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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연 Sep 11. 2024

할머니, 딱 한번만 더 불러보고 싶은 이름

할머니, 할머니! 그려 또 오너라. 꼭 와. 오면 꽃 만치로 이쁘지.

있잖아. 나 사실 혼자 집에 있을 때 가끔 '할머니~' 하고 부른다. 할머니를 부르던 그 억양을 잊게 될까 봐. 


언니의 고백이 있은 후, 나도 가끔 혼자서 중얼 거린다. 

할머니~! 할머니. 이제는 눈물 없이 부를 수 없게 된 이름을 구태여 명랑한 목소리로 불러본다. 




"빵울아!" 

사실 할머니댁에 들어서며 가장 먼저 불렀던 것은 마당에 있는 강아지 방울이의 이름이었다. 차가 할머니댁 앞쪽 도로에 진입하면 방울이는 신나서 어쩔 쭐 몰라 토끼처럼 앞발로 바닥을 콩콩 찍으며 뛰기 시작했다. 아빠가 기어를 P단으로 놓기도 전에 나와 언니는 문을 열고 튀어나가 초록 대문을 들어섰고, 방울이는 그런 우리를 향해 허벅지까지 한껏 튀어 올랐다. 방울이를 엉망으로 마구 쓰다듬고 나서 그제서야 "할머니~!"를 외쳤다. 


이내 드르륵 열리는 부엌문. 

"하이고, 더운데 왔냐!" 할머니는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우리 가족은 모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낡은 방충망 문을 거칠게 닫으며 후다닥 할머니댁으로 들어섰다. 엄마가 들고 온 체크무늬의 롯데마트 갈색 장바구니에는 빈 플라스틱이 가득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할머니의 김치를 담아 양손 가득 무겁게 돌아가기 위함이었다. 할머니의 사랑을 철없이 요구했고, 넘치는 사랑을 무해하게 받는 것이 우리의 몫이었다. 


"할머니~!"

가끔은 부엌문이 열리지 않고 조용한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뒷마당 텃밭에 가보면 멀리서 사람인가 싶은 작은 형체를 찾았다. 쪼그려 앉으면 포대자루보다 작았던 작은 체형의 할머니는 밭을 매고 있었다. "할머니, 우리 오면 같이 하자니까!" 할머니는 농약 상표가 크게 적힌 챙이 넓은 모자를 치켜올리며, 잇몸이 만개한 웃음을 보여줬다. 밭에도 안 계시는 날에는 마당 건너편 뒷간에서 머쓱하게 웃으며 나오는 할머니를 발견하곤 했다. "할머니, 옛날 화장실 쓰지 말고 집에 있는 화장실 쓰라니까~!" 나는 잔소리 대마왕 엄마의 딸답게, "할머니~"라는 명랑하고 밝은 콧소리 뒤에 항상 잔소리를 붙였다. 진정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할 수 있는 것이 잔소리라는 것을 이젠 안다.


할머니를 부를 땐 혀가 조금 짧아지고, 목소리가 한없이 올라갔다. 입꼬리도 올라갔다. 철없는 아이가 되어 한껏 어리광을 부리겠다는 다짐이 담긴 목소리였다. 할머니는 함박웃음으로 그 부름에 답했다. 손가락 마디가 두꺼워진 양손으로 억세게 우리 손을 붙들었다. 등을 투박하게 쓰다듬어 주시기도 했다. "하연이 소연이가 오니까 사람 사는 것 같다", "자고 가라"를 수십 번 반복해 말했다. 할머니가 내어주는 간식을 입에 물고 마루 바닷에 누워 뒹굴거리고, 방울이를 몇 번 쓰다 듬다 보면 시간은 금방 흘러 집에 갈 시간이 됐다. 어린 시절의 하루는 끝도 없이 길었던 것 같지만, 뒤돌아보면 그 모든 순간들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것처럼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것처럼, 할머니집에서의 시간은 유난히도 빨리 갔다. 나는 "다음에 금방 또 올게요, 할머니~!" 하며 아쉬운 마음을 애교 섞인 목소리로 대신했고, 할머니는 '그려 또 오너라. 꼭 와. 오면 꽃 만치로 이쁘지.' 했다.  나는 애석하게도 차문을 꽝 닫았고, 할머니는 차 뒷 유리문을 뒤늦게 손으로 두드리며 꽃무늬 파자마 바지에서 만 원짜리 하나를 꺼내 창문 사이로 던져 넣곤 했다. 할머니댁이 완전히 시야에서 벗어나기 전 삼거리, 아빠는 항상 그곳에서 우리가 창문을 내리고 할머니에게 손 인사를 할 시간을 주곤 했다. 할머니는 희미한 가로등 아래에서 손을 바깥으로 훠이훠이 저어냈다. 


세월은 야속하게 흘렀다. 부엌문은 좀처럼 스스로 열릴 줄을 몰랐다. 


"할머니~" 

"할머니~~~!"


밭에도, 뒷간에도 갈 힘도 없는 할머니는 이제 안방에만 누워 계셨다. 어둠 속에 세 개 채널이 겨우 나오는 TV를 덜렁 틀어두고 작게 말아 돌아 누워있었다. 할머니는 어둠 속에서 '아이고...' 하면서 부스스 일어났다. '아구구구구' 조금은 엄살이 있던 할머니는 마른 몸을 힘겹게 일으키며 '하이고...' 숨을 내쉬었다. 머리맡에 쟁반으로 덮어둔 물 잔에 물을 쪼르르 따라 건네면, 됐다며 마른 입술을 손으로 훔치기만 했다. 


"할머니..." 

언젠가부터 나는 "할머니~!" 대신 "할머니..."하고 불렀다. 목에 주삿바늘을 꽂고 그를 만지지 못하게 묶인 할머니의 손을 보며, 새하얀 벽을 바라보고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할머니를 보며, 나는 "할머니..." 했다. 지나가는 제비만 봐도 입을 가리고 깔깔 웃던 할머니는 내가 우스꽝스러운 춤을 춰도 웃지 않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할머니의 무표정을 봤다. 낯설었다. "할머니..." 할머니가 나를 보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던 나는, 흰자와의 경계가 흐려져 푸른 회색 빛이 되어버린 할머니의 눈동자를 처음 가까이서 봤다. 내가 알던 할머니가 아닌 것 같았다. 두려웠다. 할머니와의 이별이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아서, 아니 어쩌면 내가 알던 할머니는 이미 사라지고 없는 것 같아서. 


"할머니, 주민번호가 뭐야?"

점점 멀어져 가는 할머니를 붙들어 두려는 처절한 질문이었다. 330, 110... 학교 문턱도 못 밟아본 할머니는 동사무소에서 당신이 주민등록번호 열세 자리를 외워보이고, 동사무소 직원이 "와 할머니 학교도 못 다니셨다면서 주민번호를 외우셨네요?"라고 감탄한 수십 년 전 그날의 이야기를 몇 번 말하곤 했다. 자랑스러운 미소와 함께 330, 110, 000, 0 0 0, 0! 리듬이 섞인 숫자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한 덕분에 가족 모두가 할머니의 주민번호를 외우고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치매에 걸리고 코로나19 이후 합병증이 심해진 이후, 할머니는 좀처럼 주민번호의 리듬을 타지 못했다. 3, 3, 0, 1, 1, 0. 주민번호 노래의 첫 운을 띄워도 할머니는 반응이 없었다. 언니와 나는 '할머니...' 하며 너무나 말라버린 할머니의 손을 쓰다 듬었다. 


복 많은 할머니는 더 오래 아프시지 않고 지난 봄, 꽃이 흐드러지는 좋은 계절에 맞춰 하늘 나라로 떠나갔다. 장례식장에서 염을 할 때, 나는 할머니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보듬어 만졌다. 한기가 느껴지는 차가운 할머니의 몸을 가슴에 폭 안았다. 깊게 파인 할머니의 볼을 쓰다듬고, 여전히 말랑한 귓불을 만지고, 밀랍인형처럼 붙어버린 위아래 눈꺼풀을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봤다. 환한 웃음을 보여주던 할머니의 모습만큼이나,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아픔 없는 곳으로, 더욱 자유롭게 떠나간 할머니가 두고 간 육신이니 외려 그를 보며 너무 슬퍼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할머니, 사랑했어요. 금방 또 만나요. 


'우리 소연이'라는 이름으로, 할머니와 손녀의 관계로, 박순례 씨와 함께 해서 진심으로 감사했다. 무한한 사랑을 퍼주는, 작은 것에 크게 웃는, 정 많은 박순례 씨. 어려서부터 이렇게 오랜 시간 함께한 것이 그 자체로도 얼마나 복이란 말인가. 


엄마 대신 가족 달리기 대회에 언니의 손을 잡고 참여하던 검은 머리의 할머니, 스스로 기차를 타고 초강역에서 익산역까지 또 익산역에서 또 우리 집까지 반찬을 이고 지고 찾아오던 힘센 할머니, '방금 밥 안쳤는데 언제 밥이 다 돼부렀디야?" TV 속 드라마 주인공과 대화를 시도하던 엉뚱한 할머니, 방울이를 막대기로 때려 왕왕 짖게 만들던 옛날 사람 할머니, 회색 빛이 되어버린 눈빛으로 초점을 잃었지만 내 손을 놓지 않던 할머니. 그 모든 순간의 할머니와 함께 할 수 있어 진심으로 행복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할머니를 만나게 되어 진심으로 감사하다. 




49일 동안 할머니를 보내는 글을 쓰겠다고 해놓고, 반년 가까이 되는 시간 할머니와의 추억을 곱씹으며 느릿느릿 글을 썼다. 쓸 때마다 눈물을 줄줄 흘려 카페 옆 자리 일행을 당황하게 했던 이번 브런치북은 이번 편을 마지막으로 연재는 종료해보려 한다. 


글을 쓰는 동안, 할머니와 함께 해서 행복했다. 당장이라도 할머니가 내 살갗을 만지는 것 같은, 내 머리맡에 음식을 내려놓는 듯한, 할머니댁 냄새가 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차를 타고 정읍으로 달려가면 초록 대문에 할머니가 서 있을 것만 같다. 할머니. 나한테 잠깐 다녀간 거지. 내 삶의 순간순간을 따뜻한 손길로 보듬어주던 할머니가 있어 지금의 내가, 우리 가족이 있을 수 있었다. 


이 브런치북은 감사하게도 또 신기하게도 글을 쓸 때마다 조회수가 늘어났다. 비슷한 시기 할머니와 이별한 분, 사랑하는 반려 동물이나 가족을 떠나보낸 분도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그 결이 비슷한가 보다. 우리는 앞으로도 살아가며 수많은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내겠지만, 사랑한 만큼 가슴이 아픈 이별일 테니 그마저도 너무 아프기만 하진 않은 방식으로 잘 떠내 보낼 수 있기를 바라본다. 할머니를 천천히 보내드려야겠다. 눈물로, 또 웃음으로, 행복하게 기억하고 싶다. 


다시 만나게 되면, 꼭 "할머니~!"하고 부를 것이다. 할머니~! 


사랑하는 할머니는 일로 바쁜 엄마를 대신해 언니의 손을 꼭 잡고 운동장을 뛰셨다
우리가 가장 좋아하던 할머니댁 뒷마당. 항상 사랑으로 보살펴주셔서 감사해요 할머니
할머니집 마당에 쌓인 첫 눈 쓸기, 왕왕 난리 치는 방울이 
해가 잘 드는 마당에 이불을 말려두곤 했다
늦은 저녁 떠나던 우리, 초록 대문에 서서 우리를 배웅하던 할머니
할머니는 팥빙수를 좋아했다. 다음에 꼭 또 같이 먹으러 가자 할머니!


지금까지 "49일 동안, 할머니를 보냅니다"를 읽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소중한 사람과 사랑이 넘치는 하루 보내시길 바랄게요. 




지난 글은 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dearmygrand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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