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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씨 Feb 08. 2023

단조로운 삶

우리를 미치게 할 수 있는 것

단조로운 삶



영화 ‘더 이매큘러트 룸’(2022)은 50일 동안 어떤 방에서 생활하면 상금으로 5백만 달러를 준다는 설정이 주요한 소재이다. 어떤 한 커플이 도전에 참가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들은 아무 무늬도 없는 하얀 벽지의 방에서 매일 같은 음식을 먹고, 동일한 시간에 잠자고 일어나며, 같은 사람하고만 생활을 해야 한다. 인물들은 막대한 상금을 위해 지루하지만 하루하루를 버텨나간다. 그러나 점점 이들의 정신은 무너지기 시작하는데...


5백만 달러는 한화로 하면 60억 원이 넘는 금액이다. 50일만 잘 버티면 그런 돈이 생기는데 까짓 거 단조로운 삶 정도는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물론 쉽지 않겠지만. 그러나 요즘은 이 도전에 참가한 커플이 영화에서 겪게 되는 정신적 어려움에 대해 조금 생각해 보게 된다. 비록 상금은 없지만 나도 이들과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아침 7시가 되면 아이는 알람이라도 맞추고 잔 듯 일어나 부모를 찾는다. 나는 아이를 방에서 데리고 나와 간단히 아침을 먹이고, 출근준비를 마친 아내에게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건넨다. 라디오를 틀어 놓고, 아이와 놀아주다가 산책을 하고 나서 아이에게 점심을 먹인다. 다시 아이를 돌보다가  낮잠을 재운다. 아이가 자는 틈에 나도 함께 누워 잔다. 아이가 깰 때 같이 일어나 간식을 먹이고 아내의 퇴근을 기다린다. 아내가 퇴근하면 아이의 저녁을 먹이고, 목욕을 시키고 잠시 놀다가 저녁 8시가 되면 아이를 재운다. 잠을 자려고 하지 않는 아이와 실랑이를 하다 겨우 재우면 9시가 되고, 그때서야 아내와 나의 늦은 저녁 식사가 시작된다. 저녁을 먹고, 치우고, 못했던 집안일을 하면 어느새 잠잘 시간이 된다. 그러면 잠에 들었다가 다시 아이의 소리에 깨어 하루를 시작한다.


사실 이런 삶은 내게 나쁘지 않다. 단순하고 반복되는 일상을 어느 정도 그리워하며 살아오기도 했다. 크게 어렵거나 힘든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하루, 이틀, 삼일... 동일한 하루가 반복될수록, 뭔가 어려움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잠자리에 누우면 내일의 모습이 그대로 그려졌다. 아침이 되면 오늘 하루가 어제인지 내일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았다. 똑같은 하루를 계속 살아간다는 것은 보기보다 어려운 것이었다.


육아를 하는 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한 부분은 매일매일의 단조로운 삶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영화에서 처럼 매일매일이 똑같다는 것은 우리를 조금씩 미치게 할 수도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사람이 성장하는데 필요한 수많은 날들을, 반복되는 돌봄으로 채워가며 자신만의 재미와 의미와 때때로의 일탈을 포기해 온 육아인들의 삶에 우리 사회가 위로와 격려를 보내주길 바라본다.


영화에서는 상금이 보상으로 주어진다. 인생에는 이런 삶에 대한 보상이랄 것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인고의 시간을 견뎌냈을 때, 한 사람으로 성장해 있는 아이가 분명 우리의 보물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단조로운 삶 정도는 버텨내야지 하고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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