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연 Jun 09. 2024

할머니를 대신해 바둑이가 저승사자를 따라나섰다

할머니댁에는 항상 '바둑이'라는 이름의 강아지가 있었다 

6년 전, 할머니에게 전화를 받고 짧은 소설을 썼다. 할머니는 저승사자가 자기 대신 바둑이를 데려간 거라며, 간밤에 꾼 꿈을 이야기했다. 나는 할머니가 해주는 꿈 이야기를 따라, 작은 몸의 바둑이가 딱딱하게 굳지 않고 살아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상상하며 대신 일기를 써 내려갔다.


<바둑이의 일기> 

며칠 전부터 밤마다 대문 앞을 왔다 갔다 하는 발소리에 잠을 통 못 자겠다. 날이 추워져 따뜻한 집에 들어가 자려고 해도, 그 발소리 때문에 도저히 맘 편히 잘 수가 없어 마당 한가운데서 잠이 든다. 오늘은 낮에 할매를 따라 밭에 다녀왔다. 신이 나서 먼저 뛰어가다 뒤돌아보니 할매가 저 멀리 지팡이를 짚고 걸어오신다. 해 질 녘 할매랑 같이 집에 돌아오는 이 길이 참 좋다. 초저녁, 할매가 자려는지 불을 껐다. 어두운 밤 TV소리만 들린다. 도통 사람 소리는 안 나는 마을이다. 이웃 할매들이 몇 번 오가는 것도 이젠 거의 없다. 이 세상에 할매랑 나 딱 둘 뿐인 것 같다. …… 앗, 깜빡 잠이 들었다. 방에서 도란도란 말소리가 들린다. 이 새벽부터 누구지. 요 며칠 문 밖을 서성이던 그 사람들일까. 몇 번을 소리쳐도 문 밖을 내다보질 않는다. 아침 해가 뜨고 슬슬 밝아지니 할매가 문을 열었다. 할매 뒤에 까만 옷을 입은 남자 셋이 서 있다. 지난 추석 때 왔던 요란스러운 애들은 아닌 것 같고. 이 사람들은 누구지? 할매가 내준 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이 남자들이 가지도 않고 내 옆에 앉아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자기들끼리 이야기하길 다음에 와서 할매를 데려간단다. 깜짝 놀라 밥 먹다 말고 할매 신발을 물어 화단에 마저 숨겼다. 이게 없으면 할매는 어딜 못 갈 테지. 그런데 남자 셋이 이 좁은 화단으로 따라 들어온다. 햇살이 참 좋은 가을날인데, 어쩐지 내 몸은 뻣뻣해지는 것 같다. 


<할머니의 일기> 

꿈자리가 영 껄쩍지근하다. 사자 셋이 와서 ‘저승 데려갈라고 왔응께 이제 같이 가소’ 했다. '그러자' 하고 자릴 나서니 사자 한 놈이 글쎄 배가 고프다고 털썩 주저앉는다. 밥 한 그릇 두 그릇 내어주니 꼬박 아홉 그릇을 처먹고 앉았다. ‘인자 원 없이 다 먹었으면 길 나서게’ 하니 갑자기 ‘지금 데려가면 불쌍해서 안 되오’ 한다. 그러더니 먼 곳을 가리키곤 ‘대신 저 놈을 데려가야겠다’ 한다. ‘나도 이제 영감이 보고 싶은게 나를 데려가오’ 하고 소리를 빽 질러도 소용없다. 눈 떠보니 얼씨구, 꿈이다. 뭐 이런 개뼉다구 같은 꿈이 다 있는가 싶다. 개밥이나 주려고 문을 여니 바둑이가 꼬리를 흔들며 가만가만 문 앞으로 다가온다. 또 마당에서 잤냐? 말짓 한 번 안 하고 착하게 굴더니, 요즘엔 지 집에서 나와 마당 한가운데서 자서 염병하고 속을 썩인다. 참, 작은 방 이불을 꺼내 몇 개 깔아주면 쓰겠다. 열 식구도 살던 큰 집인데, 이제 나 하나 남고 이 많은 솜이불이 다 쓸 데도 없으니 개나 꺼내주면 딱이다. 개 하나 있는 게 사람 새끼 있는 것 만치로 맴이 든든하다. 무건 이불을 들고 나오는데 웬일로 똥개가 문 앞에서 달라 들질 않는다. 밥도 마저 처먹지도 않고 야가 어딜 갔는고. 나서려니 신발이 또 없다. 이 놈이 가끔 이렇게 신발을 숨긴다. 지팡이로 바닥을 툭툭 때리면 신발을 물고 나타날 테지. 한참을 두들겨도 기척이 없어 살펴보니 화단에 저 놈의 것이 숨어 있다. 바둑아, 이리 와라, 손을 둘레 둘레 내밀어도 반응이 시원찮다. 고꾸라져 가만 보니, 아이고, 새까만 눈을 지켜 뜨고는 움직이질 않는다. 아이고, 바둑아, 바둑아. 내 새끼야. 내가 갔어야 하는데 니가 갔구나, 차라리 나를 데려가지 아이고 아이고, 너를 그렇게 좋아하던 소연이 하연이 얼굴을 내가 염치없이 어떻게 보라고, 아이고 바둑아. 내가 죽어도 너는 사람들이 다 서로 맡아 반겨주겄지만은, 이 늙은이는 이제 너 없으면 누가 반겨 주겠냐. 아이고 아이고, 바둑아 내 새끼야.


사실 할머니의 '꿈' 화법은 꽤나 익숙하다. 실제 할머니가 꾼 꿈인지, 아니면 우리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하기에는 민망하여 빙 둘러 전하고자 하는 방식인지 이제는 끝내 알 길이 없지만, 할머니는 꼭 자기의 속마음을 이야기할 때 곧잘 '꿈을 꾸었다'며 이야기하곤 했다. 다음번에 같은 이야기를 또 들을 때면 그 내용이 바뀌어 있곤 했으니, 할머니의 꿈은 할머니의 속마음을 가장 잘 들여다볼 수 있는 창 역할을 톡톡이 해주었다. 


바둑이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고도, 나는 예약해 둔 미용실을 향했고 가운을 두른 채 앉으면서도 세상이 무너졌다는 듯 엉엉 소리 내어 울음을 토해냈다. 미용사는 난처한 얼굴로 내 머리를 매만졌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거울 속 내 모습을 바로 바라봤다. 퉁퉁 부운 눈을 꼭 닮은, 강아지 치고는 꽤나 작은 단추 같은 까만 눈을 가지고 있던 바둑이를 떠올렸다. 수많은 바둑이들이 있었지만, 가장 마지막으로 '바둑이'라는 이름을 했던 그 강아지. 


항상 '바둑이'였다. 백구든 황구든 얼룩이든 상관없었다. 초록 대문의 할머니집 마당에 강아지가 들어오는 날이면 그 강아지는 모두 '바둑이'가 됐다. 


할머니는 할머니의 방식으로 바둑이를 사랑했다. 해가 짧아지고 길어지는 계절의 흐름에 따라 바둑이의 집은 대문 앞, 혹은 부엌문 바로 앞으로 거처를 옮겼다. 긴 줄을 묶어두는 기둥과 기와집 모양의 '개집'을 옮기는 것은 30kg대의 작은 체구의 할머니가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할머니는 매 계절 개집 위치를 바꾸었다멀쩡한 사료 포대를 두고도 사람 밥을 주었으며, 스테인리스 개밥 그릇을 두고도 꼭 사람 밥그릇을 썼다. 숟가락을 반대로 뒤집어 잡아 손잡이 부분으로 밥이며 고깃 덩어리를 꾹꾹 조각조각 냈고, 슥슥 비벼 툭 내어 주었다. 할머니가 치매에 걸린 후에는 마당에 고급 사기 밥그릇이 대여섯 개씩 나와 있었다. 10분, 아니 5분에 한 번씩 '내가 개밥을 줬나' 하며 마당을 내어 보았다. 굵어진 손마디로 내 등을 쓸어내리던 것만큼이나, 투박한 모양새의 사랑이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몸이 쇠약해짐에 따라 바둑이와도 이별해야 했다. 밥이 있는데도 자꾸 밥을 내어주어 개밥이 쉬는 것도 문제였지만, 바둑이의 얇은 목줄에 걸려 넘어져 할머니가 큰일 날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할머니 나이에는 아주 작은 넘어짐도 심각한 골절과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었기에, 발목 언저리를 맴도는 사랑스러운 바둑이는 그 존재만으로도 할머니에게 심각한 위협이 됐다. 따라서 단추 같은 작은 눈을 가진 강아지는 우리 할머니댁 역사상 바둑이라는 이름을 한 마지막 강아지가 됐고, 그마저도 아랫집 공주네 집에 보내졌다. 


마지막 '바둑이'의 새로운 거처 공주네 집은 내달리면 한 걸음에 닿을 만한 아랫집이었지만, 따스한 햇빛이 내리쬐는 할머니집 마당과는 분명히 분위기가 달랐다. 흙바닥은 축축했고, 토끼들은 좁은 철장 안에 갇혀 형체가 일그러진 배추를 씹고 있었다. 바둑이는 공주네 집으로 간 지 며칠 되지 않아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그날따라 꼬리를 치는 기력도 없어 보였던 바둑이를 두고 나는 '기분이 안 좋은가 봐' 하며 간식을 연신 주었다. '다음에 또 올게'하고 할머니댁으로 올라오던 내 모습이 미용실 거울 속에서 영화의 슬로 모션처럼 느리게 스쳐 지나갔다. 아무리 눈물을 흘려도 '다음에 또 올게'라는 그 말을 기다려줄 바둑이는 이제 없었다. 


당시는 할머니가 오래도록 함께 살던 이웃 할머니들, 아니 가장 가까웠던 친구들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던 시기였다. 앞집, 뒷집, 옆집 다 죽고 아무도 없다고, 하던 그 시기. 바둑이는 그런 할머니를 아침마다 꼬리로 반기던 유일한 생명체였으며, 어제와 같은 오늘이 또다시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삶이 이어지고 있음을 분명하게 체감하게 하는 존재였을 것이다. 당신이 필요한 존재라고 일깨워주는, 밥 달라고, 산책 가자고, 할머니를 채근하는 단 하나의 존재. 그렇기에 할머니는 귀찮아 죽겠으니 데려가라면서도 자신의 존재를 증명시켜 주는 유일한 동반자 '바둑이'를 곁에 두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할머니는 바둑이의 생명력마저 감당할 수 없게 되었을 때, 평생을 함께 하던 '바둑이'와 이별하고 그마저도 끝내 죽음에 이르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당신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당신이 죽었어야 했는데, 바둑이가 대신 죽은 것이라고. 


할머니댁을 거쳐 간 바둑이들에게, 마지막까지 한 가지 더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 그곳이 아직 많이 낯설 텐데, 할머니에게 반갑게 인사해 달라고. 따스한 봄볕이 드는 이곳저곳으로 데려가 가달라고. 아마 우리 바둑이들은 이런 내 부탁을 들은 채도 않을 것이다. 내 부름에도 반대 방향으로 열심히 뛰며, 이미 할머니와 함께 발맞추어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있을 것이다. 


빵을 먹는 할머니와 (할머니 미안!ㅋㅋㅋ) 그걸 지켜보는 어둠의 바둑이 
작은 눈을 가졌던 마지막 '바둑이'. '단추', '까만콩' 등의 이름을 붙여주었어도 좋았겠다. 계속 바둑이로 불러서 미안하다. 
우리가 나서면, 할머니는 이렇게 대문에 서서 바둑이(들)과 함께 배웅 인사를 하곤 했다. 
할머니를 향해 뛰어오는 바둑이. 옆집 팽창 할매와 함께. 거기서는 사이 좋게 지내고 있지요?
바둑이도 할머니도. 모두 많이 보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