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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융원 Jul 29. 2023

육 남매 첫째 형: E

E는 사실 나보다 1살 어린 동생이다.


E를 알게 된 건 대학교 때 동아리 활동을 함께 하면서 알게 되었다.


E는 덩치가 엄청 큰데, 키도 한 185 정도 되는 것 같고, 체중도 100KG 정도 나갈 것 같다. 


이렇게 외적인 것도 형 같은데, 말과 행동도 형같이 느껴진다.


동아리에서도 항상 정기적으로 모임을 주도하는 것도 E였다. 그리고 그런 모임에서 남들이 다 마시며, 먹으며 놀고 있을 때, 묵묵히 요리를 하거나, 뒷정리를 군말 없이 하는 그런 친구였다.


모두가 좋아하는 그런 친구였다.


보통 대학교를 다닐 때, 동생들이 오히려 1살 차이가 나면 더 깍듯하게 대하고, 그 이상 차이가 나면 약간 까부는 경우가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E는 나한테 엄청 깍듯하게 대했다. 덩치는 거의 내 두 배인데.


E는 형중에서도 특히 첫째 형과 같은 이미지가 강하다. 

왜 옛날 티브이에 보면 오 남매 육 남매 이렇게 되는 가정에서 동생들 뒷바라지하느라 공부도 못하고 바로 일을 하기 시작한, 그런 느낌이 있다.


뭐 그러한 상황에 놓여있지는 않았겠고 내가 알지는 못하지만, 뭔가 모를 책임감과 끝도 없는 관대함이 느껴지는 친구이다.


학교에서 종종 만났을 때면, 나는 항상 뭔가 불만이 있는 상태로 E를 만났던 것 같은데, 내가 여러 가지 일에 대해서 불만을 토로할 때면 E는 항상 "그렇지 그렇지" 하면서 인자한 형처럼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생각해 보니 E가 어떤 일 또는 사람에 대해 불평을 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E는 원래 경제학과를 전공하고 회계사 준비를 했었다.

그러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자격증 공부를 그만하고, 프로그래밍으로 방향을 틀었다.

원래 똑똑한 친구다 보니, 프로그래밍도 금방 잘하다가, 개발자로 대기업에 취직을 했다.


자주 연락을 하지는 않았지만, 중간중간 연락을 했고, 같은 업계에 있다 보니 업무적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종종 하고는 했다.


어느 날, 회사생활을 몇 년 하다가, 인공지능 관련 석사 대학원을 지원을 했다고 연락이 왔다. 

당시 나는 석사를 마친 상태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일을 하고 있는 상태여서 E가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었던 게 있었던 것 같다.


회사를 퇴직하고 석사를 할만한 가치가 있는지, 그렇다면 그 2년간의 공백이 석사를 한다고 하면 보상이 되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질문들을 했다.




나도 일을 하다 석사를 하고 다시 일을 하면서 학계와 산업계를 왔다 갔다 하는데, 나는 이게 뭐 커리어에 도움이 되냐 안되냐는 둘째 치고, 공부라는 게 아무래도 시기가 중요하다 보니, 해서 후회할 것은 없다고 생각을 한다. "그때 했어야 했는데"라는 후회는 할지언정.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E가 원했던 건 자기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 아닌, 무한한 지지와 응원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육 남매의 첫째 형처럼, 다니던 공장을 그만두고 자기가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해도 되는지를 묻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E는 대학원에 가고, 거기서 열심히 다니고 있다. 아직도 첫째 형 같은 책임감에 망설이는 모습이 보이지만, 뭔가 자기를 위해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 뒤, 오랜만에 내가 일하는 곳 근처에서 E와 만나서 커피를 마신적이 있다.

나는 그 당시 일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상태여서, 또, E에게 투정을 부렸다.

"아 개발자 못해먹겠네, 빨리 다른 직업을 찾아야지"
"형은 그럼 어떤 직업 하고 싶은데요?"
"나는 작가가 될 거야"
"어떤 장르의 작가요?"
"몰라 그냥 나는 작가가 될 거야!"

그러고 얼마뒤 E는 나에게 약간 겉이 해진 책을 주었는데,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라는 책이었다. (그리고 그 책이 내가 글을 써도 될 것 같다고 생각을 하게 된 귀중한 용기가 되었다.)

마치 첫째 형이 공장일을 마치고 헌책방에 들려서 갑자기 작가를 하고 싶다는 막내 동생에게 선물로 주는 것처럼, 나에게 책을 주었다.


커버사진: Photo by Jordan Whitt on Unsplash

본문그림: MidJourney에 의해 생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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