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연 Jul 03. 2024

장례식장에 도둑이 들었다

장례식장에 스며든 자본주의, 화환 꽃 이게 다 뭔데 

장례식장에는 온전한 슬픔만이 깃들어 있을 것이라는 게 큰 착각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은 할머니를 보내는 3일 내내 펼쳐졌다. 중간중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찾을 수 없을 때도 그랬지만, 장례'식'의 모든 비용이 적힌 영수증을 볼 때도 그러했다. 불현듯 아, 이거 현실이지, 하는 현실 자각 순간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꽃'이었다. 할머니의 빈소로 꽃다발이 배달 왔다. 입관할 때 관에 함께 넣을 수 있는 꽃다발이었다. 우리 가족은 할머니가 관에 들어갈 때 꽃과 함께 들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입관식에 참여하는데, 꽃이 보이질 않았다. 


"아까 받은 꽃 여기다 넣는 거 아니에요?" 

"그거 잘못 온 거라, 저희 거 아니에요. 결제가 안 된 거예요."


장례지도사가 단호한 말투로 '결제가 안 된 거예요'만 붙이지 않았어도, 항의하듯 터지는 불만의 목소리는 커지지 않았을 것이다. 


"결제 그까짓 거 하면 되지. 그걸 왜 도로 보내요? 우리 어머니도 꽃 같이 하면 좋잖아요." 

"그게 아니라, 아예 저희 상조 상품이 아니었어요. 저희 상조는 꽃 없어요. 다른 빈소에 갔어야 하는 거였어요." 


이어지는 설명에도 웅성웅성하는 소리는 잦아들지 않았다. 훌쩍이는 소리와 섞인 투정에, 내 머릿속엔 빠른 질문들이 채워졌다. 우리 상조는 어떤 상조였을까? 우리 엄마아빠는 상조보험에 가입했나? 내가 죽으면 장례식을 꼭 치러야 하나? 근데, 참나. 꽃 포함된 상조 서비스는 얼마길래? 


천장은 낮고 벽은 삭막하도록 새하얬던 입관실. 그곳에서의 꽃의 부재는, 마치 꽃이 없었기 때문에 이토록 침울한 것이라고 원망이 들 만큼 그 존재감이 컸다. 할머니의 수의를 바라보다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할머니 빈소 앞에 있는 그 많은 화환들, 거기서 꽃 빼서 할머니 관에 넣어드리면 안 되나? 


할머니는 복이 많은 분이었다. 할머니의 빈소 앞에는 할머니의 명복을 비는 글귀가 담긴 화환들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전해져 와 있었다. 평소 이런 형식적인 것들이 다 뭐 의미가 있나 생각했던 나였는데, 그 화환이 만들어낸 장례식장 꽃길이 주는 위로의 힘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화한이라도 없으면, 장례식장 복도는 삶에 대한 허무함이 공포감으로 번지기 쉬운 곳이었으니까.


눈물 콧물 때문에 더 튀어나올 수 없을 정도로 입과 코가 퉁퉁 부은 얼굴이었지만, 나는 힘을 내어 입술을 더 삐죽 내민 채 언니에게 귓속말을 했다. 


"위에 있는 꽃 가져오면 안 돼? 화환 많잖아. 그거 넣어드리면 되지." 

"화환은 건들면 안 될걸?"


뭐야. 그럼 그 아까운 것들을 다 버려? 


입관을 마치고, 할머니는 생전에는 한 번도 타 보시지 못한 긴 리무진 차에 몸을 실었다. (아마 '이런 차가 다 있다냐, 난 첨 본다잉' 하셨을 것이다.) 가족들은 각각의 차를 운전해 운구 차량의 뒤를 따랐는데, 차가 출발하기 전 가디건을 챙기려고 '잠깐만!' 하며 아빠 차에서 내렸다. 걸음을 재촉해 3일간 내 집처럼 지내며 편안해져 버린 4호 빈소를 향했다. 


그런데 계단 앞에서 식당 일을 봐주시던 아주머니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해서 참 부자 되겠수~" 


까만 모자를 쓴 수상한 사람들은 머쓱하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어휴, 저희도 얼마 못 벌어요."


빈소에는 옹기종기 모여있던 우리 대가족들 신발 대신 뒷굽이 밟힌 운동화와 사무용 슬리퍼 몇 켤레가 대신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가 나간 사이 새로운 가족을 맞이할 준비를 하려는 직원들의 것이었겠지만, 나는 마치 내 집에 낯선 침입자가 들어오기라도 했다는 냥 놀랐다. 아직 완전히 비운 것도 아닌데 이렇게? 어딘가 서운하기까지 했다. 빈소 앞을 분주하게 오가고 있는 직원들 사이로, 까만 모자를 쓴 사람들은 어딘가 익숙한 얼굴이었다. 


생각났다. 바로 전날 밤, '장례식 화환을 매입하겠다'고 원하는 가격을 묻고, 내일 화장터로 가는 시간대를 물었던 '업자'들이었다. 


장례식장의 화환. 죽음을 기리는 장소에서 살아있음을 확인하게 하는 반갑고 고마운 존재지만, 이고 지고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기도 했다. 우리는 가끔 산책 겸 복도에 나와 화환들을 살펴보며 이건 누구 거네, 이건 누구 거네 이야기를 나눴다.


'이 꽃들 다 재활용하는 거래' 

'어머머, 그래?' 

'재활용하면 좋지, 뭐' 


정도의 이야기가 다였다. 이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못했다. 정신없이 상을 치르는 가족들에게, 화환까지 처리할 여유 따윈 없었다. 


그래서 입관 나가기 하루 전날, 이 장례식 화환을 매입하겠다던 사람들이 우리를 찾아왔을 때 내심 반가웠다. 그들은 작은 수첩을 꺼내어 당장이라도 화환을 살 것처럼 이것저것 적으면서 내일 화장터로 가는 시간을 물었는데, 우리가 잠시 조문객을 맞이하며 한눈을 판 사이 홀연히 사라지고 없었다. 바쁜 일이 있나, 싶었다. 


그런데 여기, 우리 가족이 할머니 염과 입관을 마치고 눈물을 쏟아내며 정신없이 화장터로 향하려던 그때, 그 업자들이 '몰래' 우리 빈소를 찾았다. 우리가 이야기했던 운구 시간에 딱 맞추어, 할머니의 육신이 이제 지상을 벗어나 하늘로 향하기 위해 화장터로 향하는 가장 정신없는 완벽한 타이밍에, 꽃을 훔치러 온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부터 까만 모자의 남자들이 3층 할머니 빈소 옆을 어슬렁 거렸었는데, 이 사람들이었다. 


"도둑이야!"


를 외칠 틈은 없었다. 복잡해진 머릿속의 생각들을 털어내고 그들을 못 본 체 짐을 챙겨 나왔다. 머리에 꽂은 하얀색 리본을 만지작거리며. 그냥 '화환을 수거하러 왔다' 정도로 이야기했어도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을 텐데. 수첩을 끄적이는 '매입 액션'까지는 애초에 필요 없었는데. 


장례식장 계단을 서둘러 내려오며 생각했다. 돈이 자신은 삶과 죽음의 경계마저 집어 삼킬 수 있을 만큼 거대하니, 나를 잊지 말라고 힘을 과시하는 것 같았다. 조문객의 식대, 상복, 완장, 주방 도우미 비용, 팁까지... 그 모든 비용이 촘촘히 적혀 있는 영수증도 어른거렸다. 


장례식장의 모든 추모 행위는 비용이 된다. 죽음 가장 가까운 곳에서도 계산기는 돌아가고, 누군가는 장례식에 들어온 화환을 훔쳐서 생계를 이어간다. 할머니의 죽음에 대한 슬픔만큼은 오롯이 내 몫이 될 줄 알았는데, 그 안에 온전히 빠져 며칠간 물을 잔뜩 머금은 무거운 솜처럼 축 늘어져 있고 싶었는데. 돈이 나를 자꾸만 깨웠다. 정신 차리라고. 사는 동안 돈을 벌어야 한다고. 그래야 장례식, 죽음을 보내는 것마저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경고하는 것 같았다. 


꼭 도둑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할머니의 장례식을 마치고 '총무'를 담당하여 부의금과 지출비를 더하고 빼는 복잡한 계산을 맡았는데, 그 과정에서 가족들 사이에 누군 내고 누군 받네, 누구는 제외해줘야 하네, 그 복잡하고도 미묘하며, 치졸하다기에는 누구도 외면할 수 없는 논의가 그렇게도 싫었다. 장례식을 치르고 나서 유산이나 비용 문제로 서로 얼굴도 안 보게 되는 가족들도 많다는 이야기가 생각나 가슴이 철렁했다. 이 모든 '돈'에 관련된 것들이 내 슬픔을 앗아가는 것만 같았다. 눈물로 촉촉하게 젖어 있을 때는 마음이 아픈지도 미처 몰랐는데, '돈'이 등장하며 내 마음은 히터가 틀어진 사무실에서 바짝바짝 갈라지는 피부처럼 매말라가는 듯 했다. 돈만 있으면 이런 얘기 안 해도 되지 않았을까. 돈만 있으면. 돈만 있으면... 




빈소에 도둑이 든 사이, 장례식장을 나선 운구차량은 흐드러진 벚꽃길을 내달렸다. 벚꽃 나무는 할머니의 화장터까지 안내하겠다는 듯 길을 따라 쭉 이어졌다.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아름답게 흩날리는 꽃길을 따라, 호위 무사처럼 할머니 뒤를 따르는 가족들의 행렬을 따라, 할머니는 하늘로 떠나갔다. 상조 회사에서 수백 개의 꽃다발을 받아 관이 미어터지도록 꽃을 집어넣었다고 하더라도, 하늘을 가득 채운 아름다운 벚꽃길의 축복만큼 화사하진 못했을 것이다. 


그래, '돈만 있으면' 그런 건 없다. 잘못 찾아온 꽃다발에 괜히 서운해지지만, 우연히 마주한 벚꽃길에 큰 위로를 받지 않는가. 장례식 화환을 훔치러 온 사람들을 보고 심난해지지만, '아니, 언니. 빈소에 말이야' 하면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할 가족들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부의금과 지출비가 복잡하게 얽힌 액셀시트 수식을 보면서도 같이 끙끙 머리를 맞대는, 이 쉽지 않은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다. 잠깐 이별한 할머니가, 내게 두고 간 가장 큰 선물.



꽃을 참 좋아했던 할머니. 사진 찍기를 좋아하지 않으시면서도 마당의 화단에서 '여기 좀 서 봐' 하면 저렇게 포즈를 취하곤 했다.


복 많은 할머니는 화면이 부족할 정도로 많은 가족들이 있었다. 화환도 조문객도 마찬가지. 할머니, 우리 제법 잘 살았지? 


장례식 상조 서비스, 회사의 장례물품 지원... 결국 이런 것도 다 돈이다. 동물의숲 대부업자 너굴이는 그나마 착했던 걸지도...
사랑해 할머니. 향긋한 그곳에서 사진처럼 밝게 웃으며 조금만 기다려줘! 




교보문고 ▶ https://app.ac/iqpIqD263

예스24 ▶ https://app.ac/TErcEpS13

알라딘 ▶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7563299


이전 06화 할머니를 대신해 바둑이가 저승사자를 따라나섰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