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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씨 Jan 28. 2023

여기저기가 아프네

육아 일상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아이 컨디션이 심상치 않았다. 목소리는 쉬었고, 콧물은 주르륵, 기침도 하는데 약간의 열도 있었다. 공항 입국장을 나온 시간은 저녁 8시에 가까웠다. 병원에 가기에는 늦은 시간. 아내와 논의 끝에 내일 병원에 방문하자고 결정했고, 공항에서 가까운 처갓집으로 목적지를 찍고 운전을 했다. 등 뒤에 설치된 카시트에 앉아 있는 아이가 계속 기침을 해대고 우는 통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너무 걱정이 된 나머지 처가 인근 약국에서 어린이용 감기약이라도 사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급했다. 조금만 지나면 약국도 문을 닫을 것만 같았다. 아내에게 아이를 맡기고 나는 걸음을 재촉해 약국으로 향했다.


그 순간 나는 아스팔트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당시 차에서 나를 보고 있던 아내의 표현을 빌리자면 주차장에서 성인 남성이 구르고 있었다고 한다.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 눈앞에 주차장에서 주차할 때 뒷바퀴를 막아주는 주차턱이 보였다. 조급한 마음에 바닥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나의 불찰이었다. 눈인지 비인지 모를 것이 내리던 날 밤, 바닥은 흙탕물로 젖어 있었고, 내 옷은 여기저기 흙물이 들었다. 무릎도 아프고 손목도 너무 아팠는데, 지체할 시간이 없어 팔목을 부여잡고 절뚝거리며 약국에 들어갔다. 그리고 약사님은 24개월 미만의 아이에게는 해열제를 제외하고는 의사의 처방 없이 약을 먹이는 것이 위험하니 내일 일찍 병원에 가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그 말이 맞는 듯하여 다시 폐잔병의 몰골을 한 채 자동차로 돌아갔다. 내 손에는 주차장 비용 정산을 위해 마트에서 산 제로콜라 한 병과 몽쉘 한 상자만이 들려있었다.


다행히 아이는 코로나도 음성이었고, 다음날 병원에 방문해서 적절한 처방을 받을 수 있었다. 아이의 상태는 조금씩 호전을 보였다. 문제는 나였다.


벌써 열흘이나 지났지만 한쪽 무릎의 상처는 다 아물지 않았고, 인대가 늘어난 것 같다는 손목은 여전히 불편하다. 손을 쓰지 않고 쉬어야 하는데, 도무지 손에 물을 안 묻히고 안 쓸 수가 없기 때문인지 잘 낫지 않는 듯했다. 그 상태로 육아를 해야 하니 쉽지가 않았다. 하루에도 수십 번 아이를 들었다 놔야 하는데, 손목은 계속 절규를 했다. 청소기를 밀 때도, 아이의 뒤처리를 해줄 때도, 프라이팬으로 요리를 하고 사용한 식기 설거지를 할 때도 손목은 아픔을 표현했다. 사실 아픈 곳은 그뿐이 아니다. 피부 여기저기에 습진이 있고, 그래서 가렵고, 그래서 상처가 생겼다. 어제는 눈을 떠보니 한쪽 눈에 눈곱이 가득했다. 탱탱부은 눈두덩이 닿기만 해도 따가웠다. 병원에 갔더니 결막염과 다래끼가 생겼다고 한다. 진료를 보는 중에 선생님은 몸 상태가 보통의 절반이하인듯하니 잘 쉬어야겠다고 말해주셨다.


이런저런 약을 달면서 아내에게 파스를 좀 붙여주라고 하니 아내는 아이에게 느이 아빠는 성한 곳이 왜 이리 없다니 하면서 걱정 섞인 핀잔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아내가 출근을 하면 홀로 아이를 돌봐야 하는데 걱정이 앞선다. 잘 해낼 수 있을까. 많이 아프겠지. 잘 안 낫겠지. 그런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일전에 이런 대사들이 종종 드라마에서 나왔었다. “집에서 노는 사람이 뭐가 힘들다고!” 집안일이 힘들다는 아내의 표현에 박하게 이런 대답이나 하는 남편들의 대사였다. 이제는 왠지 내가 그런 말을 들을 것만 같아 두렵기도 하다. “휴직하고 출근도 안 하는 사람이 뭐가 그렇게 몸이 힘들고 아프다고 성화냐!” 그러나 휴직하고 집에 있으면서 아이를 돌보는 것은 노는 게 아니다. 육아는, 누군가를 향한 돌봄과 보살핌은 많은 노력과 노동이 필요하다.


여기저기 몸이 성치 않지만 잘 해내고 있는 스스로가 대견하다. 누가 뭐라든 아픈 나를 잘 다독이며 아이도 잘 돌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사실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다. 모두가 어디든 조금씩은 아프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다른 이를 돌보고 있는 누군가들을 오늘의 나는 또다시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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