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수녀의 시 그리고 노래
어제는 할 일이 산적해 있는데도 꼼짝을 못 했다.
내가 눕고만 싶다는 것은 잠시 생이 의기소침했을 때이다.
눕기 위해 눕는 것이 아니라 앉아있기도 힘든 무기력감이 엄습할 때 그렇다.
자. 원인을 분석해 보자.
제주에서 일을 조금 도와주고 온 시간은 행복했다.
아침, 점심, 저녁 설거지를 각각 2시간씩 도왔다.
그 사이사이 올레서가의 책을 읽고 쓰고 즐겼다.
이런 생활이 나는 좋다.
단순한 반복, 확보된 시간의 집중된 독서.
자연이 닫히지 않는 공간.
설거지 할 때 야자수 그려진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책을 읽다가도 발치 아래 나무수국의 햇살 담은 이파리를 볼 수 있었던 곳.
한마디로 행복했다는 것이다.
양산을 가기 위해 서울로 돌아와 일찍 잠을 잤다.
압구정역 1번 출구에서 차를 타고 분당을 거쳐 출발했다.
차 안에서 12월 일정을 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일정을 삭제하면서 축적된 의견이 있던 터라
몸이 바로 아프기 시작했다.
메시지일지 카톡일지 통화일지 모르지만 누군가 뒤에서 나와의 인연을 끊게 하려고 꽤 노력을 한 것 같았다.
일행이 있어 체면을 생각해주느라 직접적으로 내 생각을 다 표현하지 못했다.
안 좋은 기운이 감돌 때, 안 좋은 말을 할 때, 안 좋은 이야기를 할 때.
날갯죽지가 좋여오면서 작은 통증들이 일기 시작한다.
그리고 심장은 쪼그라들고 눈은 슬퍼진다.
책방 8년의 시간 동안 이런 일이 잦았다.
이유 없이 (나랑 아무 일 없이) 나에 대한 태도가 바뀌는 사람들.
맥락 없이 날카로운 말을 던지는 사람.
그럴 때 가슴에 담아둔 시간들이 나를 많이 아프게 했다.
이유를 물어볼, 아니 그냥 대화를 할 틈도 없이 몸을 움직이던 사람들.
내가 돈을 써가며 빚을 져가며 버티고 있는 공간에서
내가 왜 그 비수를 받아야 했는가?
나보다 나이가 어려서? 나보다 나이가 많아서?
공간 운영하면 서비스 정신으로 다 받아줘야 해서?
다시 그 처음으로 돌아간다면 그런 사람과의 인연을 안 만들고 싶다.
후회된다. 나를 아프게 한 사람들을 진심으로 대했다는 것이.
이와 같은 일이 또 반복된다.
나랑 무슨 일이 있었다면 나는 이해가 된다.
왜 뒤에서 그러냐는 것이다.
어제 웃고 헤어졌는데 다음 날 아침 어떤 일을 파기하는 것처럼.
나의 성격 대로라면 다 그만둬야 한다.
내가 왜 바라지도 않았던 일에 애를 써줘야 하는가?
그렇지만 제3의 사람들과의 약속을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된다.
늘 이렇게 살아왔다. 내가 힘들게 살아온 이유이다.
한 가지 분명하다. 정해진건 지킨다.
'신의'를 지키는 것이 나의 삶이었다.
그래서 아팠다. 어제 하루 종일 무기력에 누워 잠만 잤다.
잠은 내게 긴급 처방 위로다. 삼일을 그렇게 잠만 잔 지난 여름 이후 처음이다.
책상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는 시간 7시 5분.
그 시간 카톡이 왔다.
"한평책방 : 김수나 에우프라시아님의 영육 간 건강과 평안을 위하여' 생미사 봉헌드렸습니다.
미사는 서울 용산구 효창동에 있는 ‘카푸친 작은형제회’ 강 프란치스꼬 신부님 주례로
2024년 11월 23일(토) 오늘 아침 7시 45분에 드립니다.
그 시간에 기도로 함께 하겠습니다."
김정식 로제리오님의 카톡이다.
내 인생이 힘들 때 노래로 나를 치유해 주신 분.
고등학교 2학년 음악으로 만나 지금까지 영의 세계에서 만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기적 아닌가?
나를 지켜주는 것은 예수를 닮은 사람이다.
사람이 예수이고, 예수는 사랑이다.
다시 오늘의 결심을 세운다.
나도 이렇게 생명의 말을 건네는 사람이 되어야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말아야지.
오늘 하루하루만 잘 살기로 다짐하면서.
<어떤 결심>
마음이 많이 아플 때 꼭 하루씩만 살기로 했다
몸이 많이 아플 때 꼭 한순간씩만 살기로 했다
고마운 것만 기억하고 사랑한 일만 떠올리며
어떤 경우에도 남의 탓을 안 하기로 했다
고요히 나 자신만 들여다보기로 했다
내게 주어진 하루만이 전 생애라고 생각하니
저만치서 행복이 웃으며 걸어왔다
- 이해인 수녀『희망은 깨어 있네』 마음산책 2010
어떤 결심(이해인 시/김정식 곡)
듀오 메타노이아(김정식 로제+송봉섭 요한)
20141118전주 임마누엘교회 예배중 찬양L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