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

11월을 보내며

by 윈디

11월 24일 일요일

지난 책방을 정리하며 책상 의자를 나눔 했었는데 그때 가져가신 분이 꼭 한 번 와보라고 해서 다녀온 장흥은 삼송에서 가까웠고 하나만 더 있으면 나란히 놓기 좋게 보여 평산책방을 다녀온 후 내가 가져온 하나를 더 드린다고 했다. 오전 10시경 오셨고 내가 아끼던 벽돌담장들도 모두 빼놓았다.

또 반찬을 가져다주셨고 나는 그런 훈훈함이 먼 데서 불어오는 해풍 같았다.

오후에는 지난 고흥 방문길에 가보기로 한 가톨릭문화원엘 다녀왔다.

나는 안다. 한 번 한 말을 생각하고 지키는 건 나 혼자의 약속이라는 것을.

현악연주가 도드라지니 전례에 참여하는 마음보다는 감상하는 것 같아서 미사에 집중되지는 않았다.

신부님도 인사하고 영화 투자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영화편집자를 만나면서 자신의 길에 우뚝 선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자신감과 생의 애착을 진하게 느꼈다.


11월 25일 월요일

배추, 무 수확을 했다.

화요일부터 기온이 내려가고 눈이나 비가 온다고 해서 수확해야 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전주에 언니에게 들고 간다고 했고 2시경 지애도 와서 밥 먹고 언니가 만들어둔 생강차를 먹고 오랜만에 언니가 깎아준 단감을 먹고, 또 오랜만에 언니에게서 화장품과 옷을 가져오고..

거의 1년 만에 간 것 같다. 조카들은 없었지만 조카들 방문을 열고 닫으며 안부를 전했다.

지난날을 그리워하는 일은 그만하기로 했다.

현재에 충실하자.


11월 26일 화요일

으스스 비가 왔다.

덕양구청 가서 식품위생업 폐업하고 그 사무실에서 나는 믹스커피 냄새가 좋아서 한 잔 얻어 마셨다.

사무실 자기 자리에 앉아 자기가 맡은 일을 하고 월급이 나오는 사람들이 잠시 부러웠다.

내 사무실 자리가 있을 때 내 책상은 깨끗하게 정리하고 살았었지.. 내 자리는 넓었었지..

저녁에 마음담론 독서모임에 갔다. 올해 마지막 모임이라 초밥초밥을 먹었다.


11월 27일 수요일

첫눈이 내려앉은 두께가 높았다. 강남순 교수님 1월 11일 강연 포스터를 만들고 밀린 사무를 하다가 오후에 눈 위를 걸어 나갔다. 서촌옥상화가 김미경 작가님 오프닝에 갔다. 많은 사람들이 리셉션에 참여해서 나는 조용한 위층에서 한적하게 감상을 하려고 계단을 올라가던 참이었다. 오프닝 행사 순서대로 김미경작가님과 정은혜작가가 함께 춤을 추며 내려오고 있었다.

난 예술이 삶이 된 사람의 깊은 몰입을 보았다. 내 가슴에 훅 들어온 애환이 서린 호흡. 그 순간 늦었지만 재빨리 핸드폰 카메라를 켰다. 모두 1층에서 대기하고 있던 참이라 그 순간은 나만 목격했다.

뒤늦게 사진 한 장을 남겼지만 두고두고 나를 흔들 순간이다.

이미루님과 저녁도 먹고 차도 마셨다.

만두전골을 먹은 곳은 사람들이 줄을 너무 많이 서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뒤 서둘러 일어났고 50년이 넘은 카페 반쥴에 가서는 커피는 평이했지만 하프를 아주 가까이 몇 대나 직접 볼 수 있었다. 커피를 마시며 33세 초여름, 소엽이랑 싱가폴에서 휴가를 보내며 나는 도서관에서 며칠을 하프시코드 연주를 듣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 입었던 살구빛 지퍼후드티도 떠올랐다. 그때는 인생이 살구빛으로 빛난 꿈을 꾸었을 때였고.


11월 28일 목요일

30일까지 마감을 앞둔 고양문화재단 서류 작업을 위해 성은이랑 점심을 먹기로 한 약속을 한 주 미뤘다.

미루다 보니 전화로 1시간가량 통화를 했더니 다음 날 아파버렸다.

난 내용을 떠나서 핸드폰 통화를 오래 하면 아프다.

전자파의 해로움은 누가 이해해 줄 것인가.


11월 29일 금요일

성과공유회 간다고 했는데 몸이 너무 으슬으슬했다.

망설이고 있는데 담당자가 전화 오더니 내 목소리를 듣고 먼저 쉬라고 말해줬다.

이런 행운이 어디 있는가.

말하기 어려운 때 내가 말도 안 했는데 먼저 쉬라니.

너무 좋았다. 이 하루 덕분에 11월의 피로가 풀렸다.


11월 30일 토요일

3월부터 꾸준히 모임을 이끌던 리무는 12월까지 뒷심을 잃지 않는다.

청년에게서 배울 점이 많다.

나 31세 때는 취미 생활이 전부이긴 했지만 뭐 하나 알찬 기록은 없는데 말이다.

12월 모임은 송년특집으로 하기로 했다.

내년 2월까지는 회고글 쓰기로 이어가면서 1년을 채운다니.

한 마디로 대단하다는 말 외에는 할 말이 없다.

함께 하나로마트 구내색당에서 밥을 먹었다.

첫 직장에서 선배들과 도시락을 함께 먹던 광주 금남로 5가 회사의 휴게실이 생각난다.

나는 정이 그리운 것인가?


2024년 11월이 다 끝났다.

나는 내가 살았다는 것을 모르고 지나가버린 날들을 더듬거리려고 한다.

가까운 날들을 순간으로 남기면서.

교회력으로는 대림 1주라는 것을 나는 안다.

새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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