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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전쟁

10. 분열의 조짐

회사원 기범씨는 지구상에서, 그리고 이 한국에서 일어나는 이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는 커피를 마셔도 아무런 느낌이 없기 때문이다.





남들은 커피를 마시면 가슴이 뛴다, 어떤다 하고 각성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이는 기범씨에게는전혀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이다.





처음 영선씨와 손을 잡을 때, 그때는 심하게 가슴이 뛰었던 게 사실이다.





이렇게 가슴이 뛰다가 심장이 터져서 죽어버리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그들의 연애는 짜릿하고 달콤했다.





하지만 커피는 아니다.





사람들이 왜 커피를 마시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기범씨.





이 쓴 맛이 뭐라고.





그런데 아내가 이 커피 중독자라니!





기범씨는 알지 못한다. 아내 영선씨가 산청에까지 가서 커피 한잔에 십만원이나 주고 사먹었다는 것을.


만약 그 사실을 안다면 그의 가슴은 심하게 뛸 것이다.


마치 처음 영선씨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하지만 이번에는 이해 못할 화딱지가 나서.





기범씨는 커피를 아무리 마셔도 가슴 뛰는 게 없고 그저 쓴 물을 마신 느낌이다.


남들은 회사에 오면 탕비실에 들어가 커피를 찾지만 그는 바로 업무를 시작한다.





‘으이구, 저 인간들. 일은 안 하고 회사 오자마자 농땡이 질이지.’





사람들이 삼삼오오 탕비실에 모여서 수다를 떨때면 그는 저런 생각을 한다.


고지식한 그는 사회성은 별로 없을지라도 업무 능력은 좋은 편이다.


그래서 술한잔 마시지 않고도 그는 곧잘 좋은 평가를 받는다.





그런 그에게 작금의 현상은 정말로 있어서는 안 될, 있을 수도 없는 신기하고 낯선 것들인 것이다.





자살이라니?





커피를 못 마셔서 자살이라니?





말도 안 돼!





소설가 임모씨의 자살로 세상이 떠들썩했을 때, 그는 생각했다.





'저런 약해빠진 사람. 커피를 못 마셔서 자살이라니, 저건 핑계에 불과해.


우울증 때문이야. 사실은. 우울증 때문이야.'





어느 밤, 그는 시사 토론을 보는 중이었다.


"커피에는 사람 기분을 좋게 해주는 성분이 들어 있지요."





뭐야.





"커피가 마약이야?"





볼멘 소리로 기범씨는 말했다.


옆에서 집중하며 티비를 보던 영선씨의 찌릿한 눈빛을 느끼고 기범씨는 입을 다물었다.





"커피 좀 끊어."


다시 한번 이어지는 기범씨의 잔소리.





"이번기회에 커피 좀 끊으라고.


커피는 마약같아서 자기가 못 끊는 거니까 독하게 맘 먹고 끊어. 알겠지?"





생각해주는 척 돌려까기.


슬슬 영선씨의 미간에도 주름이 잡히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요새 커피 질이 형편없어서 짜증 가득인데,





이놈의 남편이라는 작자가 위로는 못해줄 망정 옆에서 잔소리 질이나 하고 말야.





"조용히 해라."





영선씨는 낮게 읊조렸다.





다시 이어지는 티비 토론.





"많은 이들이 커피를 마시지 못해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방청객 분들에게 마이크를 넘겨보겠습니다."





마이크를 이어받은 한 시민.





"저희 커피매니아들을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가지 마십시오.


우리는 커피 중독자들이 아닙니다.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반려동물을 잃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슬프시겠습니까.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커피는 제 생활의 활력소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 커피를 구하는 게 점차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슬픈 겁니다.


사랑하는 존재를 잃어서 슬픈 것입니다.





저희의 마음을 알아주십시오. 부디."





짝짝짝.


관객쪽에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옳소! 옳소!


옆에서 영선씨가 갑자기 두 손을 번쩍 들어올리며 말했다.





"아이, 저 사람 시원하게 말 잘한다!"





기범씨는 화딱지가 나서 자기 방문을 팍 열고 들어갔다.


도무지 커피가 뭐라고 심야토론까지 벌어지는지 지금의 사태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커피 순례길은 말해 뭐해.





효자인 기범씨는 주말마다 시골에 계신 어머니를 뵈러 내려가는데 요즘 들어 더욱 교통 체증이 늘어가는 느낌이다.





꽉막힌 고속도로에서 그는 교통 방송을 틀었다.





"경부 고속도로, 서해안 고속도로를 비롯한 고속도로들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물론 아나운서는 그 이유가 커피 순례자들의 행렬 때문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왜 이렇게 차들이 갑자기 많아진 건지.





결혼하고 그는 일요일마다 부모님 댁에 가는 걸 빼뜨린 적이 없다.


오죽하면 그것을 전제로 영선씨와 결혼하기까지 했을까.


그러하기에 그는 고속도로를 일주일에 한번씩 지난 십년간 쭉 타왔다.





십년간 일주일에 한번씩, 일요일에 한번씩 고속도로를 타다보니 그는 이제 어느 정도의 요령이 생겼다.


언제가 막히지 않는지, 어느 길이 덜막히는지 세세하게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요새는 마치 명절 첫째날처럼 길이 막히곤 한다.


이건 지난 구년 간 느껴보지 못한 그런 현상이다.





에어콘 수리기사로 일하고 있는 그는


지금 어머니 댁에 에어컨을 달아드리려고 가는 길이다.


한여름을 시원하게 나시라고 고심끝에 큰 맘먹고 어머니께 선물을 하러 가는 길.





어머니가 얼마나 좋아하실까를 생각하면 그는 벌써부터 기분이 좋다.


홀어머니인 그의 어머니는 그를 극진히 아끼면서 키워주셨고, 그는 훌륭히 자라 효자가 되었다.


그리고 어머니께 드는 돈이라면 전혀 아깝지가 않다.


그는 레알 효자인 것이다.





그런데.


얼른 어머니 댁에 가야 하는데, 이렇게 꽉 막힌 고속도로라니.





이상하다, 이상해.





"요새 왜 이리 차가 막히지?"





옆자리의 아내 영선씨에게 투덜거리는 기범씨.





"낸들 아나."





하지만 영선씨는 대충 감을 잡고 있다.


사람들의 커피 순례길이 그 이유 중 하나라는 것을.





뉴스를 즐겨보는 기범씨가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세상이 저런 일이!' 이란 프로그램에서 커피 순례길에 대해서 이미 다루었고,


그외의 매체들이 사람들이 커피를 찾아 역으로 서울에서 시골로 여행하는 중이라는 걸 말하고 있다.





기범씨는 알면서도 한번 영선씨를 떠 본 것이다.





하지만 걸려들지 않는 영선씨.


"뭐 요새 놀러가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지."





창밖을 보며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는 영선씨.





하지만 그때였다.





기범씨 앞에 깜박이도 켜지 않고 쑥 들어온 대형버스.





기범씨 입에서 절로 욕이 나왔다.





'커피를 찾으시나요?


하나커피투어.'





라고 뒷배너가 붙어 있는 대형버스였다.





그 배너를 보자마자 기범씨의 속이 화로 끓어올랐다.





"아오, 저것들. 그냥 다 감방에 단체로 집어넣어야지.


기름낭비하면서 이게 뭔짓거리야."





듣고 있던 영선씨가 부아가 나기 시작했다.





아니, 다른 사람들이 커피를 구하러 다니건 말건 자기가 화낼게 뭐람.


그리고 자기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어머니 에어컨 해주었으면서.





영선씨는 영선씨대로 갑자기 화가 치밀기 시작했다.





기범씨가 자신과 아무런 상의 없이 어머님댁에 에어컨을 놔드리러 간다는 사실이 갑자기 크게 다가온 것이다.





이런 제길.





우리 친정에는 뭐 하나 해준 것도 없으면서.





나는 매주 일요일마다 시댁에나 가고.





"뭐야?


감방에 쳐넣어?


누굴?"





영선씨가 날카롭게 물었다. 날카로운 어조였다.





"저놈의 커피 찾으러 다니는 사람들!


고속도로 꽉 막히게 하는 인간들!


커피 중독자들!


저놈들 감방에 한달만 있어봐라.


커피 중독인거 다 고쳐진다.


내가 장담해. 장담한다고!"





"아우 열받아.


그럼 나도 감방에 들어가야겠네?"





영선씨가 날 선 어조로 물었다.





기범씨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여기서 더 대거리를 했다가는 진짜 사단이 날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범씨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자


영선씨는 더 속이 부글부글 거렸다.





"말해봐! 나도 들어가야겠냐고!"





"아! 거참 운전하는 데 조용히 해!"





기범씨가 마침내 한마디를 했다.





그리고 차 안 분위기는 폭망이 되었다.





거기에다가 커피 업계 종사자들에게만 주어지는 지원금이라니?





내 세금이 왜 거기에다 쓰이는 거야?





말도 안 돼!





그는 입밖에 내어서 말은 하지 않고 있지만 이 모든 상황이 그저 낯설고 싫다.





그 놈의 커피가 뭐라고 이 사단이람!





하지만 그에게도 중독되어 있는 게 있다.





바로 콜라.





집에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 뉴스를 보며 마시는 콜라 한 잔의 기쁨은 그에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콜라 중독자! 이기범씨.





그의 아내인 영선씨는 그와 반대로 콜라는 전혀 마시지 않는다.





콜라는 건강의 적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그가 콜라 뚜껑을 딸 때마다 얼굴을 찌푸리는 사람.





어쨌거나 콜라 수급은 안정적이다.





코카콜라는 망할 일이 없지.





티비를 보며 콜라를 마실 때마다 그는 행복하다.





‘정부는 이번 분기 들어 커피 업계에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런 망할!시원하게 콜라를 들이키던 그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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