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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융원 Jul 29. 2023

케이스 안 낀 아이폰: F

F는 이전 직장 동료이다.


F는 나에게, 가장 믿음직스럽지만, 가장 큰 실망을 준 친구 중 한 명이다.


일단 가장 믿음직스러운 이유는, 일적으로나 삶적으로 가치관이 확실한 사람이다.


특히 일에 대해서는, 프로페셔널함이 무엇인지 보여주는데, 실력뿐만 아니라 태도 또한 정말 어른이다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오히려 일을 같이 했던 초반에는 일과 개인감정을 너무 잘 분리를 해서 이 친구 약간 소시오패스인가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본인이 회사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음에도, 막상 회의가 시작되면 생산적인 방향으로 회의에 적극적으로 참여를 하는 걸 보고, 상대적으로 감정적인 나는 이해가 안 됐다.


그리고 가끔 삶을 살아가면서 내가 옳았나 틀렸나에 대한 헷갈림이 존재를 하는데, F는 항상 확고한 본인의 기준이 있어서 뭐가 옳았는지 틀렸는지에 대해 확실하게 구별을 할 수 있었다.


약간 인생 2회 차인가 싶을 정도로, 대부분의 애매한 이슈들을 본인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한국에 있을 때 우리는 걸어서 5분 거리에 살았었는데, 저녁에 집 앞에서 담배를 자주 폈다. 그러면서 정말 오만가지 대화를 다 했었는데, 그때의 대화를 통해서 나의 삶의 기준들이 많이 잡혔던 것 같다. 그렇다고 F에 기준에 영향을 받았다기보다, F와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나만의 삶의 기준을 세울 수가 있었다. 그때 나는 많이 선명해졌던 것 같다.


그래서 한국을 떠날 때, 한국에 있는 동안 계속하던 엄청 좋은 사이드 잡을 F에게 넘겨주었다.



F를 보다 보면, 뭔가 상당히 고상하다는 인상을 많이 받는다.


일단은 사람이 엄청 깔끔한데, 같이 일을 할 때 집에 몇 번 갔던 적이 있었는데, 집이 정말 깔끔했다.

예를 들어서 이제 컴퓨터 같은 거나 온갖 전자제품을 여기저기 설치를 하면, 항상 선을 안 보이게끔 신경을 써서 정리를 했던 것 같다.


뭔가 주렁주렁 매다는 걸 싫어했다.


그리고 입맛도 약간 까탈스럽다고 해야 할까? 나는 그냥 아무거나 먹는 편인데, 약간 깔끔한 음식을 좋아했던 것 같다.


이게 막 엄청 고급스럽고 그런 건 아닌데, 너무 양이 많지도 적지도, 맛이 과하지도 밍밍하지도 않은 그런 음식들을 좋아했다.


음식을 이야기하다 보니까, F는 이래저래 사람이 상당히 깔끔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니, 애플 제품을 상당히 좋아했던 것 같은데, 사람도 약간 아이폰 같았다. 케이스 안 낀. 




그런 그가 그 당시 가장 큰 실망을 준 친구인 이유는, 그만큼 믿었던 사람이 나와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어서다.


F는 재력가가 되고 싶어 한다. 근데 나는 돈에 대해서 우선순위가 그리 높지 않다. 


그런데 F처럼 믿음직스러운 사람이 돈에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는 헷갈렸다.


"응? 내가 잘못 생각했던 건가? 결국 돈이 제일 중요했던 건가?"


뭐 사실 그 판단이야 내가 하는 건데, 그 당시 나의 경우 나에 대한 확신이 없던 상황이었어서, F의 판단에 많이 의지했던 것 같다.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면, 최근에 생성형 AI가 핫했는데, 이걸로 유튜브 쇼츠 콘텐츠를 자동으로 만들어서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이야기를 나한테 했다.


"음.. 돈을 버는 게 좋긴 한데, 기왕이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면 더 좋지 않을까요?"

"(농담 식으로) 갈매기님 아직도 정신 못 차리셨네!"


그가 왜 이렇게 재력가가 되고 싶은지는 아직 정확하게 모르겠는데, 뭔가 범인의 범주에서 벗어난 상태가 되어야 본인이 진심으로 하고자 하는 것을 할 수 있다고 믿는 느낌이다.


F는 항상 궁극적으로는 자선 단체를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만들어서 세상에 불합리한 요소들을 본인의 재력으로 보완 또는 심판하고자 했다. 


오랜만에 한국에 가서 F를 만났다. 서울역에 한 카페에서 늦은 시간에 만났다. F는 요즘 많이 바쁜 것 같다.  


F는 한 회사의 팀장으로 일 하고 있는데, 그의 최근 고민은, 자기가 점점 그냥 직장인 1로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에 대한 실망감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예전에 팀원으로 있던 금쪽이 근황을 물었다. 이 친구 때문에 F가 한동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는데, 최근에 퇴사를 했다고 한다.


"오! 왜 퇴사를 했죠? 요즘 회사 인원감축한다던데 거기에 포함된 건가?"

"아, 그건 아니고, 자진 퇴사했어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일을 더하기 힘들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오 잘됐네요! 드디어 나갔네!"

"아 그런데, 엄청 스트레스를 평소에 많이 받아서, 자해도 하고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헐.. 회사에서 힘들게 하셨나요?"

"아뇨, 제가 그런 것 같지는 않고 그냥 뭔가 예전부터 심리적으로 힘든 게 있다고 했던 것 같아요. 나갈 때는 오히려 여기서 있던 시간이 손에 꼽히는 좋은 시간이었는데, 더 이상 자기가 컨트롤이 안 돼서 나가기로 했다고 하더라고요"

"아.."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문득 내가 팀장이었어도 저런 소리를 들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F는 예전부터 내가 소시오패스라고 생각할 정도로 합리적인 사람이었어서, 화나게 하는 팀원이 있더라도 일은 일이고 감정은 감정으로 분리하면 일했을 것이 그려졌다.



나는 사람들이 다들 하나씩 뭔가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뭐 엄청 천재 거나 그런 건 당연히 포함되겠지만, F의 경우는 저 선을 넘지 않는 능력이 그의 특별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선을 넘지 않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정작 본인이 그 상황에 놓이면 쉽지 않은데, 그 쉽지 않은 걸 F는 해낸다.


그래서 아이폰에 케이스를 안 끼고 다니나? 떨어뜨릴 일이 없어서?



Photo by Brandon Romanchuk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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