 만든 커피. 아직 스페셜티 인증은 받지 못했지만 맛은 제가 보증합니다.”
그가 말을 마치자 여자 쇼호스트가 난리 부루스를 추며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와! 이게 한국 커피라고요? 아프리카 산 커피 못지 않은데요.”
그 옆의 남자 쇼호스트.
“와, 환상적인 이 맛! 전 오히려 아프리카 산 커피보다 더 맛있어요. 김치 있잖아요. 한국의 고유한 맛 김치. 아무리 외국에서 만들어도 한국 어머니들이 담그신 김치는 못 따라가죠. 바로 그 맛입니다! 여러분 한 번 드셔보세요. 오직 한국산 커피로 만든 콜드브루도 있습니다.”
띠링띠링.
“어머 방송 오분만에 빨간불이 켜졌어요. 완판 예정입니다.”
“이런 적은 제가 방송하고 처음인데요.”
“네? 뭐라고요 피디님? 이제 수량이 백개 남았다구요? 여러분 들으셨죠? 백 분. 딱 백 분 모십니다. 지금 한국산 원두며 콜드브루며 다 동이 났고요 천그램 원두 백 봉지만 남은 상황입니다.”
환희에 차서 기뻐하는 쇼호스트들과 김재팔 박사.
허허허. 기쁨에 찬 김재팔 박사.
“자. 카운트 다운 들어갑니다. 십…구…. 팔…… 삼…이…. 일!”
“네. 판매 종료 되었습니다.”
“성원에 감사드리며 저희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김재팔 박사님, 한 말씀 하시죠.”
흠흠. 김재팔 박사가 헛기침을 했다.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이런 현상이 오리라는 것을. 이십년 간 꾸준히 연구를 해 왔고 드디어 한국산 스페셜티 커피로 여러분께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그간 저의 노력을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옆에서 호스트들이 더 난리였다.
“완판입니다! 완판 완판! 그럼 이제까지 김재팔 박사님이 개발하신 한국커피였습니다. 저희는 또 다른 제품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실망입니다.
-속았어요.
-환불 부탁드립니다.
-뭐요? 감히 아프리카산 커피 못지 않다는 말을 써요? 이런 과대 광고라니.
-홈쇼핑에 또 한 번 당했군요.
김재팔 박사가 홈쇼핑에서 대박을 친 ‘한국산 스페셜티 커피’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이었다. 댓글은 온통 부정적이었다. 평점은 2.5점.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그 시각 김재팔 박사의 연구소.
"아니, 이게 뭐가 부족한 걸까? 몇 천번이나 테이스팅을 해보았는데 우리 커피는 절대 아프리카산에 뒤지지 않다고!"
김재팔 박사는 부르짖었다.
하지만 그도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의 커피가 부족하다는 것을.
그 작렬하는 태양 밑에서 탐스럽게 익어가는 예가체프 커피 체리를 자신의 커피 하우스에서는 도저히 따라잡기 힘들다는 것을. 하지만 그는 부정하고 싶은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정부돈을 몇억이나 해먹었다. 정부 지원을 받아 '한국산 커피'를 만들기 위해 매진해 온 지난 십년.
오마이갓!
이 노력이 헛되게 할 수는 없어. 그런 일이 발생해서는 안 돼!
김재팔 박사는 부르짖었다.
사실 그는 멀쩡한 대학의 식품 영양학과 교수이다. 그래서 아는 지식이 풍부하다. 그런데 그런데, 홈쇼핑에 나가서 사짜 취급을 받다니. 그의 명예, 아니 그의 집안의 명예에 먹칠을 하는 셈이었다.
그가 커피에 발을 담근 것은 미국 유학 때의 일이었다.
그가 머물렀던 학교의 구내식당에서는 커피 메이커가 있어서 늘 그득히 커피가 담겨 있었고 학생들은 누구라도 그 커피 메이커에 담긴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처음 그가 커피를 마셨을 때의 그 충격이란!
이게 뭐지?
김재팔 박사는 중얼거렸다.
이 신맛은 뭐지?
그도 그럴 것이 그는 국내에서 한번도 커피를 마셔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오, 자꾸 생각나네. 이 신맛이.
그는 중얼거리며 하루종일 내일 또 가서 커피를 마셔볼 것을 다짐했다.
드디어 그 다음날이 도래했다.
그는 자신의 텀블러를 가지고 가 커피메이커 서버에 담겨 있는에 커피를 가득 따랐다.
"헬로우, 왓츠업?"
미국 학생이 아는 척을 해왔다.
"아임 긋. 앤듀?"
그러자 그 미국 친구는 말했다.
"유 라잌 커피?"
"야. 메이비."
"메이비? 오마이 가쉬! 잇츠 킬링 미! 아이 캔낫 리브 위드아웃 커피!"
그는 이 한 마디를 남기고 자리를 떴다.
왠지 커피를 매개로 외국인과 한마디라도 더 한 것 같은 그런 좋은 기분이었다.
커피는 그와 외국인을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했다.
왜냐하면,
그때부터, 그는 커피 홀릭이 되었기 때문이다.
학교 앞에는 작은 커피숍이 있었다. 한국 사람이라고는 거의 없는 미국 대학교에 유학온 그로서는 외로움을 참기 힘들었다. 그 타지 생활에서 그의 친구가 되어준 것이 바로 커피였다.
그는 때때로 그 커피숍에 가서 한국 소설을 읽었다.
앞에 커피 한 잔을 놓고.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마치 천국과도 같았다.
그 시간이.
그러면서 그는 미국 생활에 점차 적응해 갔고
박사학위까지 무사하게 딸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한 대학의 식품영양학과 교수가 되었다.
그때부터 커피는 그의 연구 제목이 되었다.
요, 요물같은 커피!
맛과 향의 집합체!
학교 일을 제외하고는 그는 커피 재배에 매달렸다.
한국산 커피를 만들기 위해서.
왜 그랬을까.
그는 왜 그렇게 한국산 커피에 매진했을까.
후에 그는 서술하지만 그 이유를 자신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저 한국산 커피에 꽂혔다는 것이다.
한국산 커피.
한국에서도 그 향긋하고 쌉쌀한 커피 맛을 가진 커피 체리를 재배하기 위한 그의 노력은 시작되었다.
그의 해외여행지는 늘 아프리카 에디오피아 예가체프.
신혼여행을 에디오피아로 다녀왔다면 말 다했지 뭐.
하지만 다행히 그의 아내는 순종적인 여자였다.
그의 주장에 토달지 않는 그런 여자였다.
대신에 그들은 에디오피아 커피 농장을 둘러보고 케냐에 들러 국립공원에 가서 일박을 했다.
그리고 거기서 그의 큰 아들이 생겨났다.
그랬다.
그의 집념은 그만큼 대단했다.
한국산 커피를 향한 그의 집념.
그 자신도 모를 그런 그의 집념.
죽기 직전에 한국산 커피를 마시고 싶다.
강렬한 햇살을 담은 그 한국산 커피를 마시고 싶다.
이것이 그의 소망이자 삶의 희망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 꿈을 이루고자 정부에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매년.
때로는 학교의 남는 연구 자금을 몰래 자신의 연구 개발비로 쓰기도 했다.
그가 죄책감을 느꼈을까.
노우.
그는 전혀 느끼지 않았다.
그때마다 그는 생각했다.
그의 눈앞에 펼쳐지던 예가체프 커피농장의 그 광활함을.
그 습도, 그 온도. 그 분위기
그리고 그의 하우스를 최대한 그 습도와 온도에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처음 그의 커피 하우스에서 커피 체리를 얻었을 때,
그때가 그의 둘째아들이 만들어진 날이다.
"여보! 나 해냈어!"
그리고 아내를 부여잡고 일어나보니 이미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그 정도로 격렬한 밤을 보낸 것이었다.
그 이유로 그의 둘째 아들의 이름은 '중천'이가 되었다.
체리나무가 무럭무럭 자라
첫 수확을 하던 날을 그는 잊지 못한다.
그 체리를 따서 과육을 분리하고 녹색의 체리콩을 얻던 날.
그는 마치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오마이갓!
신이시여,
제가 이일을 정녕 해냈단 말입니까!
무신론자인 그가 신에게 감사 기도를 할 정도였다.
그 정도로 그는 가슴이 벅찼다.
하지만 이번에 아들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상관없어.
이 커피체리가 내 아들이야.
내 셋째 아들이라고.
체리.
체리.
내 귀여운 새끼.
그 귀여운 커피체리에서 얻은 커피콩을 로스팅하는 순간.
그 고소한 커피 볶는 향은 그의 머리를 혼란스럽게 했다.
너무 좋아서.
그는 거의 기절 상태였다고 보면 된다.
너무 좋아서.
그는 향에 취했다.
꼭 마약에 취한 것처럼 말이다.
"괜찮으세요?"
오죽하면 그의 부하 연구원들이 그를 흔들어 깨울 정도였다.
"이게 꿈이야, 생시야, 나 죽은 거 아니지?"
이게 김재팔 박사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였다.
자기가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로스팅은?"
그러자 그의 앞에 커피 한 잔이 놓였다.
커피 한 잔.
남에게는 뭐 사오천원이면 사먹을 수 있는 그런 커피 한 잔이었지만
그에게는 지난 십년의 노력이 들어간 그 커피 한 잔.
그 커피 한잔을 앞에 놓고 그는 차마 커피를 마실 수가 없었다.
목이 메여서.
꺼이꺼이.
그는 커피잔을 앞두고 울었다.
이게 꿈이야 생시야.
내가 한국산 커피를 만들어 내다니.
정신을 차리고 한 모금 맛보는데.
그의 머리 속에서 주마등처럼 지난 기억들이 스쳐지나갔다.
동양인이라고 은근히 차별받던 미국 유학시절.
에디오피아를 누비며 커피 비법을 알아내던 그 시절.
아내와 함께 했던 기쁨의 밤.
하지만,
하지만,
불행하게도.
에디오피아에서 맛 본 그 맛이 아니었다.
이런 제길.
어딘가 텁텁해.
깔끔하지가 않아.
그 산미가 살아나지 않았잖아.
"아!!!!!!!!!!"
그는 절규했다.
그러자 직원들이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그가 노한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이 맛이 아니야.
이 맛이 아니야.
내가 추구하는 것은 이 맛이 아니야.
강렬한 에디오피아의 그 태양을 담은 그 맛을 얻어야 해.
어디서, 무엇부터 잘못된 걸까.
그에게는 정부 지원을 받아서 얻은 연구비 외에도 이 커피를 위해 사비가 굉장히 많이 들어가 있었다.
아내는 모르고 있겠지만.
그는 이미 집과 땅을 담보삼아서 이 연구에 몸담았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마수의 손길이 뻗혀왔다.
홈쇼핑.
에디오피아에 서리가 내리다니.
뉴스를 보며 그는 몸을 떨었다.
가능성과 두려움 때문이었다.
한국산 커피를 통해 돈을 벌 수 있다는 가능성과,
아직 커피가 완성형이 아니라는 두려움.
하지만
불행히도
가능성이 두려움을 이기고 말았다.
에디오피아에 서리가 내렸다는 뉴스가 보도된 다음 날부터 그의 연구실로 전화가 빗발쳤다.
도무지 사람들은 어디서 그가 비밀리에 한국산 커피를 만들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는지 그 자신도 모를 일이었다.
도무지 연구에 집중할 수 없을 정도로 전화가 빗발쳤다.
그를 홈쇼핑에 모신다는 악마의 전화가.
그는 단호히 거절해야만 했다.
아직 그의 커피는 맛이 부족했기 때문에.
하지만 그러기에 그 쪽에서 제시한 금액이 너무나 탐이 났다.
빚이 있는 그에게 그들의 제안은 무시할 수 없는 그 무엇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커피를 준비하도록 하지요."
생방송 큐 사인이 떨어졌다.
그러자 그 자신도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한 그런 기분이었다.
꼭 자신이 커피 왕자가 된 것 같은 그런 기분, 착각.
그리고 자신을 한없이 띄워주는 호스트들.
그래서 그런 사단이 일어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