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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주인공인 사람들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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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융원 Jul 29. 2023

상남자 초딩: D

D는 고등학교 동창이고, 대학교 때는 룸메이트였던 친구다.

고등학교 동기들끼리 D를 이야기를 하면, 항상 언급되는 게 키가 20 CM 가까이 컸다는 이야기다.

정확한 키는 기억이 안 나는데, 고등학교 1학년 때 입학했을 때는 원래 170이 안되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졸업할 때는 184 가까이 되었던 걸로 기억을 한다.

D의 고등학교 때부터 (사실 지금까지도)의 별명은 초딩인데, 키가 작을 때는 키에 맞게 아기 같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는데, 키가 커졌음에도 아직도 아기 같이 이야기를 한다.

D는 고등학교 조기졸업을 하고, 먼저 대학을 갔고 나는 3학년까지 채운 다음에 같은 대학에 가게 되었다. 그 당시 나는 신청한 기숙사에서 떨어져 자취나 하숙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때 D가 학교 앞에서 자취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같이 살기로 결정을 했다.

그 당시 우리가 살던 집은 꽤 큰 원룸이었는데, 우리는 고등학교 기숙사 생활을 같이 했었기 때문에 같이 사는 게 크게 문제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재밌게 고등학교 시절처럼 잘 지냈는데,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개인공간이 필요하듯 우리는 같이 살기로 한 결정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 보통 부부가 사이가 틀어지면, 밥 먹는 것만 봐도 꼴배기 싫다고 하는 것처럼, 우리도 약간 그 단계까지 이르렀다. 아닌가 나만 그랬나?

그 당시 우리는 약간 무기력하게 살았는데, 둘 다 돈도 별로 없고 하다 보니 나중에는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집에서 노트북 두대로 스타크래프트를 하면서 놀고는 했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나는 1년 정도 그 집에 살다가 군대를 갔고, D는 다른 집으로 이사 가서 친누나와 같이 자취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동창회 때마다, 만나서 둘 다 인정했던 부분은, 같이 살지는 말자였다.

뭐 딱히 안 맞고 그런 건 아닌데, 개인공간이 없는 상태에서 둘 다 돈도 없이 지내니 이래저래 신경이 곤두서있지 않았었나 싶다.

지금 D는 신경외과 전문의를 따고, 군대에서 군의관으로 일을 하고 있다.

최근에 유학생활을 하면서 머리에 두통이 너무 심해져서, D에게 전화를 한 적이 있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사회생활을 하며 만난 친구들과의 차이는, 아무 때나 예의 차리지 않고 연락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면 받는 사람 입장에서도 예의 차리지 않고 거절을 해도 그 누구도 상처받지 않기 때문이다.

- D, 나 왼쪽 얼굴이 무거운데 왜 그런 거야?

- 으응~ 언제부터 그랬는데?

- 한 한 달 정도?

- 으응~ 뭐 얼굴이 안 움직이는 건 아니고?

- 거울 보면서 해봤는데, 움직이는 건 잘 움직이더라고

- 으응~ 그러면 뭐 눈을 크게 떴을 때, 이마에 둘 다 주름 지고?

- ㅇㅇ 구완와사인 줄 알았는데, 그게 돼서 그건 아닌 것 같다. 근데 두 개다 올라가면 뇌종양일 수도 있다던데

- 으응~ 그러면 구완와사였는데 그게 뭐 지나간걸 수도 있고

- 그런데 왼쪽 눈도 좀 뻑뻑한 느낌이 들어

- 너 원래 옛날부터 눈뜨고 자서 그런 거 아녀?

- 아 그건 그런 것 같다.

- (중략)

- 암튼 또 이상 있으면 연락혀~

이제 의사로 일을 한지가 조금 오래돼서 그런지, D가 나를 환자 대하듯이 대했다. 그런데 아직도 그 초딩스러운 목소리가 남아 있어서, 병원 놀이를 하는 느낌도 없지 않아 있었다. 말을 하기 전에 으응 하는 건 의사 선생님의 기술인가?

일단은 일차적으로 D와 통화를 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져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3달 뒤

- D, 나 뇌종양인 것 같아

- 응? 왜 또 뭐 생겼어

- 갑자기 걸어가다 헛구역질했어

- 으응~ 얼굴 무거운 건 그대 로고?

- 아니 그건 사라졌어, 대신 두통 생겼어

- 으응~ 그런데, 뇌종양이면 있던 증상이 없어지면서 바뀌지는 않고, 보통 증상이 추가되지. 종양이 작아지지는 않으니까

- 아씨, 뇌종양이면 어떡하지, 아직 아등바등 산 것 밖에 없는데,

- 뭐 요즘 스트레스받는 거 있어?

- 아 그냥 일을 좀 많이 하긴 해

-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그렇게 일을 많이 해

- 그러게.. 아 어떡하지 아직 이룬 게 없는데

- 정 불안하면 MRI 찍어보던가, 찍고 나한테 보내 내가 알려줄게

- 오케이

- 그려, 또 이상 있으면 전화혀

뭔가 일반 병원에 가서 이야기를 하면, 약간 한심하다는 듯이 볼법한 방식으로 증상을 얘기해도, 너무 심각하진 않지만 진지하게 받아주는 모습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마치 아기와 병원놀이를 할 때, 어른이 환자역할을 하면서 이것저것 아프다고 이야기를 해도, 애기는 진지하게 역할놀이에 임하는 것처럼, 내가 호들갑 떨면서 말하는 증상에도 진심으로 대해주었다.

다른 친구에게도 물어봤던 적이 있었는데, 그 친구는 네가 건강염려증이 너무 심한 것 같다고 바로 이야기를 해서 약간 서운했다.

뭐 결과적으로 머리 MRI를 찍었는데, 아무 이상은 없다고 한다. 건강 염려증인가 보다.

친구라는 스펙트럼이 정말 다양해서, 어떤 친구는 정말 허물없이 지낼 수 있고, 어떤 친구한테는 예의 차려서 지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내가 뭘 해도 나를 일관되게 평가할 것 같은 친구가 있는 반면,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지만, 속으로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고 있는 친구들도 있을 것이다.

D는, 내가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해서 빌빌거리든 나를 한결 같이 대해줄 그럴 친구다.

아마 고등학교 대학교 연속으로 오랜 시간을 부대끼면서 살다 보니, 졸업한 지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그의 눈에는 옛날의 내가 보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