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댁에는 항상 '바둑이'라는 이름의 강아지가 있었다
6년 전, 할머니에게 전화를 받고 짧은 소설을 썼다. 할머니는 저승사자가 자기 대신 바둑이를 데려간 거라며, 간밤에 꾼 꿈을 이야기했다. 나는 할머니가 해주는 꿈 이야기를 따라, 작은 몸의 바둑이가 딱딱하게 굳지 않고 살아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상상하며 대신 일기를 써 내려갔다.
<바둑이의 일기>
며칠 전부터 밤마다 대문 앞을 왔다 갔다 하는 발소리에 잠을 통 못 자겠다. 날이 추워져 따뜻한 집에 들어가 자려고 해도, 그 발소리 때문에 도저히 맘 편히 잘 수가 없어 마당 한가운데서 잠이 든다. 오늘은 낮에 할매를 따라 밭에 다녀왔다. 신이 나서 먼저 뛰어가다 뒤돌아보니 할매가 저 멀리 지팡이를 짚고 걸어오신다. 해 질 녘 할매랑 같이 집에 돌아오는 이 길이 참 좋다. 초저녁, 할매가 자려는지 불을 껐다. 어두운 밤 TV소리만 들린다. 도통 사람 소리는 안 나는 마을이다. 이웃 할매들이 몇 번 오가는 것도 이젠 거의 없다. 이 세상에 할매랑 나 딱 둘 뿐인 것 같다. …… 앗, 깜빡 잠이 들었다. 방에서 도란도란 말소리가 들린다. 이 새벽부터 누구지. 요 며칠 문 밖을 서성이던 그 사람들일까. 몇 번을 소리쳐도 문 밖을 내다보질 않는다. 아침 해가 뜨고 슬슬 밝아지니 할매가 문을 열었다. 할매 뒤에 까만 옷을 입은 남자 셋이 서 있다. 지난 추석 때 왔던 요란스러운 애들은 아닌 것 같고. 이 사람들은 누구지? 할매가 내준 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이 남자들이 가지도 않고 내 옆에 앉아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자기들끼리 이야기하길 다음에 와서 할매를 데려간단다. 깜짝 놀라 밥 먹다 말고 할매 신발을 물어 화단에 마저 숨겼다. 이게 없으면 할매는 어딜 못 갈 테지. 그런데 남자 셋이 이 좁은 화단으로 따라 들어온다. 햇살이 참 좋은 가을날인데, 어쩐지 내 몸은 뻣뻣해지는 것 같다.
<할머니의 일기>
꿈자리가 영 껄쩍지근하다. 사자 셋이 와서 ‘저승 데려갈라고 왔응께 이제 같이 가소’ 했다. '그러자' 하고 자릴 나서니 사자 한 놈이 글쎄 배가 고프다고 털썩 주저앉는다. 밥 한 그릇 두 그릇 내어주니 꼬박 아홉 그릇을 처먹고 앉았다. ‘인자 원 없이 다 먹었으면 길 나서게’ 하니 갑자기 ‘지금 데려가면 불쌍해서 안 되오’ 한다. 그러더니 먼 곳을 가리키곤 ‘대신 저 놈을 데려가야겠다’ 한다. ‘나도 이제 영감이 보고 싶은게 나를 데려가오’ 하고 소리를 빽 질러도 소용없다. 눈 떠보니 얼씨구, 꿈이다. 뭐 이런 개뼉다구 같은 꿈이 다 있는가 싶다. 개밥이나 주려고 문을 여니 바둑이가 꼬리를 흔들며 가만가만 문 앞으로 다가온다. 또 마당에서 잤냐? 말짓 한 번 안 하고 착하게 굴더니, 요즘엔 지 집에서 나와 마당 한가운데서 자서 염병하고 속을 썩인다. 참, 작은 방 이불을 꺼내 몇 개 깔아주면 쓰겠다. 열 식구도 살던 큰 집인데, 이제 나 하나 남고 이 많은 솜이불이 다 쓸 데도 없으니 개나 꺼내주면 딱이다. 개 하나 있는 게 사람 새끼 있는 것 만치로 맴이 든든하다. 무건 이불을 들고 나오는데 웬일로 똥개가 문 앞에서 달라 들질 않는다. 밥도 마저 처먹지도 않고 야가 어딜 갔는고. 나서려니 신발이 또 없다. 이 놈이 가끔 이렇게 신발을 숨긴다. 지팡이로 바닥을 툭툭 때리면 신발을 물고 나타날 테지. 한참을 두들겨도 기척이 없어 살펴보니 화단에 저 놈의 것이 숨어 있다. 바둑아, 이리 와라, 손을 둘레 둘레 내밀어도 반응이 시원찮다. 고꾸라져 가만 보니, 아이고, 새까만 눈을 지켜 뜨고는 움직이질 않는다. 아이고, 바둑아, 바둑아. 내 새끼야. 내가 갔어야 하는데 니가 갔구나, 차라리 나를 데려가지 아이고 아이고, 너를 그렇게 좋아하던 소연이 하연이 얼굴을 내가 염치없이 어떻게 보라고, 아이고 바둑아. 내가 죽어도 너는 사람들이 다 서로 맡아 반겨주겄지만은, 이 늙은이는 이제 너 없으면 누가 반겨 주겠냐. 아이고 아이고, 바둑아 내 새끼야.
사실 할머니의 '꿈' 화법은 꽤나 익숙하다. 실제 할머니가 꾼 꿈인지, 아니면 우리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하기에는 민망하여 빙 둘러 전하고자 하는 방식인지 이제는 끝내 알 길이 없지만, 할머니는 꼭 자기의 속마음을 이야기할 때 곧잘 '꿈을 꾸었다'며 이야기하곤 했다. 다음번에 같은 이야기를 또 들을 때면 그 내용이 바뀌어 있곤 했으니, 할머니의 꿈은 할머니의 속마음을 가장 잘 들여다볼 수 있는 창 역할을 톡톡이 해주었다.
바둑이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고도, 나는 예약해 둔 미용실을 향했고 가운을 두른 채 앉으면서도 세상이 무너졌다는 듯 엉엉 소리 내어 울음을 토해냈다. 미용사는 난처한 얼굴로 내 머리를 매만졌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거울 속 내 모습을 바로 바라봤다. 퉁퉁 부운 눈을 꼭 닮은, 강아지 치고는 꽤나 작은 단추 같은 까만 눈을 가지고 있던 바둑이를 떠올렸다. 수많은 바둑이들이 있었지만, 가장 마지막으로 '바둑이'라는 이름을 했던 그 강아지.
항상 '바둑이'였다. 백구든 황구든 얼룩이든 상관없었다. 초록 대문의 할머니집 마당에 강아지가 들어오는 날이면 그 강아지는 모두 '바둑이'가 됐다.
할머니는 할머니의 방식으로 바둑이를 사랑했다. 해가 짧아지고 길어지는 계절의 흐름에 따라 바둑이의 집은 대문 앞, 혹은 부엌문 바로 앞으로 거처를 옮겼다. 긴 줄을 묶어두는 기둥과 기와집 모양의 '개집'을 옮기는 것은 30kg대의 작은 체구의 할머니가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할머니는 매 계절 개집 위치를 바꾸었다. 멀쩡한 사료 포대를 두고도 사람 밥을 주었으며, 스테인리스 개밥 그릇을 두고도 꼭 사람 밥그릇을 썼다. 숟가락을 반대로 뒤집어 잡아 손잡이 부분으로 밥이며 고깃 덩어리를 꾹꾹 조각조각 냈고, 슥슥 비벼 툭 내어 주었다. 할머니가 치매에 걸린 후에는 마당에 고급 사기 밥그릇이 대여섯 개씩 나와 있었다. 10분, 아니 5분에 한 번씩 '내가 개밥을 줬나' 하며 마당을 내어 보았다. 굵어진 손마디로 내 등을 쓸어내리던 것만큼이나, 투박한 모양새의 사랑이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몸이 쇠약해짐에 따라 바둑이와도 이별해야 했다. 밥이 있는데도 자꾸 밥을 내어주어 개밥이 쉬는 것도 문제였지만, 바둑이의 얇은 목줄에 걸려 넘어져 할머니가 큰일 날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할머니 나이에는 아주 작은 넘어짐도 심각한 골절과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었기에, 발목 언저리를 맴도는 사랑스러운 바둑이는 그 존재만으로도 할머니에게 심각한 위협이 됐다. 따라서 단추 같은 작은 눈을 가진 강아지는 우리 할머니댁 역사상 바둑이라는 이름을 한 마지막 강아지가 됐고, 그마저도 아랫집 공주네 집에 보내졌다.
마지막 '바둑이'의 새로운 거처 공주네 집은 내달리면 한 걸음에 닿을 만한 아랫집이었지만, 따스한 햇빛이 내리쬐는 할머니집 마당과는 분명히 분위기가 달랐다. 흙바닥은 축축했고, 토끼들은 좁은 철장 안에 갇혀 형체가 일그러진 배추를 씹고 있었다. 바둑이는 공주네 집으로 간 지 며칠 되지 않아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그날따라 꼬리를 치는 기력도 없어 보였던 바둑이를 두고 나는 '기분이 안 좋은가 봐' 하며 간식을 연신 주었다. '다음에 또 올게'하고 할머니댁으로 올라오던 내 모습이 미용실 거울 속에서 영화의 슬로 모션처럼 느리게 스쳐 지나갔다. 아무리 눈물을 흘려도 '다음에 또 올게'라는 그 말을 기다려줄 바둑이는 이제 없었다.
당시는 할머니가 오래도록 함께 살던 이웃 할머니들, 아니 가장 가까웠던 친구들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던 시기였다. 앞집, 뒷집, 옆집 다 죽고 아무도 없다고, 하던 그 시기. 바둑이는 그런 할머니를 아침마다 꼬리로 반기던 유일한 생명체였으며, 어제와 같은 오늘이 또다시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삶이 이어지고 있음을 분명하게 체감하게 하는 존재였을 것이다. 당신이 필요한 존재라고 일깨워주는, 밥 달라고, 산책 가자고, 할머니를 채근하는 단 하나의 존재. 그렇기에 할머니는 귀찮아 죽겠으니 데려가라면서도 자신의 존재를 증명시켜 주는 유일한 동반자 '바둑이'를 곁에 두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할머니는 바둑이의 생명력마저 감당할 수 없게 되었을 때, 평생을 함께 하던 '바둑이'와 이별하고 그마저도 끝내 죽음에 이르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당신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당신이 죽었어야 했는데, 바둑이가 대신 죽은 것이라고.
할머니댁을 거쳐 간 바둑이들에게, 마지막까지 한 가지 더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 그곳이 아직 많이 낯설 텐데, 할머니에게 반갑게 인사해 달라고. 따스한 봄볕이 드는 이곳저곳으로 데려가 가달라고. 아마 우리 바둑이들은 이런 내 부탁을 들은 채도 않을 것이다. 내 부름에도 반대 방향으로 열심히 뛰며, 이미 할머니와 함께 발맞추어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