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소서 이야기 -
이력서를 어떻게 써야 한다~라는 식의 글은 이력서 첨삭 업체가 올려둔 글이나 일반 취업 수기를 찾다 보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문제는 이런 간단한 글 조차도 읽지 않고 지원을 한 지원자가 생각보다 많다는 점이다. 중소기업 지원자 이력서라 지원자의 수준이 낮아서 그런 것 아닌가요?라고 묻는다면, 해외 영업 & 마케팅 지원자의 상당수가 해외대학 출신, 해외 체류 경험이 오랜 자들이 대부분이며, 국내 대학 출신 지원자들도 상당한 고 스펙인 지원자가 많다는 점을 미리 알린다.
반대로, 한번 만들어둔 이력서는 기업의 규모와 형태에 상관없이 조금씩 변형해서 계속 쓰이기 때문에 성의 없는 이력서의 경우 애초에 대기업, 공기업 할 것 없이 수준 미달인 지원자 임에 틀림없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놀라운 사실은 생각보다 수준 미달인 지원자가 많다는 사실이며 이는 소위 좋은 학교를 나왔다고 해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한번 채용 공고를 올리게 되면 적게는 100대 1, 많게는 한 명을 뽑는데 최고 320명이 지원한 적이 있다. 처음 채용을 담당하게 되었을 때는, 오래전 취업준비생 시절 내 이력서를 조금이라도 꼼꼼하게 읽어주었으면 하고 바라던 기억이 생각나 정말 천천히 형광 펜으로 표시를 하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사람은 적응하는 동물이라고 했던가? 하나의 포지션에도 수 백장의 이력서를 읽다 보니 이력서를 읽고 넘어가는데 점점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오래전에 보았던 취업 관련 다큐멘터리 면접관들이 이력서 한 장을 읽는데 1분이 걸리지 않는다고 하던데, 지금 생각해보니 시간이 없어 빨리 읽는 것이 아니라, 수천 장을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빨라진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3년 정도 채용을 진행하다 보니 이제 이력서 한 장을 읽는데 빠르면 10초 정도 걸리는 것 같다. 아니, 그토록 정성스럽게 쓴 이력서인데 고작 10초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것이 현실이다. 만약 10초를 넘어가는 이력서가 있다면, 조금 더 신경 써서 살펴보더라도 30초를 채 넘기지는 않는 것 같고, 그 안에 서류 합격과 불합격이 결정되어 각기 다른 폴더로 저장된다.
앞 전 취업 수기에서 스펙 숫자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고 했었다. 하나는 스펙이 나타내는 숫자가 실력을 증명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실력을 쌓기 위한 노력을 전제로 숫자가 나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반대로 숫자 자체가 지원자의 실력을 증명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점수의 높낮이만 가지고 줄 세워서 뽑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10초, 길어야 30초 안에 읽어 내려가는 자기소개서에서 학점 3.5와 3.8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 그렇다고 앞자리가 바뀌는 3.5점과 4.0점이 대단한 차별화가 되는 것도 아니라고 본다. 다만, 면접관이 이력서를 보았을 때, 이 학점은 도대체 학교 생활을 어떻게 한 거지? 기본적인 전공 지식도 없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점수만 아니라면 거의 대부분의 지원자들은 동일 선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어학 점수도 마찬가지이다. 영어 이력서를 첨부하면 베스트이겠다. 영문 이력서가 없더라도, 해외 체류 기간이 길거나, 어학점수가 그럭저럭 괜찮은 점수라면 크게 문제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반대로, 해외 영업에 지원하면서 이런 영어 점수 가지고 되겠어?라는 인상이 심어지는 순간 불합격이 된다.
이력서의 수치들은 1등부터 꼴찌까지 줄 세우기 위한 척도가 아니라, 최소한의 기준에 미달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거르는 장치가 아닐까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만약 대기업 인사 팀에서 각 항목마다 기준과 가중치를 두고 점수를 매겨 필터링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줄 세우기 위한 필터링이 아닌 앞서 말했듯 기준 미달의 지원자를 걸러내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한다.
채용 담당자가 되어 이력서 한 장을 읽는데 걸리는 시간은 10초이다. 숫자로 채워진 소위 스펙이라는 부분과 질문 답 형식의 자기소개서 내용 모두를 10초 안에 읽어 내려가려면 더 뛰어난 점수를 찾는 것이 쉽겠는가? 기준 미달을 떨어트리는 것이 더 빠르고 효율적 이겠는가? 당연히, 앞으로 읽어야 할 지원한 지원자들의 전체 평균을 모르기 때문에 비교하여 줄 세우는 것이 아니다. 채용 직무의 특성을 고려하여 최소한의 직무 수행 능력 미달에 대한 기준을 두고, 기준 미달인 지원자를 빠르게 제거해 나갈 것이다.
10초. 첫눈에 반하긴 힘들어도 첫눈에 떨어지지 않기 위한 당신의 전략은 무엇이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